아픔에도 일종의 면역력이 필요하다
2009년 가을 언저리에 휴학을 하고 귀향한 나는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의 증세를 보였다. 방에 틀어박혀서 책을 봐도 울고, 영화를 봐도 울었다.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일도 잦았다. 그렇게 꼬박 6개월이 지났고, 어느덧 밖은 봄이었다. 온몸이 우울에 젖어 있던 나는, 그제야 조금씩 뽀송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학교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지만, 서울은 그리웠다. 그래서 휴학을 한 상태로 서울에 올라가 영어 학원에 다녔다. 학원 근처에 숙소를 잡고, 학원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아르바이트 장소는 잠실역 안쪽에 자리한 XX 모바일 샵이었다. 당시로써는 꽤 괜찮은 시급에 일도 쉬운 편이었다. 다른 동기들과 조금 다른 삶을 산다는 게 그렇게 기분 나쁘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오히려 혼자만의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다. 학원에서도,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나서도, 나는 늘 혼자였다. 그게 싫지 않았다. 어쩌면 둘이었다가 혼자가 되는 아픔을 심하게 겪고 난 덕분에 혼자 있을 때도 면역력이 생긴 걸지도 몰랐다. 아픔에도 일종의 면역력이 필요하다. 한번 아파본 나는 더는 그 전처럼 앓지 않아도 되었다.
지금에 와서 그때 겪었던 우울의 정체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울은 굉장히 객관적인 현실성을 선사해줬다. 내가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한편, 우울은 과거지향적이다.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후회와 절망감을 맛보는 일이다. 사랑이 끝난 것을 온전히 자신의 탓으로 돌렸던 나는 가슴 한 곳이 찌르듯 아픈 느낌을 매일 마주해야만 했다. 그렇게 바닥을 치는 경험 이후에, 나는 나를 좀 더 냉정하게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슬퍼도 웃는 법을 알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는 3개월 정도만 하고 그만뒀다. 다시 학교 근처로 숙소를 옮겼다. 때는 여름이었다. 학교에선 방학 끝 무렵에 올릴 중국어 원어 연극을 위한 학생 모집에 한창이었다. 본 전공이었던 중국어 공부도 할 겸, 나는 배우로 신청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번째 사랑을 만나게 되었다. 운명처럼, 우울의 정체를 알고 난 뒤 조금 더 단단해진 나는 웃음이 해맑은 한 소년에게 첫눈에 호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