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고 사람을 만나선 안 된다
두 번째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연극 연습 이외의 시간에도 만났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와 함께면 더는 외롭지 않았다. '외롭다고 사람을 만나선 안 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여태 외로워서 만난 남자들과는 모두 얼마 되지 않아 헤어졌다. 반대로, 그는 내가 커다란 고독 끝에 혼자인 것에 익숙해지고 있을 즈음에 나타났다. 즉, 외로워서 만난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이내 어딜 가든 꼭 붙어 다니는 연인이 되었다. 나중에는 그가 내가 사는 건물의 다른 호수에 이사를 오기도 했다. 우리는 동거 아닌 동거를 즐겼다. 부모님이 찾아오는 날이면 그는 자기 방에서, 나는 내 방에서 머물며 짜릿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모님의 얼굴을 본 남자친구도 그가 유일하다. 엄마는 그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아마 착해 보이는 용모와 심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아주 착했다. 나중에는 그 착함을 내가 짓밟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순진하고 충실했으며,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여읜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잘 알았다. 나는 그의 사랑 속에서 첫사랑으로부터 받은 모든 아픔을 치유했다. 우리는 같은 수업을 들었고,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같이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이제야 인정하는 거지만, 그와의 이별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그는 군대에 입대했고, 나는 그의 부재를 근근이 버텼다.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예전처럼 슬프진 않았지만, 그가 채워주던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하지도 않았다.
어느 봄날, 그가 없는 동안 입학한 새내기 중 유난히 외모가 출중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그 아이의 "선배, 연락하면 밥 사주는 거예요?"라는 귀여운 발언과 함께 서로 자연스레 번호를 교환했다. 나는 오랜만에 설렜다. 그 아이와 나는 영화 한 편을 봤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아이에게 호감을 품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하필이면 그 사람이 입대한 내 남자친구와 친한 여자아이였다는 것이다. 그의 안부 전화에 여자아이는 나의 행실을 문제 삼았고, 나는 그의 원망 어린 질책을 받아야 했다.
잘못한 건 나였지만, 나는 잘못을 빌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다른 사람의 말만 듣고 오해한다며 그를 비난하고 몰아세웠다. 비겁한 행동이었다. 나는 그에게 차가운 이별을 선언했고, 그는 나를 붙잡기 위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데도 말이다. 나는 그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갔다. 그는 눈물을 흘렸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일말의 동정심도 느끼지 못했다. 바람 아닌 바람이 부른 결말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고 말았다. 새로운 남자아이와 잘 되지도 않았다. 어설프게 연락이 끊겼는데, 나중에 이유를 들어보니 나쁜 소문이 날 것이 무서워 도망친 것이라고 했다. 어찌 되었건, 나는 또 혼자 남겨졌다. 그리고 오롯이 나를 사랑해주던 사람을 뻥 차버리고 떠난 벌을 오래도록 받았다. 수차례 외롭다고 사람을 만나고 만 것이다. 결과는 모조리 실패였다. 사랑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을 다섯 번째 즈음의 연애가 끝날 무렵 깨달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