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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 위로 Oct 12. 2017

사랑과 우정 사이

아주 많은 미안함 뒤에 무척 깊은 행복감이 찾아올 것을 안다

    살다 보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것은 아빠가 좋은지 엄마가 좋은지를 선택하는 가벼운 장난에 지나지 않는 것부터, 생계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을 할지 꿈을 좇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할지를 묻는 무거운 질문에 이르기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처럼 운명론적인 질문도 존재한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후의 결과는 온전히 내 책임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 2012년 여름, 머나먼 타국 땅 네덜란드에서 내가 마주한 선택지는 사랑과 우정, 두 가지였다. 우정은 매우 특별했고, 사랑은 무척 신선했다.



    복학한 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시점이었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파견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싱글이었고, 그래서 준비 과정에서의 마음고생은 없었다. 토플 성적과 자기소개서, 간단한 면접의 과정을 거친 뒤 무사히 원하던 나라, 원하던 학교에 배정되었다. 마리화나와 매춘이 합법인 자유의 나라, 네덜란드로 1년간에 걸친 여정이었다. 당시 파견 학교에서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나는 온종일 영어로만 의사소통해야 하는 환경에 놓였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천혜의 조건이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전에 없이 더욱 자유로워졌다.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어울리며 무척이나 행복했다. 내 자유로운 사상과 거침없는 표현에 오히려 그들이 내게 유러피안 소울(European Soul)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할 정도였다. 학생 전원에게 주어지는 널찍한 기숙사, 학교에서 조금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자리하고 있는 커피숍(네덜란드에서는 마리화나를 취급하는 곳을 이렇게 칭한다), 교회 바로 앞에서 비키니만 걸치고 매춘을 시도 중인 레드라잇디스트릭트까지. 네덜란드가 내게 선사한 자유는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6개월이 정신없이 지나는 동안 제일 가까워진 친구는 스페인에서 온 말타(Marta)였다. 나이가 같고, 관심사도 비슷했던 우리는 온종일 붙어 있어도 계속 깔깔댈 정도로 친해졌다. 나중에는 '같이 산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한국에서도 이처럼 가까웠던 친구는 없었을 정도였다. 말타와 함께 있으면 행복했고, 나는 그 행복이 끝나지 않으리라고 바보처럼 믿었다. 이번에도 관계의 끝은 내 쪽의 실수 때문에 찾아왔다. 그렇다. 사랑이었다. 사랑은 너무나도 간단히 우정을 위협했다.

    말타에게는 은밀히 좋아하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네덜란드에 이민을 온 일거(Iigar)라는 아이였다. 우리는 자주 술도 함께 마시고 놀러도 다녔다. 일거는 조금 어둡고 시니컬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외모는 꽤 준수한 편이었고, 어린 시절 테니스 선수로 활약했던 덕분에 몸도 다부졌다. 우리와 친해지고 난 다음에는 특정 사안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자주 내비치곤 했는데, 그 견해들이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이를테면 똑똑한 여자는 남자의 심리를 자주 조작하며 그것에  능숙하다는 거였다. 또, 다른 여자로부터 받을 수 없는 존경과 사모함을 보여주는 여자에게는 남자가 무조건 충실하게 된다는 등 다소 이상한 발언에도 서슴없었다. 말타도 아마 그런 그의 묘한 매력에 이끌렸던 것이리라.

    나는 그녀의 짝사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 온 목격자이자, 곁에서 응원하며 바람까지 잡아준 조력자였다. 때로 일거와 둘이 있게 되는 날엔, 그에게 말타의 속내를 은근히 언질을 주며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그러니 나를 향한 일거의 고백에 나는 더 없이 당황했다. 한참을 멍하니 일거의 얼굴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일거는 나와 말타가 그의 고향인 우크라이나로 놀러 가 있던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내게 고백을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전개였다. 나는 우선 말타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말타는 더없이 아팠을 것이다. 그러나 크게 내색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선택을 존중한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나는 그것이 더 고통스러웠다. 내 선택, 내 책임을 다해야만 결말이 나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바보처럼 또 한 번 사랑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하나 달랐던 게 있다면, 그때의 나는 외롭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롯이 말타 덕분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바보처럼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두 개의 사랑을 모두 차지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것은 실은 사랑이 아니라 우정이었고, 사랑을 택한 나는 우정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말타는 차마 나를 보고는 말할 수 없었던지, 내게 분노에 가득 찬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짐을 정리하다 발견한 그 편지를 다시 한번 읽으며 내 마음은 무너졌다. 아문 줄 알았던 미안함이 쏟아져 나왔다.

    또 한 번 사랑과 우정 사이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아마 또 머저리처럼 사랑을 선택하고 말 것이다. 아주 많은 미안함 뒤에 무척 깊은 행복감이 찾아올 것을 안다.

    내가 일거로부터 받았던 사랑은 여태 다른 남자로부터는 받아보지 못했던 형태의 사랑이었다. 그는 내 영혼까지 사랑해주었고, 때로는 나의 영혼을 지배했다. 나는 그와 같은 것을 느끼고 싶다는 이유로 담배를 손에 대기도 했고, 그와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다. 마리화나가 낳는 많은 생각들을 그와 나누며 아주 많은 지적 쾌감을 경험했다. 그런 그와 끝이 난 이유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그는 바람을 피웠고, 그런데도 나를 만나러 한국에 찾아왔다. 덕분에 우리가 한국에서 같이 보낸 시간은 지옥 같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지금, 아직도 나는 가끔 그를 그리워하며 특히 그가 주던 사랑이 애달파지곤 한다. 사랑의 힘은 그토록 강렬한 것일까. 여전히 나는 그 답을 알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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