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다. 사람이든 노래든 영화든 책이든, 무언가를 좋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다. 취향도 나름 분명하다. 사람은 키가 크고 까무잡잡한 편을, 노래는 가사가 좋은 편을 선호한다. 영화는 아련한 색감과 약간 우울한 이야기가 있는 편을, 책은 잔잔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에세이를 좋아한다. 또, 위에서 말한 범주에 들지 않더라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개성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애정한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도 내게는 어렵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으면 먼저 다가가 고백했다. 고백이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내 마음을 전할 때 느껴지는 간질간질한 심장이 짜릿했다. 여자 중학교에 다녔는데, 언젠가는 여자아이도 좋아한 적이 있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과도, 많은 사람과도 연애해 봤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 좋아하는 마음은 성별, 나이 불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통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낼 곳이 없다. 물론 이민기와 남주혁을 좋아하고, 서사무엘이나 김영흠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 우디 앨런이나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작품을 챙겨 보고, 김동영과 임경선의 에세이는 무조건 사서 읽는다. 하지만 나는 진짜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좋아하고 싶다 - 아니,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나 좋다는 사람 말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말이다. 오늘도 그런 기적을 바라며,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고이 한 쪽에 접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