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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Sep 20. 2024

얻는 것도 하나, 내어 놓는 것도 하나.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는 정말 작습니다. 상상하는 것보다 더 작습니다. 스스로 목을 가누지도 못하고 손과 발을 쫙 펴지도 못합니다. 마치 누에고치처럼 속싸개에 쌓여서 뱃속에 있던 그 자세 그대로 누워만 있습니다.



그맘때 아기는 23시간 30분 정도는 누워있습니다. 가끔 트림을 시키려 몸을 세우거나 안고 돌아다니는 시간을 다 합쳐도 30분이 될까 싶습니다. 누워서 먹고, 누워서 싸고, 누워서 놉니다.



아기는 어디 가지 않고 내내 누워있기 때문에 양육자는 잠시 다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설거지도 하고요, 빨래도 개고요, 청소기도 돌리고요, 책도 읽고요, 글도 쓸 수 있습니다. 첫째 때는 드라마도 많이 봤습니다. 모유 수유가 길어지면 양쪽 30분 정도 걸리는데 수유쿠션에 아기를 척 놓고 드라마 시청을 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기가 내내 누워있었기 때문에 어딘가 외출을 하기가 번거로웠습니다. 커다란 디럭스 유모차가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식당에서 출입 거부를 당한 적도 있었지요.



또 그맘때는 작은 몸에 걸맞은 작은 위장을 지녀서 금방 배가 차고 금방 배가 꺼집니다. 즉, 밥을 자주 먹여야 합니다. 아기는 2시간에서 3시간 간격으로 먹기 때문에, 이 말인즉슨 밤에도 쪽잠을 자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오로지 모유나 분유만 먹었기 때문에 편했습니다. 밤중 수유 때 분유를 타는 번거로움이요? 지금 이유식을 만드는 일에 비교하면 아주 가뿐한 일이었습니다.



또 온몸과 온 바닥에 이유식 칠갑을 해놓는 지금과 비교하면 누워서 먹던 그 시기는 아주 편했습니다. 요즘 저는 아기가 적극적으로 이유식을 먹고 나면 무조건 목욕을 시키고, 청소를 해야 합니다.



이유식은 얼마나 고단한 일인지요. 만들 때마다 다른 재료를 써야 하고요, 나름 음식의 궁합과 탄단지와 식품 영양군도 신경 써야 하고요, 아기가 먹기 좋게 다져야 하는 것도 꽤 품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그럼 직립보행이 가능해진, 잘 때 빼고는 절대 눕지 않는 지금의 아기는 어떨까요?



우선 아기는 먹지 않고도 밤 동안 길고도 긴 잠을 잘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아기는 보통 8시쯤 잠들어서 6시~7시쯤에 기상하니 10시간에서 11시간을 자는 셈입니다. 양육자도 더 이상 쪽잠을 잘 필요가 없습니다. 같이 푹 자면 됩니다.



이제는 먹을 때 누군가가 아기를 안고 있지 않아도 됩니다. 자기 스스로 젖병을 척 잡아서 꿀꺽꿀꺽 먹습니다. 그동안 누워있는 아기에게 몸의 자세를 맞추느라 S자로 휘어지던 걸 생각하면 아주 가뿐합니다.



한편 절대 눕지 않는 아기 때문에 기저귀를 갈 때마다 레슬링을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기저귀 가는 일로 바뀝니다. 혹시라도 응가를 했을 때 아기를 뉜 채로 기저귀를 열었다? 주변은 온통 응가칠이 되어있을 겁니다.  



더 이상 누워있지 않기 때문에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눈 깜짝하면 소파 위에 올라가 있고, 뒤돌아서면 식탁에 올라가 있습니다. 잠시 빨래하러 베란다라도 나갔다 오면 무언가를 입안에 넣고 오물거립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오물거리는 물건들일수록 으레 먹으면 큰일 나는 것들이라 아기를 잘 지켜봐야 합니다.



유모차 걱정은 좀 덜었습니다. 이제는 아기의자에 앉을 수 있기 때문에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식당에 갈 수 있습니다. 예전처럼 식당에서 퇴짜를 맞을 일은 없습니다. 



다만 좀 시끄럽습니다. 예전에는 거대한 유모차가 너얼븐 공간을 차지해서 그렇지,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자기의 존재감을 소리로도 표현하고요,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립니다.



요란한 소리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 건 아닌지 또 다른 의미로 마음을 졸이게 됩니다.







돌이 되지 않은 아기를 키우면 주변에서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아기는 누워있을 때가 편하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누워있을 때, 편한 지점이 있고 불편한 지점이 있습니다. 즉 얻는 것도 하나요, 내어 놓는 것도 하나입니다.



아기가 더 이상 눕지 않고, 앉고 기고 서면서 편한 부분이 있고 불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얻는 것도 하나요, 내어 놓는 것도 하나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무조건 좋은 점만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밝은 앞면 바로 아래에 어두운 면이 있듯이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좋은 면과 좋지 않은 면은 하나의 세트 구성 같습니다.



어떤 일로 무언가를 하나 얻었다면, 하나 내어놓아야 하는 것도 분명 존재합니다.



첫째 때는 아기가 낮잠을 잘 때 저도 함께 자서 체력을 보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기가 낮잠을 자는 그 시간에 모든 것을 멈추고 글을 씁니다. 글을 얻고 보충할 체력을 내어놓았죠.



그러니 모든 것을 다 얻겠다는 욕심은 내려놓아야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나 얻었으면 하나를 내어놓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어쩌면 세상은 하나를 얻고 하나를 내어놓으면서 그 균형을 잡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조건 먹기만 해서는 배가 빵 터지듯이요.



우리 하나를 얻었으면 하나는 내어놓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기로 해요. 얻을 것만 생각하지 말고 내어놓을 것도 생각해 보기로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여러분의 마음이 폭풍을 만난 파도가 아니라 잔잔한 호수처럼 고요해지실 거랍니다.






* <반가워, 나의 아기 선생님> 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 됩니다. :)



여러분의 삶이 얻는 것과 내어놓는 것으로 균형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은은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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