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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Mar 04. 2023

지하철 7호선에서 울려 퍼진 기관사님의 메시지.

나는 매일 지하철 7호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이렇게 지하철로 출퇴근 한지는 어언 2년 반이 다 되어가는데 평일에는 왕복 2시간 정도를 지하철에서 보내고 있다. 매일 지하철을 타면 나의 행동에도 고착이 생긴다. 타는 열차칸도 언제나 일정하고 지하철에서 하는 일도 대부분 동일하다.


나는 사람이 많지도 적지도 않은 7-2칸에 탄다.  7-2에서 탄 뒤에 내릴 땐 7-1에서 내린다. 그러면 바로 앞에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올라가 교통카드를 찍고 나가 가장 가까운 계단을 오르면 회사와 가까운 지하철 출구가 있다.

   

지하철 안에서 하는 일도 거기서 거기다. 핸드폰으로 글을 수정하거나, 전자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가계부를 쓰거나 한다. 앱테크 출석체크를 하고, 가끔 가족과 통화를 하거나, 가끔 게임을 한다.

 

나의 출퇴근 길은 늘 똑같다.


그런데 며칠 전, 지하철 출퇴근을 한 이래 처음으로 기관사님의 특별한 메시지를 들었다. 그 기관사님은 처음부터 뭔가 달랐었다. 지하철 역에 도착할 때마다 역 이름을 마이크에 대고 직접 얘기하셨다. 나는 무언가 다른 느낌에 약간의 호기심으로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을 뺐다.


사람이 가장 많이 오가는 [고속터미널] 역에 도착했을 때였다. 평소보다 다소 길게 문이 열려 있었다. 기사님은 말씀하셨다.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곳이니 문을 여유 있게 닫겠습니다.



정말로 지하철 문은 꽤 오래 열려있었고 이제는 더 이상 달려오는 사람들의 기미가 없을 때쯤 천천히 문이 닫혔다. 그리고 스피커에서는 기관사님의 말이 들려왔다.  



오늘 아침, 식사는 하고 나오셨습니까?
혹시라도 아침에 식사를 하지 못하고 출근하셨다면,
점심은 아주 맛있는 것으로 드시길 바라겠습니다.

비록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이겠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더 행복한 일이 가득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기관사님의 나긋나긋한 메시지를 듣는데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올해가 시작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에게 힘든 일이 연속으로 터졌었다. 첫 단추를 잘 못 꿰맨 것처럼 1월부터 엉망이었다.


나는 지난 2개월 동안 비와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폭풍우 속을  발 한 발 내딛으며 가는 느낌이었다. 언제 폭풍이 멈출 지도 알 수 없고,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지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를 했다. 하루하루 살아내기. 나는 온몸이 흠뻑 젖은 채로 매일 하루하루를 걸어 나갔다.


그런데 이 메시지가 지친 나의 몸과 마음을 녹여주었다. 잠시 나무밑에서 휴식을 취하는 데 딱 그곳에만 햇빛이 내리쬐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햇빛에 몸도 따뜻해지고 맘도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입가에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기관사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내내 7-2칸도 고요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관사님의 메시지를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부디 더 많은 사람들이 귓속에 이어폰을 빼고 그 메시지를 들었길 바랄 뿐이었다. 비록 얼굴도 본 적 없고 단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이지만 그날, 그 시간, 그 열차에 타고 있을 수 있어서 얼마나 영광인지 모른다. 기관사님 덕분에 그날 하루, 나는 다시 폭풍우 속을 헤치고 갈 힘을 충전할 수 있었다.


이따금 주변에 이런 분들을 발견한다. 우리 동네 27번 마을버스 기사님들도 늘 승객들에게 인사를 하신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에 어느 순간 답 인사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렇게 인사를 주고받노라면 굳어있던 얼굴 근육이 풀어지는 게 느껴진다. 마도 이런 분들 덕분에 삶이 조금 더 따뜻해지는 것이리라.


참.. 산다는 건 그런 것 같다. 그냥 서로 인사하는 것.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는 것.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인사로도 이렇게 마음이 녹아내리는데 소중한 이들과 주고받는 안부는 얼마나 더 삶을 풍요롭게 할까? 주 안부를 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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