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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온도 Sep 26. 2023

내 딸이 T라니..(feat.엄마는 F)

나는 MBTI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살면 살수록 도통 알 수 없었던 신랑에 대한 물음표가 MBTI를 접하면서 느낌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는 옹호자형 INFJ이다. 신랑은 경영자형 ESTJ다. 무려 3가지가 반대인 사람과 살고 있으니 결혼 초에는 정말 그에 대해 이해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그래도 MBTI덕분에 여러 가지 것들 이해하며 잘 살고 있다.


과몰입러인 나는 6살인 딸도 열심히 관찰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ISTJ로 추정된다. 론 커가면서 다른 성격들이 발현되어  달라지겠지만 현재는 현실주의ISTJ 인 것 같다.




나는 처음에 딸이 나를 닮았는지 알았다. 다소 예민한 기질이며 외향보다는 내향적인 면이 두드러져 반적으로 나를 닮았는 줄 알았다. 런데 최근에 딸을 관찰해 보니, 아 우리 딸은 F보다는 T구나..라는 것을 감할 수 있었다.


 처음,  T 구나 인식한 것은 친구 딸이 놀러 왔을 때였다. 친구 딸은 우리 딸보다 한 살 많은 7살이었는데,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어린이었다. 아이들에게 라이온킹 애니메이션을 틀어주었는데, 한참 뒤 친구 딸이 울면서 거실로 나왔다.


심바 아빠가 죽은 게 너무 슬퍼서 못 보겠어...

 

... 아?!


생각해 보니 우리 딸은 그동안 라이온킹을 꽤 많이 시청했지만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슬픈 동화를 읽어주었을 때도 슬프다거나, 가슴 아파한 적도 없었다.

  

그때 알았다. 아..?! 딸이 나를 닮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어릴 적부터 감수성이 풍부했다. 책이며 만화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도 누가 울면 같이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어릴 적 '아기공룡둘리_얼음별대모험'에서 둘리가 엄마랑 헤어질 때 어찌나 많이 울었었는지.. 너무 울어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신랑과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볼 때도 늘 깊게 몰입하여 어느새 울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 반면 신랑은 옆에서 "왜 울어?" 하며 나를 신기해하는 사람이었고, 나는 "아니, 여기서 왜 눈물이 안나?"라고 답변하며 그를 의아해하는 사람이었다.  

 

친구 딸이 울면서 나왔을 때 우리 딸도 같이 나왔었는데 울고 있는 언니를 보는 표정이 마치 신랑이 나를 보는 표정 같았다.


그 뒤로 나는 열심히 관찰을 했다. 일부러 여러 가지 질문도 던져보았다.



 

 나는 현재 둘째를 임신 중인데, 배가 꽤 큰 편이라 허리며 어깨며 다리며 안 아픈 곳이 없다. 하루는 등이 너무 아파서 딸에게 말했다.



"엄마가 배가 너무 커져서 등이 너무 아프다..
엄마가 이렇게 아플 때 우리 딸은 엄마한테 뭐라고 해줄 거야?"

"밴드 붙여!"
(아이들은 보통 밴드를 만병통치약처럼 여겨 아플 때마다 붙이곤 한다.)



밴드붙이는것도 암요 사랑이지요


공감을 해주는 F보다 문제를 해결해 주려 노력하는 T성향의 사람들이 하는 답변과 비슷했다. 하하하하하하하 웃펐다. 랑이 T니까 신랑을 닮을 수도 있는 건데 왜 나는 줄곧 딸이 날 닮았다고 생각했을까?


딸에게 말했다. "딸! 다음에 누군가가 아프다고 하면, 밴드붙이기 전에 먼저 괜찮아?라고 물어봐줘~! 알지?^^ "



* 위에 언급한 친구가 어느 날 역시 딸이 좋다며 톡을 보내왔다. 오늘따라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어서 자기도 모르게 "아~ 커피 마시고 싶다~"라고 내뱉었는데 딸이 "그럼 우리 같이 커피 마시러 갈까?" 하며 함께 커피숍에 갔다고 했다. 둘은 커피숍에서 음료를 마시며 한껏 수다를 떨었고 친구는 역시 딸이 좋다며 우리는 행운이라며 옅게 흥분해서 말했다.

나는 또 궁금증이 일었다. 과연 우리 딸은 내가 커피 마시고 싶다 할 때 어떤 반응일까?


"딸~ 엄마 커피 마시고 싶다~~!"

"(나무라듯) 엄마~~ 커피는 아까 아침에 마셨잖아~"


하하하하하! 역시나 웃펐다. 내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그저 팩트를 시전 하는 딸이었다.


"아까 마셨지만 또 마시고 싶을 수도 있지~!! "


"그래? 그럼 마셔~!"



딸 입장에서는 '아니 커피를 마시고 싶으면 마시지 왜 나한테 그러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질문을 통해 나는 우리 딸은 T구나~ 하고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그날은 내가 새벽에 다리에 쥐가 나서 깼던 날이었다. 안방에서 잠을 자다 깬 뒤에 잠이 오지 않아 티브이가 있는 방으로 옮겨가 티브이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딸은 아침에 깨서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엄마, 왜 여기서 자고 있어?"


"아~ 엄마가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났어. 쥐 알지? 다리가 딱딱하게 굳는 거.
그래서 잠이 깨서 티브이방에서 티브이 보다가 여기서 잠들어 버렸네"

그 말을 들은 딸이 갑자기 내 다리 몇 번 조물거렸다.
두어 번 주무르더니 다시 내 쪽으로 와 기댔다.

나는 내심 깊은 감동을 받은 채로 물었다.

"딸~~ 주무르다가 말고 왜 왔어~ 다시 주물러 줘~"



"(?) 엄마 다리가 딱딱해졌는지 봤는데"




흐엉.. 그렇다. 에게 다리에 쥐가 났던 상황은 과거에 벌어진 일이라 그런지 딱히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저 다리가 딱딱하게 굳어진다는 그 상황이 신기해 확인해 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아마 딸은 "엄마 다리에 쥐가 나서 딱딱해졌어. 다리 좀 주물러줘!"라고 말했으면 바로 다리를 조물조물했을 아이였다. (신랑이 정말 딱 이런 타입이다. 내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이상, 굳이 직이지 않는다. 말하면 거의 100%로 다 해주지만 그 전에는 필요하면 말하겠지~~라고 생각하여 행동하지 않는다)

 


딸의 성격이 점점 짙어져 갈수록 나와는 참 많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정말 소름 끼치게 신랑같을때가 있다. 나와 딸이 함께하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데도 아빠를 닮는 거 보면 역시 타고 태어나는 유전자가 있는 거구나 싶다.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역시나 '감정적인 면이 더 발달한 F인 나'와 '사고적인 면이 발달한 T인 딸'과의 대화를 할 때면 가끔... 뭐랄까.. 헉 할 때가 있다. 서운하긴 한데 그렇다고 대못이 박힐 정도로 서운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말짱하지도 않다. 딸의 성격이니 그러려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기분이 복잡 미묘하다.


왠지 저렇게 말했다가 친구들 사이에서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도 T인 신랑을 니 친구들도 많고 그럭저럭 잘 사니 나의 염려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은 또 딱히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다른 이의 마음이기분등을 너무 많이 고려하는 나보다 누가 뭐래도 마이웨이를 가는 그들이 인생 살기가 더 편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직히 좀 부다.


여러 생각이 든다. 결국 다 가지면 좋겠지? 공감도 잘하고 사고도 잘하고! 또 나는 딸이 어느 정도 공감을 잘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으니까 계속 옆에서 얘기는 해 볼 예정이다.


과연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감성과 이성이 적절하게 있는 삶이 최고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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