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Nov 13. 2017

스웨덴 여자 티니카의 시련:수돗물과 아메리카노가 뭐길래

티니카에게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을 때

1. Drinking tap water in Seoul / 원효스님의 경지에 이를 뻔한 사연

Tap water in Sweden tastes great!

인간이 살면서 필요한 것들이 많지만, 그중 없어서 안 되는 것, 정말 우리 생명과 직결된 문제 중 하나는 '물'이다. 심지어 우리 몸의 가장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것도 '물'이 아니던가. 우리 몸과 삶에 무수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물이지만 '무수무생(無水無生)': 물이 없이는 삶도 없다.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식물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시원한 물 한잔 벌컥벌컥 들이켜 마시는 것 만큼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하는 법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벌컥벌컥 들이켜 마신 물이 내가 마셔서는 안 될 물이었다면....?? 아무리 원효대사는 해골물을 마시고도 물 맛이 끝내준다 생각하셨다지만, 나는 아직 그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나 보다. 사실, 이를 뻔도 했지만 한국 친구들의 만류로 나는 그 경지에 이르기 직전 내려오고 말았다.  어쩐지 물 맛이 평소 마시던 물 맛이 아니더라니... 오늘은 한국에서 수돗물을 한 달간 벌컥벌컥 들이킨 나의 생활수(水)기를 나누고자 한다!


물은 우리의 생명과도 직결된 문제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리터(L)의 물을 마신다. 더욱이 운동을 하거나 광나는 꿀피부를 위해서라면 더더욱 어떤 물을 얼마나 마시는지는 중요하다. 그런데 지구촌 시대, 물을 마시기 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사실이 있다. 내가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마실 수 있는 물의 종류가 달라진다면?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수를 사거나 정수기를 설치해 정수물을 마시지만, 스웨덴에서는 수돗물을 마신다. 사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 까지는 정수기가 그렇게 흔할 수 있는지도 몰랐다! '정수기가 뭐예요? 수돗물 마시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었던가요?'. 스웨덴에서는 수돗물이 충분히 깨끗하고 맛이 끝내주기 때문에 정수기가 필요 없다. 어느 정도로 수돗물이 맛있기에 '끝내준다'라고 까지나 할까? 여기 그 증거가 있다! 나의 고향 Nordmaling(노드말링)에 들어오는 순간 여러분을 가장 먼저 환영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자부심이 담긴 커다란 사인이다. '북부 스웨덴에서 최고로 수돗물 맛이 끝내주는 곳!'.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이 사인이 여러분들이 보게 될 첫 환영 문구다.  '수돗물이 맛있다고?'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을 테지만 정말 수돗물 맛이 끝내준다. 과연 그 비밀이 뭘까? 스웨덴의 수돗물은 지하에서 여러 층의 자갈과 모래를 거쳐 자연스레 정화된 물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에서 수돗물을 소독할 때 쓰는 클로라이드로 소독할 필요가 없다. 간혹 스톡홀름과 같은 큰 도시나, 호수와 같은 수원지에 접근성이 떨어져 지하수를 얻을 수 없는 곳은 클로라이드로 소독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스웨덴에서는 자연정화된 수돗물을 먹는다.  때문에 수돗물 특유의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한국으로 치면 삼다수, 백산수 같달까? 유럽산 삼다수인 에비앙 저리 가라다!

Sorry, evian

때문에 부엌이나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먹는 스웨덴 사람들을 보고 놀라지 마시라! 사실, 스웨덴에서는 수돗물을 마시는 것보다 플라스틱 병에 든 생수를 사 먹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할 정도다. 스웨덴에서는 플라스틱을 살 때마다 병 값을 지불하는 Pant 시스템 때문에 물병을 사는 만큼 쓸데없는 지출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물을 사 먹는 것이 쓸데없이 많은 양의 플라스틱을 낭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에비앙, 미앙하지만 스웨덴은 당신들의 좋은 마켓이 아니야. 어쩌면 최악의 마켓일지도!).

대신에 스웨덴에는 탄산수나 과일 맛이 나는 물을 팔기도 하는데, 생수를 못 사 먹어서가 아니라 콜라나 사이다와 같은 설탕이 가득한 탄산 대신 칼로리 없이 청량감 넘치는 음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돗물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So fresh!

My friends' horrible mental picture about me

그런데 나는 다른 나라로 여행할 때마다 나는 생수를 사야했다. 수돗물이 마실 수 있는 만큼 깨끗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거나, 이를 닦거나, 손을 씻는 용도로는 적합했지만 마시기엔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 가기 전 한국에서는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지 조사해보니, 수돗물이 깨끗하고 마실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수돗물이 마실 수 있는 만큼 깨끗하다는 것이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한국물을 마신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았다. 나는 한국 친구와 대화하는 도중에 이 사실을 깨우치기까지 몇 주가 걸렸지만... 내 친구들은 내가 수돗물을 마셨다는 사실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짜 수돗물을 마셨다고?? 샤워기에서 나오는 그 물을??"

물론 나는 주방 수도꼭지에서만 물을 받아먹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표정을 보자마자 내가 오히려 겁에 질리고 말았다. '정말 내가 그 동안 마신 물이 깨끗하지 않았나? 지난 몇 주 동안 내 몸에 독극물을 서서히 넣은건가...?' 고백하건대, 사실 수돗물이 맛있지는 않았지만, 내겐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한 번도 의구심을 가진적이 없었다. 내 친구들은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고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생수를 몇 병 사다가 냉장고에 재워놓도록 했다. '수돗물을 마시는 내 모습을 상상했을 때 너무 슬퍼 보였나? 별로였나? 아니면 단지 그 사실 자체가 잘 못 되었던가?' 나는 결국 생수를 사먹기 시작했고, 사실 그 맛이 수돗물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에 한국에 사는 내내 수돗물 마시기는 포기하고 말았다.



2. AmericanonononoNo! YesYesYes! / 아메리카노노노노노(No) 좋아좋아좋아~

'아메리카노 좋아좋아좋아♬' 한국에서 10cm의 아메리카노가 유행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카페에 가서 한 70%의 한국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할지도 알 것 같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한국 사람들의 무한한 커피사랑과 맞먹을 정도로 사실 스웨덴 사람들도 커피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다! 실제로 영국의 일간지 '텔레그라프(The Telegraph)가 전 세계 커피 소비량 지도를 제작했는데, 스웨덴이 6위라는 기염을 토했다. 1인당 연간 8.2kg의 커피빈을 소비하면서... (http://www.telegraph.co.uk/travel/maps-and-graphics/countries-that-drink-the-most-coffee/)

<노르웨이와 핀란드 사이가 스웨덴이다>

1인당 8.5킬로라니. 엄청난 숫자다. 한국에서도 분명 커피를 많이 드시는 분들은 이 정도 소비하지 않을까 싶다. 나와 같은 커피 헤비 드링커(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들)라면 하루에 필요한 카페인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 경우 어떤 금단현상이 나를 괴롭히는지 충분히 예측 가능할 거다. 피곤하고, 괜스레 짜증 나고, 머리가 아프고.. 이런 내게 한국에서 내가 사랑하는 커피를 매일, 충분히, 잘 섭취할 수 있는가는 중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가기 전  한국에서는 카페 건너 또 다른 카페가 줄지어 서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할렐루야!(어떤 종교적 의미도 없다)'를 외쳤다. 안 그래도 매일 커피 내려 마시는 게 귀찮았는데!

.

Bryggkaffee / https://www.nestleprofessional-nordic.com

한국에 아메리카노가 있다면, 스웨덴에는 bryggkaffee(드립커피)가 있다. 어쩌면 사약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는 새까맣고 아주 맛이 커피. 스웨덴 사람들은 커피는 자고로 진해야 커피"라고 믿는다. 커피가 연하다 싶은 스웨덴 사람들은  손뿐만 아니라 심지어 머리까지 절레절레 내젓는다.'Nonononono'. 스웨덴 사람들도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긴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를 곁들여 먹는 FIKA(피카:스웨덴 식 커피 브레이크)가 더 흔하다. 하지만 친구의 집에서 라떼나 카푸치노를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죄송하지만 꿈 깨세요! 스웨덴 가정에서는 커피를 내려먹는 커피프레스나, 커피 필터가 흔하다. 카페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은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스웨덴 사람들은 항상 bryggkaffe (드립커피)를 내려먹고, 여기에 기호에 따라 우유, 두유나 오트밀 우유 등을 타 먹는다. 그래서 스웨덴에서는 기본 커피가 에스프레소에 물을 섞어 먹는 아메리카노가 아닌 찐찐하게 내린 드립커피다.


    그럼 내 생애 첫 아메리카노는 언제였을까? 사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시켰다. 아메리카노가 아메리카노인 줄도 모르고, 단지 내가 스웨덴에서 마시던 새까만 드립커피와 비슷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음, 이  풍부하고 진한 커피 한잔이면 떨어진 카페인도 업(UP)! 오늘의 활력을 다 얻을 수 있겠지' 한껏 기대에 들떠 커피를 시켜 한 모금 마셨는데, 이게 웬일! 내가 주문한 커피는 온데간데없고, 따뜻한 갈색 물 한 잔이 들어있을 뿐이었다. 큭큭 웃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어이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갈색 물을 끝끝내 끝내지 못했다. 더 이상 삼킬 수가 없었다. 아메리카노가 갓 뽑아낸 에스프레소에 물을 엄청 많이 섞은 커피라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첫 아메리카노의 충격 이후, 번번이 스웨덴에서 마셨던 찐한 커피를 수소문하며 찾아다녔지만, 한국에서는 그 커피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결국 나는 스웨덴 커피 찾기 모험을 접고 말았다. 대신에(!), 나는 한국에서 내가 스웨덴에서 절대 맛볼 수 없었던 다양한 커피의 세계로 퐁당 빠져들었다. 그중 단연 나의 최애 커피는 '아이스커피'. 내가 한국땅을 처음 밟았을 때가 굉장히 무더운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나는 아이스커피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다. 한국에서 여름에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도 때문에... 스웨덴에서 즐겨마시던 뜨거운 커피는 잊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리움에 사무쳤던 진한 스웨덴식 드립커피는 금세 아이스라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아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사실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꽤나 걸렸다. 나와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순전히 한국 사람들 덕분이거나/ 때문이다(지금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맛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지만 처음에는 제게 고통이었어요..).  한국에서 1년 반 동안 한국어를 배우는 동안,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즐겨 마신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심지어 '아아'라는 말도 생겼을 정도니.. 990원, 1000원, 1500원 또는 별다방에서 가장 싼 메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인 것과, 테이크 아웃 커피전문점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기 위해 줄지어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사람들이 줄까지 서서 사 먹는지 궁금했다. '제일 싼 커피라서? 아니면 한국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트렌드인가? 한국 사람들은 트렌드에 민감하다던데...' 그래서 나는 도전해보기로 했다. 나의 파트너 일본 친구 아야코와 함께. 2016년 봄에서 여름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 한 몸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위해 희생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하여 “한국사람처럼 살아봐야겠어. 우리의 노력을 우리의 미각도 알아챈 걸까.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멀어질 것만 같았던 아메리카노였지만, 마시면 마실 수록 우리는 어느새 그 맛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익숙해졌을 뿐 사실 고백하건대, 맛있지는 않았다. 대신 우리는 새로운 한국적 맛의 깨달음을 얻었다. '시원하다(cool and refreshing!)'.  실제로, 우리는 여름 내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아메리카노 맛에 익숙해지고, 적어도 우리가 사랑하는 한국 사회에 조금 더 녹아든 느낌이었다. 아이스라떼를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한 유학생 주머니에서 한 푼이라도 더 아낄 수 있었던 건 덤으로!


한국에서 누군가 스웨덴으로 여행을 온다면, 대부분의 스웨덴의 카페들이 아메리카노나 아이스커피를 팔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낙담할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스웨덴에 돌아오자마자 그랬으니까. 아마 스웨덴의 카페들은 자신들이 아메리카노나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팔지 않는다는 사실을 커피의 품격을 유지한다는 명목 하에 자랑스레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웨덴에 돌아온 이후 나는 한국의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그립다. 집에서 간편하게 드립커피를 내려먹고 그 진한 풍미를 즐기는 것도 정말 사랑하지만, 이제는 내가 사는 이 곳에도  한국식 카페가 있기를 바라곤 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아이스커피를 마음껏 살 수 있는 곳. 아마 더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이 세상엔 내가 알지 못했던 커피 종류가 이렇게나 많구나 하고 깨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더 많은 사람들이 스웨덴에서 한국식 커피를 찾게 되고, 카페들도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하지 않을까? 그때까지 나는 하염없이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더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한국을 찾고 한국의 다양한 매력을 발견하길 바란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당장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서 직접 만들어 먹는 게 나을지도..


*스웨덴 사람들은 왜 수돗물을 마실까?(도희이야기): https://brunch.co.kr/@enerdoheezer/73





'스웨덴과 한국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 도희와 티니카

작가의 이전글 티니카의 시련:수돗물과 아메리카노가 뭐길래(Eng)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