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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an 11. 2019

10대에 독립했다면 일찍 어른이 되었을까?

나는 언제 부모님께 어른으로 인정받을까?

한국에 돌아온 내게 엄마는 엄마의 말에 반박하는 것이 너무 늘었다고 했다. 반박한다기보다 사실 다른 생각을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늘 엄마와의 토론은 말싸움으로 번진다. 한국인이니까, 나이가 있으니까, 여자니까 등 엄마가 나를 규정하는 여러 기준들이 나를 옥죌 때가 있다. 나는 그것들은 나의 정체성을 나타나는 일부분일뿐이지 나를 정의할 수 없다 반박한다.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고자 시작한 대화는 크나큰 의견 차이만 더욱 명확히 확인하고 끝날뿐이다.


엄마가 하는 많은 걱정들은 내가 여러모로 불안정한 상황에 있기 때문임을 안다. 평균 결혼 적령기에 이른 한국인 여성, 가방끈은 긴데 아직 본격적으로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 데다 만나는 사람은 없고... 엄마의 계산으로 지금 나의 상황을 분석해보면 내가 취업을 해서, 돈을 모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 쯤이면 내 나이가 너무 많다. 하지만 평균은 평균일 뿐 개개인의 삶을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나는 엄마의 평균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 평균 역시 다양한 개개인의 인생의 총 합을 그 수로 나눈 것에 불과하잖아. 그 평균에 조금 벗어난다고 해서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라고 반박하지만 사실 마음 한 켠은 묵직한 삶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짓누른다. 내가 한 말에 책임을 질 만큼 나는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어른.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책임'이란 단어가 가슴에 꽃힌다. 나는 어른일까? 그렇지 않다면 언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 일찍 어른이 된 친구들

스웨덴에 사는 동안 주변에서 일찍 어른이 된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대학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은 나보다 조금 더 일찍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살고 있었다. 자라온 환경이 너무 다르기에 우리의 삶의 방식은 다를 수 밖에 없었지만, 일찍이 부모로부터 독립해 주도적으로 삶을 사는 모습은 귀감이 되었다.


스웨덴 친구들의 경제적인 독립이 빠른 이유는 스웨덴에는 학업지원금 제도(Centrala Studeistödnämnden, 이하 CSN)때문이다. 스웨덴의 고등교육을 받는 모든 학생들은 한 달에 32만 원 정도(2, 500크로나)의 학업보조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는다. 하지만 이 곳의 많은 학생들도 다른 지역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 평균 10,000크로나(현재 환율 기준 127만원 정도) 정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렌트비 포함 평균 생활비 100 ~ 120만 원을 충당하기 위해서 필요한 나머지 금액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국가로부터 장기로 1%도 되지 않는 금리로 저리 대출을 받는다(CSN 상품). 이 대출은 각자가 첫 직업을 구한 시점 부터 조금씩 갚아나가면 된다. 덕분에 대부분의 스웨덴 대학생들은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지원을 받지 않는다.


대학 등록금, 생활비, 유학 생활비, 보증금 등 많은 경제적인 부분을 부모님께 수년 간 의지해온 나로서는 100%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공부하고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제도의 혜택이 다른 이유가 컸지만, 심리적으로 자신의 학업과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자세는 내게 필요한 자세였다. 렌트비, 진로, 생활비 걱정 등 우리가 나누는 삶의 고민은 비슷했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독립심은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온전히 자기 힘으로 생활하는 것과 달리, 나는 필요할 때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왔음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나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했고, 나는 그 빚을 안고 산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자립이 친구들의 심리적 독립을 가능하게 했을까?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주목하게 된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였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내리사랑 오름사랑의 수직적인 관계이기도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서 평등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내리사랑은 국적을 불문한다해도, 부모가 성인이 된 자식을 어른으로서 인정해주고 독립된 생활을 존중해주는 모습은 내겐 조금은 낯설었다. 진로, 취업, 결혼, 동거 등 삶의 중대한 결정앞에서 내가 주변 어른들의 많은 걱정과 간섭을 받는 것과 달리(사랑이기도 하지만 때론 부담스럽다), 친구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독단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부모와 대화를 많이 하고, 부모는 그 결정을 존중해 줬으며, 친구들은 그 결정에 책임을 졌다. 반대로 부모의 삶의 방식도 친구들은 존중했다. 부모는 독립적으로 노후를 설계했고, 부모가 이혼하고 새로운 파트너를 찾은 경우에도 많은 친구들은 자연스레 엄마 아빠의 새 가족과 잘 어울렸다.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었다.


이런 독립심은 언제적부터 생겼을까?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여러 자료를 찾아본 결과 스웨덴에서는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을 때 독립심을 강조한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스웨덴의 많은 가정이 맞벌이 가정이기 때문에(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율 80%(2017)) 어릴 적부터 아이들은 숙제, 집안일 등을 스스로 해결하는 습관이 있었다. 더욱이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는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존중받는다는 안도감을 주는 것 같았다.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어릴 때 쌓은 습관과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는 그들이 우리보다는 좀 더 빨리 독립하고, 각자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때문에 부모 역시 자식이 성인이 된 이후 보다 자유로웠다. 매번 부모라는 나무 아래서 열매만 따먹은 나의 지난 날들에 부모님께 미안해졌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 여전히 부모님의 보호막에 걸쳐 살고 있는 나를 반성하며, 더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느낀다.


출처: Pixa bay


이 글은 스웨덴 친구들이 우리보다 더 독립적인 삶을 살고있다 칭송하기 위해 쓴 글은 아니다. 내 주변에도 자신의 힘으로 독립적인 삶을 설계하는 친구들이 많다. 다만 인간의 생애 주기를 볼 때 우리보다 좀 더 일찍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삶을 설계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배울 점이 있었다. 이른 독립은 개인의 책임감을 증진시키고, 부모는 자식의 선택들을 인정해주며 각자의 삶을 지지해주었다. 한 친구는 스웨덴에도 부모가 자식이 어떤 직업을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 바람을 강요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했다. 자식들이 따르지도 않고..


제도와 문화적 차이를 막론하고, 성인이 된 내가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독립하려는 노력을 좀 더 했더라면 나와 부모님의 관계는 달라졌을까? 우리 부모님은 그 누구보다도 내 선택을 존중해주시고 지지해주셨지만, 여전히 가치관의 갈등은 존재한다. 그리고 부모님께 받은 것이 많은 나는 내 소신(이라 쓰고 멋이라 읽는다)대로 살고 싶지만, 마음 한켠에 부모의 희생이 묵직하게 쌓인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적정한 선을 어디다 그어야 할까? 부모님에게 나는 언제 어른이 될까? 생각할수록 내가 이기적이지만, 나는 부모가 되면 나의 아이를 조금은 더 일찍 놓아주고, 지켜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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