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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y 28. 2019

삶의 기준을 남에게서 나에게로 옮기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책장의 맨 윗 줄의 구석진 한 칸은 어릴 적부터 써오던 내 일기장을 모아두기 위해 비워놓았다. 치열한 입시 기간에 썼던 일기장 속에는 공부하다 잠들어버린 나를 꾸짖는 내용도 있고, 여행 중 쓴 것에는 새로이 알게 된 나의 모습에 대해 놀라는 나 자신과, 다른 세계를 동경하는 내 모습도 녹아있었다. 여러 일기장을 읽다 우연히 대학교 2학년 때 쓴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아, 뚱뚱한 내 모습이 정말 싫다. 오늘도 비스킷 한 개를 먹었다. 왜 나는 식욕을 참지 못할까....'

그 시절의 일기장에는 그다지 행복한 모습은 없었다. 대학교 2학년, 친구들과 한창 경쟁적으로 다이어트를 할 때의 자기혐오가 오롯이 녹아 있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남과 나를 비교하고 나를 비하하는 생각들 뿐이었다. 169cm의 한국 여성의 평균 키보다는 크고, 그 당시 미의 기준이던 소녀시대만큼 마르지도 않은 내 몸은 내게는 큰 문젯거리였다. 내 주변에는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예쁜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이 스트레스로 대학교 2학년 때 단백질 파우더만 먹으며 PT를 받고 8킬로를 뺐는데, 살을 빼니 자신감과 자존감이 솟아올랐다. '살 많이 빠졌다~ 예뻐졌다~'라는 칭찬을 남에게서 들으며 '에이 아니에요~'라고는 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좋았다. 그땐 그게 칭찬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더 경쟁적으로 예뻐지려 노력했다. 스스로 미의 기준은 정립하지 못한 채 남이 보기에 예쁜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리는 무심코 칭찬으로 누군가에게 '살 진짜 많이 뺐다~ 턱선이 살아있네'라고 말하거나 '살 좀 쪘다? 요즘 잘 지내나 봐' 등의 말을 아무 생각 없이 흘러 내보낸다. 칭찬이나 적대감 없이 내뱉은 말이지만, 사실 과연 그 말이 진정 칭찬이거나 무례하지 않은 말이었을까? 칭찬이든 농담이든 남이 나의 외적인 것을 대놓고 평가하는 일은 굉장히 조심스러워야 하는 일이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하더라도, 생각을 말로 내뱉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자기혐오도 결국 내가 남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바라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남의 시선으로 나를 판단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평가받는다 해도 상처를 입지 않게 되었다. 무엇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내가 워너비 몸매라도 가꾸게 된 걸까?


2014 베를린 NGO 프로젝트 참가자들과 함께(좌), 2017 카우치서핑으로 시작한 스웨덴 덴마크 여행(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나의 미적 기준에 관대해진 계기20대의 여행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이 만남들은 내게 다양한 삶의 양식을 보여주며, 미적 기준을 넘어 삶 그 자체에 대해서도 관대한 시선을 갖게 해 주었다. 보다 자유롭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며 각자 원하는 삶의 방식을 향유하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내가 결핍을 느끼고 있던 부분을 채워주었다. 그 누구도 나의 외적인 모습을 평가하지 않았고, 내가 어떤 취향을 가졌든, 일을 하든 존중해줬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존중이라는 말의 포장을 벗기면, 1)평가를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2)타인의 선택에 간섭하지 않는다 또는 3)무관심하다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만난 사람들 중 대다수가 개인의 삶에서 타인의 시선보다 나의 욕구와 마음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게 여긴다고 느꼈다.  여행의 모든 순간에, 늘 남과 비교하고 다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대부분이 선택하는 길을 질문 없이 걸어왔던 날들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 한편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여행 덕분에 진짜 내 마음을 만났고, 이 시간은 환경에 상관없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되묻게 된 시간들이다.


특히 스웨덴에서의 2년은 오롯이 나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시간이다. 지난 여행들은 일시적인 머무름이었기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100% 눈치 보지 않고 살기는 어려웠다. 완전히 환경으로부터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2년 동안 스웨덴에서 머무른 시간은 해방의 시간이었다. 물리적으로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익숙했던 친구들로부터 멀어졌고, 성, 나이에 대해서도 구애받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나에 대해 또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평가하지 않았다. 덕분에 내 욕구, 의지에 집중하며 하고 싶은 것을 시도해볼 용기가 생겼다.


스웨덴, 눈치 주지도 보지도 않는 사회

다양한 스타일의 스웨덴 사람들(문신은 평범한 문화다 47%의 스웨덴 사람이 문신을 한다는 통계가 있음), 출처(Imagebank Sweden)

스웨덴에 도착한 첫날의 기억은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북부 우메오로 가기 위해 스톡홀름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 하늘색, 분홍색 머리, 문신한 사람들, 다양한 차림의 패션 스타일, 수염을 기른 남자들, 민머리의 여성/ 남성, 장발 남성, 피어싱을 한 사람들. 내 생애 가장 외적으로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을 보게 된 시간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보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아무도 누군가에게 시선을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만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며 바쁠 뿐이었다.


미적 욕구가 충만한 젊은이들이 모인 학교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스웨덴 학생들 사이에도 트렌드가 있었지만(스웨덴의 많은 학생들이 우리나라엔 여우 가방으로 알려진 스웨덴 브랜드인 Fjallaven(피엘라벤) 백팩을 메고 다닌다) 지난겨울을 강타했던 우리나라의 롱 패딩 트렌드만큼은 아니었다. 분명 트렌드가 존재했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친구들이 많았다.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에서 대체로 비슷한 패션을 소비하는 우리 대학 모습과는 달리 다양성의 스펙트럼이 더 넓었다. 대학교는 그 해의 대중 패션 트렌드를 파악하기 가장 좋은 곳이라 생각했는데.


'스웨덴 사람들은 남을 많이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아. 또, 사람들이 사실 미국이나 우리나라처럼 뽐내지 않는다 들었어. 그런 행동이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행동으로 인식된다고. '

친구에게 내가 보고 들은 바를 전달하니, 친구는 '나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하지 않다고 배웠어'라고 되받는다.  늘 내가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배웠는데... 친구의 대답은 의외였다.


Jante's law
'스칸디나비아에는 얀테의 법칙(Jante's law)이라는 게 있어. 스웨덴뿐만 아니라 덴마크,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핀란드 사회에 깔려있는 행동 양식이야. 1933년 덴마크 소설가 Askel Sandemose의 소설 'A Fugitive Crosses His Tracks (En Flyktning Krysser Sitt Spor)'에서 처음 그 개념이 나타나. 그 소설 속에는 덴마크 사람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개인보다 공동체가 우선돼. 평등한 사회의 공동의 선과 질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차별을 일으킬 수도 있는 행동은 억압받아. 여기 10계명이 있는데 대부분 나를 뽐내지 않고, 특별하다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이 나를 신경 쓴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내용이야. 나는 남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인 거지. 그런데, 사실 얀테의 법칙에 대해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기도 해. 사회가 개인을 억압한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아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안티 얀테(Anti-Jante) 운동도 활발해.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 스스로를 믿어라 큰 꿈을 꾸라' 등 개인의 야망, 열망 등을 감추지 말고 적극적으로 드러내자는 거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스웨덴 사회에서 개개인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되(그러나 피해는 주지 않는 범위내에서다), 타인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는 이유를 나름 정리할 수 있었다.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는 서구사회 중에서도 진보적인 나라 스웨덴에서, 개인보다 공동체가 중요하며, 개인의 행동이 제한받는 법칙 같은 것이 전해져 내려온다는 것이 의외였다.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운동도 커지고 있다는 사실은 재밌었다. 과시가 넘치는 사회에서 내가 피로를 느끼는 것처럼, 지나친 사회의 규범에 스칸디나비아 사람들도 피로해지나 보다. 사람들은 안티 얀테 운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열망, 욕망, 과시욕을 드러내고자 한다. 하지만, 명예, 과시와 눈치 싸움이 심한 사회에서 자란 내게 이런 생각은 나 자신과 타인의 시선 간에 무게 중심을 찾게 해 주었다.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 사회이자, 주변의 누구도 간섭하지 않던 스웨덴에서의 2년 동안 나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덕분에 내가 언제, 편안함을 느끼고,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고,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등 내 안에서 발생하는 욕구들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는데, 줌바에 무아지경 빠져버린 나를 발견하기도 했고, 나는 리듬감은 꽝인 줄 알았는데, 평균 이상은 하는 사람이구나 자신감도 얻었다. 해보지 않아서, 또 남의 눈치를 보느라 몰입한 적이 없어서 몰랐던 것이다. 음식을 먹을때도 아무거나가 아닌 '난 이건 먹지 않아요' 라고 정중히 의사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집중하면서 더욱 나에 대해 솔직해졌고, 나는 내 개성을 깎아낼 수 있었다. 깎아내리는 것이 아닌 스스로도 몰랐던 뭉뚱그려진 내 개성을 조각내며 다듬는 동안 비로소 나는 온전한 내가 되기 시작했다. 한국과는 '다른' 가치를 지향하는 스웨덴에서 내가 놓쳤던 부분들을 찾게 된 덕분이다. 


우리의 취향은 다를 뿐 우리는 서로를 평가할 자격이 없다.  중요한 것은 서로 존중하는 것 그 뿐이다. 나 역시 타인을 더 아끼고 존중해야겠다고 느낀다. 내겐 타인을 평가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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