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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y 21. 2019

결혼만이 사랑의 종착역일까?

다양한 형태의 가정과 결혼 생활

결혼은 꼭 해야할까? 결혼은 왜 하기 싫은 것이 되었을까? 최근 결혼 대신 비혼주의나 동거를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실제 결혼을 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관계를 꾸려나가는 많은 사람들. 개인의 행복과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한 요즘, 전통적인 결혼 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옥죄는 올가미 같다. 여성의 경우에는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과 시월드에 대한 부담감이 주된 이유고, 남성의 경우 경제적 책임이나 구속받는 삶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각자가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혼주의자가 된 것이다. 한쪽에 일방적으로 특정 역할 부담이 주어지고 개인의 자유가 억압받는 전통적인 제도 이외에 선택지가 없는 우리는 결혼을 포기하는 것을 택했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은 마땅히 존중 받아야 하며 결혼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 선택이 우리의 자발적 선택인 걸까? 사회가 암묵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면? 물질적인 부담, 전통적인 성 역할 및 결혼 생활에서 오는 부담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포기 또는 회피하는 것처럼. 왜 우리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일까? 비혼만이 탈출구일까? 대안이 생긴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20대 초 중반의 나는 결혼에 대한 생각도 별 계획도 없었다. 막연히 언젠가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고 혼자 살며 내가 하고 싶은 일 취미 활동을 향유하며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경쟁적인 삶을 물려주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한국 사회에서 여자에게 부여되는 며느리, 엄마 등 다양한 역할을 일을 하면서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더욱이 인간의 궁극적인 외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누구도 그 외로움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혼자 잘 사는 법을 더 연습하는 게 않을까라는 생각. 


그런데, 스웨덴에서 보낸 2년은 내 다짐을 180도 뒤집어 버렸다. 결혼이 하고 싶어 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정을 꾸리고 싶어 졌다. 인간은 전적으로 사회적 존재이기에 결코 평생 혼자 살아갈 수 없고 가족이 삶에 가져다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 지를 깨닫기도 했지만 제도에 따라 육아 및 경력 단절을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 커리어를 망치면 어떡하지?와 같은 두려움을 감싸주는 제도와 문화.


결혼의 본질에 대하여

스웨덴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고도 가정을 꾸릴 수 있다. 사실혼 관계와 비슷한 삼보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2년 동안 살면서 지켜본 스웨덴은 굉장히 가족 및 가정 중심의 사회였다. 가족 중심이라는 얘기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뒷받침해주는 제도와 문화가 잘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으며 각자의 역할을 다한 후, 함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저녁과 주말에는 여가 활동이나 저녁 식사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한편, 가정 중심이라는 이야기는 '결혼'이라는 제도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로 가정을 꾸려도 제도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에 거의 차이가 없고, 남들의 눈총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웨덴에서는 이 형태를 '삼보(Sammanboende)'라고 하는데, 함께 산다는 의미다. 단순히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대한 소유권을 공유하고 법적으로 결혼 커플만큼 보호받는 사실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스웨덴 세무서에서 파트너와 같은 주소지에 자신의 것을 등록하면 검토 후 그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다. 프랑스의 팍스와도 비슷한 개념이다. 스웨덴은 1970년 대 급격한 결혼 비율의 감소와 동거 비율의 증가를 겪은 후 이 제도를 1988년 제도화했는데(희나 in Uppsala), 이는 프랑스 팍스(1999년)보다 10여 년 더 일찍이다.  


스웨덴에 사는 동안 나는 자연스레 가정을 꾸린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내가 '결혼'이라는 말 대신 '가정을 꾸렸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결혼하지 않고도 가정을 꾸린 친구도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내 친구 이다(Ida)는 예쁜 딸과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다. 둘은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약혼식을 올렸다. 지금은 어여쁜 둘 째를 기다리고 있다. 결혼한 듯 안 한 듯한 둘은 스웨덴에서 법적으로 인정받는 커플이다. 


'나는 삼보와 함께 살고, 우리 엄마 아빠도 결혼은 하지 않았어'.

내 친구 이다는 그녀의 삼보 미카엘과 함께 살고 있고, 그의 부모님도 함께 한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삼보는 스웨덴에서 굉장히 흔한 형태의 관계로 주변에서 흔히 삼보 관계인 커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20세 이상 인구의 5분의 1 정도(180만 명)가 삼보 관계를 유지하고, 그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희나 in Uppsala). 심지어 스웨덴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50% 정도는 삼보 커플 사이에서 생긴다고 한다. 2016년 스웨덴어를 처음 배울 때, 교과서에서도 처음 만난 사람들이 소개를 할 때 '나의 삼보/ 와이프/ 남편'이라고 구분 짓는 것에 놀랐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들의 파트너를 소개받을 때도 '삼보/ 여자 친구/ 남자 친구'로 소개받는 것은 내게 일상이 되었다. 스웨덴의 모든 공식적인 문서에도 결혼 유무를 묻는 칸에 '미혼/기혼/삼보'가 표기되어 있다. 그럼 삼보는 결혼제도와 어떻게 다를까? 


이 커플은 삼보일까, 결혼했을까? 사실 그게 중요한가.

우리나라와 달리 스웨덴 삼보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결혼한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똑같은 권리와 혜택을 정부로부터 보장받는다. 때문에 제도로부터 사각지대에 놓일 염려도 없고, 삼보 커플이 많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남들로부터 눈총을 받을 일도 없다. 결혼한 커플과 삼보 커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산의 소유권에 대한 권리다. 삼보 커플은 결혼 법이 아닌 삼보 법의 적용을 받는다. 결혼한 커플이 모든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공유하는 것과 달리, 삼보 커플의 경우에는 함께 사는 집은 공동 소유로 귀속되지만, 은행 계좌, 가구, 자동차, 별장(스웨덴에서는 대부분의 가족이 조그마한 별장을 소유) 등의 자산은 합치기 전 이를 소유했던 사람의 개인 자산으로 여겨진다. 자산의 소유권은 각자가 삼보로 합칠 때 유언장이나 증거로 서로 합의한 바를 명시해놓는 게 좋다고 한다.


스웨덴의 많은 삼보 커플은 평균적으로 3~5년 정도의 동거 후 아이가 생길 때 결혼을 하거나 평생 삼보 관계로 남기도 한다. 물론 헤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삼보 관계 역시 결혼의 형태와는 다르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고 가정을 위해 책임을 다하는 관계의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삼보 관계가 잘 유지되는 이유는 법적으로 삼보 커플의 권리가 결혼한 커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사실, 관계의 형태를 막론하고 개인과 개인의 결합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지 않은가. 본질은 형태가 아닌 그 속에 담긴 가치다. 


결혼 대신 다른 방식으로도 가정을 꾸릴 수 있다면? 결혼은 자유를 속박하는 제도일까? 우리가 가진 결혼이라는 이미지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닐까? 

올해 초 여성가족부가 다양한 형태의 법적 가족을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혼인과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뿐만 아니라 비혼 동거인이나 가족처럼 서로 기대고 돌보면서 사는 친구, 노인 커플, 셰어하우스에서 가족처럼 사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들이 각종 사회제도에서 차별받지 않게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스웨덴의 삼보나 프랑스의 팍스와 같은 대안적인 가족 형태가 제도화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혼 후 겪는 성역할, 육아 분담, 경력 단절 등을 위한 대안책을 모색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타인의 시선이나, 전통, 제도 등에 의해 침해받지 않도록 보호하며 사회구성원들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다채로운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곳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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