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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크라테스 May 21. 2019

결혼만이 사랑의 결실이 아니어도 괜찮아.

스웨덴에서 되물은 결혼의 본질

20대 초 중반의 나는 결혼에 대한 생각도, 별 계획도 없었다. 막연히 언젠가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해봤고, 혼자 살며 내가 하고 싶은 일, 취미 활동을 향유하며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경쟁적인 삶을 물려주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한국 사회에서 여자에게 부여되는 며느리, 엄마 등 다양한 역할을 일을 하면서 잘 수행할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들었다. 더욱이 인간의 궁극적인 외로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누구도 그 외로움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혼자 잘 사는 법을 더 연습하는 게 않을까라는 생각. 그렇게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명확한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나는 스웨덴으로 떠났다. 그리고 2년 동안 보낸 스웨덴에서의 시간은 내가 꾸리고 싶은 삶에 대해 적어도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큰 변화 중 하나는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목표를 세운 것이다. 하지만 결혼하고 싶다와는 다른 의미다. 스웨덴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정을 보면서 나는 결혼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혼의 본질에 대하여
안나네와 다른 두 가족(아이 포함) 함께한 가재파티

스웨덴에서 사는 동안 나는 자연스레 가정을 꾸린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때문에, 또 자연스레 그들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내가 '결혼'이라는 말 대신 '가정을 꾸렸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결혼하지 않고도 가정을 꾸린 친구도 있었기 때문이다. 내 친구 이다(Ida)는 예쁜 딸과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다. 둘은 혼인 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약혼식을 올리고 한 집에 살고 있다. 결혼한 듯 안 한 듯한 둘은 스웨덴에서 법적으로 인정받는 커플이다. 한편, 또 다른 친구 안나(Anna)는 초등학생 딸 둘을 둔 엄마다. 하드록을 사랑하는 남편이 있다. 동거와 결혼, 형태는 달랐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며 아이를 키운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결국 관계의 핵심은 파트너와 (아이)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었다.



결혼한 듯 안 한 듯, 스웨덴의 삼보제도

2년 동안 살면서 지켜본 스웨덴은 굉장히 가족 중심이자 가정 중심의 사회였다. 가족 중심이라는 얘기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뒷받침해주는 제도와 문화가 잘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이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으며 각자의 역할을 다한 후, 함께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저녁과 주말에는 여가 활동이나 저녁 식사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한편, 가정 중심이라는 이야기는 '결혼'이라는 제도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로 가정을 꾸려도 제도적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에 거의 차이가 없고, 남들의 눈총도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스웨덴에서는 이 형태를 '삼보(Sammanboende)'라고 하는데, 함께 산다는 의미다. 단순히 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대한 소유권을 공유하고 법적으로 결혼 커플만큼 보호받는 사실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스웨덴 세무서에서 파트너와 같은 주소지에 자신의 것을 등록하면 검토 후 그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다. 얼마 전 결혼 제도의 하나의 대안으로 브런치에서 이슈가 된 프랑스의 팍스와도 비슷한 개념이다(관련 책이 출간되면서 이슈가 되었다). 스웨덴은 1970년 대 급격한 결혼 비율의 감소와 동거 비율의 증가를 겪은 후 이 제도를 1988년 제도화했는데(희나 in Uppsala), 이는 프랑스 팍스(1999년)보다 10여 년 더 일찍이다.  


'나는 삼보와 함께 살고, 우리 엄마 아빠도 결혼은 하지 않았어'.

내 친구 이다는 그녀의 삼보 미카엘과 함께 살고 있고, 그의 부모님도 함께 한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실제로 삼보는 스웨덴에서 굉장히 흔한 형태의 관계로 주변에서 흔히 삼보 관계인 커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20세 이상 인구의 5분의 1 정도(180만 명)가 삼보 관계를 유지하고, 그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희나 in Uppsala). 심지어 스웨덴에서 태어나는 아이의 50% 정도는 삼보 커플 사이에서 생긴다고 한다. 2016년 스웨덴어를 처음 배울 때, 교과서에서도 처음 만난 사람들이 소개를 할 때 '나의 삼보/ 와이프/ 남편'이라고 구분 짓는 것에 놀랐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들의 파트너를 소개받을 때도 '삼보/ 여자 친구/ 남자 친구'로 소개받는 것은 내게 일상이 되었다. 스웨덴의 모든 공식적인 문서에도 결혼 유무를 묻는 칸에 '미혼/기혼/삼보'가 표기되어 있다. 그럼 삼보는 결혼제도와 어떻게 다를까? 왜 스웨덴 사람들은 결혼 대신 삼보 제도를 택하는 걸까?


이 커플은 삼보일까, 결혼했을까? 사실 그게 중요한가.

삼보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결혼한 커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똑같은 권리와 혜택을 정부로부터 보장받는다. 때문에 제도로부터 사각지대에 놓일 염려도 없고, 삼보 커플이 많기 때문에 엄마 아빠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남들로부터 눈총을 받을 일도 없다. 결혼한 커플과 삼보 커플의 가장 큰 차이점은 자산의 소유권에 대한 권리다. 삼보 커플은 결혼 법이 아닌 삼보 법의 적용을 받는다. 결혼한 커플이 모든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공유하는 것과 달리, 삼보 커플의 경우에는 함께 사는 집은 공동 소유로 귀속되지만, 은행 계좌, 가구, 자동차, 별장(스웨덴에서는 대부분의 가족이 조그마한 별장을 소유) 등의 자산은 합치기 전 이를 소유했던 사람의 개인 자산으로 여겨진다. 자산의 소유권은 각자가 삼보로 합칠 때 유언장이나 증거로 서로 합의한 바를 명시해놓는 게 좋다고 한다.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두 사람이 합치는 일은 살아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다. 우리는 함께 살면서 연애하면서 몰랐던 사소한 습관들, 생활 방식, 가치관들을 발견하고 서로 맞춰갈 수도 있고, 너무 맞지 않으면 헤어지기도 한다. 스웨덴의 많은 커플들도 이런 형태의 동거가 합리적이다고 생각해 잘 맞을 경우 평균적으로 3~5년 정도 살고 아이가 생길 때 결혼을 하거나, 평생 삼보 관계로 남기도 한다. 결혼 관계와 형태는 다르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로 맞춰가고 책임을 다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았다. 내 주위의 많은 삼보 커플들을 보면서 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법적으로 삼보 커플의 권리가 결혼한 커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때문이라 느꼈다. 사실, 관계의 형태를 막론하고 개인과 개인의 결합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지 않은가. 본질은 형태가 아닌 그 속에 담긴 가치다. 사랑과 책임감이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선 또는 아이에게 돌아갈 화살 때문에 결혼이라는 관계를 유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잘 맞아서 평생 사랑하며 살면 좋겠지만, 맞지 않을 경우 결혼이라는 껍데기만 유지하는 것은 결혼 당사자도 불행하고, 안정된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에겐 더 불행한 일이다.



출처: SBS 결혼은 사양할게요
'엄마, 내 생각만 유별난 게 아니야'.

늘 스웨덴의 다양한 가족 형태에 이야기하던 내게 엄마는 유별나다고 했다. 그러다 우연히 엄마와 함께 SBS 다큐멘터리 '결혼은 사양할게요'를 시청하게 되었다. 지난 12월 방송된 이 다큐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변화된 결혼관(비혼주의나 동거)을 다루며 실제 결혼을 하지 않고도 사랑하는 관계를 꾸려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개인의 행복과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것이 중요한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전통적인 결혼 제도에 대해 저항했다. 여성의 경우에는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과 시월드에 대한 부담감이 주된 이유였고, 남성의 경우 경제적 책임이나 구속받는 삶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각자가 희생해야 하는 것들이 많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비혼주의자가 된 것이다. 한쪽에 일방적으로 특정 역할 부담이 주어지고, 개인의 자유가 억압받는 제도. 누군가와의 결합도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인데, 결혼이라는 제도 외엔 선택지가 없는 우리에겐 비혼만이 탈출구일까? 대안이 생긴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한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는 스웨덴의 삼보나 프랑스의 팍스와 같은 대안적인 가족 형태가 제도화된다고 해도, 지금 당장 전통적인 성역할을 거부하긴 어려울 거라 생각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좇아가는 젊은 우리 세대와, 이 시대 변화가 너무 빠르게 느껴지는 부모 세대 간의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중요한 것은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타인의 시선이나, 전통, 제도 등에 의해 침해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행복추구권은 인간으로서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니까. 우리 사회가 사회구성원들에게 보다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는 곳이 되길 바란다. 개개인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결혼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지금, 나도 이에 목소리를 조금 보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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