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y 27. 2020

문화차이에 낀 신입사원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니 보듬어 주세요.

'헤드 없이 회의하는 건 이상하지 않아?;

신입사원 업무 3주 차. 회사 문화와 업무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던 찰나에, 의도치 않은 실수를 했다. 신입사원의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팀장님을 건너뛰고 팀장님의 상사와 직접 미팅을 잡아버렸다. 그리곤 내일의 할 일을 팀 회의 때 공유했다. 팀장님을 당황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조금 당황하신 눈치였다. 무언가 잘못됐다 싶었다.....!


상황은 이렇다. 오늘 사무실에 새로운 외국인 매니저가 왔다. 채용 인터뷰 때 우리 팀 헤드로, 내 면접을 본 사람이었다. 그런데, 채용이 확정된 후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에 의해 급히 내 소속이 바뀌었다. 현재 나의 상사는 아니지만 내 면접을 본 사람이라 인사를 하는 게 예의다 싶었고, 그 팀의 일도 하게 될 터라 자리에 가서 인사를 건넸다. 인사 후 업무에 관해 이야기하다, 아직 애매한 업무 범위를 논의하기 위해 그 매니저가 미팅을 제안했다. 나도 내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고 싶은 데다, 매니저가 그 팀의 가장 높은 사람이니까 돌아가는 업무에 대해 잘 알 거라 생각해, 좋은 생각이다 싶어 미팅을 잡았다. 그리고 팀 회의 때 나의 업무를 공유하기위해 미팅 이야기를 꺼냈는데, 팀장님과 다른 매니저가 조금 황당(?)해하시는 눈치였다. 우리 팀장님과, 해당 팀의 팀장님을 거치지 않고 면대면으로 그분들보다 윗 매니저와 미팅하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무언가 잘못했다!뜨아.)

겨울왕국 프로즌이  3초 도래했다.


'내가 실수를 했구나!'라는 건 순간적으로 깨달았지만, 사실 그게 왜 이상한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어찌 됐든 분위기상 나는 실수를 한 게 분명했다. 팀장님이 그 매니저와 업무 범위를 정리하고 내게 전달해주시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하시기에, 내가 업무 프로세스를 잘 몰랐다며 얼른 사과를 드리고 해당 매니저와의 미팅을 취소했다. 팀장님을 무안하거나 당황하게 만드려고 했던 건 아닌데, 의도치 않게 그런 꼴이 되어버려서 계속 마음이 쓰였다. '제가 아직 업무 처리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서, 많이 물어보면 알려주세요.' 사과를 하자마자  팀장님은 웃는 이모티콘과 함께 괜찮다고 신경 쓰지 마라며 메시지를 남겨주셨다.


하지만 여전히 '왜 이상하지?'라는 물음을 해소하지 못한 채 퇴근길에 올랐다. 퇴근길에 미팅을 하기로 했던 매니저를 우연히 만났다. 매니저에게 내가 업무 프로세스를 잘 몰라 실수한 것 같다며, 팀장님 두 분과 회의 후 미팅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 매니저는 팀장 없이 이야기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며, 업무 범위를 빨리 정하고 내가 필요한 트레이닝을 받는 게 효율적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덧붙여 수평적인 우리 회사 문화에서는 누구든지 아무 하고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미팅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응? 어떻게 해야 하지.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했어..'  우리 팀장님보다 직급이 높은 그는 괜찮다 했지만, 나는 이미 미팅을 취소하겠다고 정리한 상태였다. 내가 곤란해하자 매니저는 본인도 한국의 조직 문화를 잘 모른다며, 곤란한 내 상황을 이해해주며 먼저 팀장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문화 차이인가? 내 실수는 감사히도 배려해주신 분들 덕분에 잘 마무리가 되었지만, 퇴근길 내내 그것이 정말 잘못된 프로세스였을까?문화차이일까? 하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한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에게 SOS를 쳤다. 친구는 당황하며 회사에는 보고라인이라는 게 있고, 내가 팀장님을 건너고 그분의 상사급과 직접 미팅을 잡은 것은 큰 실수라고 했다. 본인의 회사에선 상무님이 팀장님을 무안 주기위해 하급의 담당자에게 미팅을 요청한 적도 있다며...그리곤, 앞으로는 미팅을 하는 건 있을 수도 있지만 사전에 공유하는 게 핵심이라는 조언을 주었다. 공유를 잘하기만 해도 반은 간다며. 충분히 납득 가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 차이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남았다.


북유럽 사람들과 일을 하며 배운 것은 계급에 상관없이 그 누구와도 터놓고 직접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며, 필요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과 직접 논의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매니저와 미팅을 잡을 때도 내가 판단한 기준이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덴마크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우리나라로 치면 과장급으로 일하는 친구는 내가 그 매니저와 미팅을 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오히려 내 팀장님의 상사인 매니저가 먼저 요청을 한 것이기에, 내가 매니저와의 미팅을 취소하지 않았어야 한다고 했다. (응..?뭐 어째야 하는 거야..)

어찌됐든 나는 내 가설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화 차이로 인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 우리는 조직 내의 동일한 커뮤니케이션 사안을 두고, 다른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무엇이 더 효율적이고 체계적인지는 모르겠다. 사무실에는 한국 문화와 외국 문화가 혼재해 있었고, 문화적 배경이 다른 구성원들이 위계질서를 모두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고 회로가 다르니 판단의 결과도 다를 수밖에.


그렇다면 무엇이 맞는 걸까?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은 애초에 없다. 다를 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서로의 문화 차이를 인정하고, 비난하지 않고, 공통의 목표에 닿을 수 있는 더 효율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이번에 그 매니저는 한 발 물러서 팀장님과 회의를 거친 후 다시 모두와 미팅을 잡겠다고 했다. 현재 일하고 있는 곳의 문화를 우선 존중하며, 신입사원인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고 싶다고 했다.  


사실 우리 조직이 굉장히 위계가 심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늘 그랬듯이 우리에게 맞는 답을 찾을 것이란 걸 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의 의견이 부딪힐 것이고, 누군가는 실수를 할 것이다. 다만 그때, 이렇게 동료들이 서로의 실수도 웃어 넘기며, 서로를 보듬어주면 좋겠다. 모르는 부분은 알려주면 되니까. 그 노력만으로도 나는 더 나은 내가 되고, 조직은 더 나은 조직이 될 거라 믿는다.


나는 누구나 더 많은 탈선을 저지를 수 있는 조직을 꿈꾼다!






작가의 이전글 꿈많은 월급쟁이가 동지에게 보내는 헌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