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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Dec 07. 2020

더 이상 행복을 추구하지 않기로 했다

행복은 목적이 아닌 도구이며, 강도가 아닌 빈도니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그건 어디에나 있으며 어디에도 없구나

우린 앞만 보면 살도록 배웠으니까

빛나지 못하는 거야

-바코드 가사 중 일부(김하온&빈첸)


내게 행복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할 수 있는 자유였다. 하지만 나는 항상 행복을 유예해야만 했다.

 '대학교만 가면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어'.

하고 싶은 것이 많던 10대의 욕망은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 아래, 20대가 될 때까지 억눌러야 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나는 다시 행복을 유예해야만 했다.

'취업만 하면 돈도 벌고 하고 싶은거 다할 수 있어'.

그런데 대학과 취업 문턱에서의 경쟁은 더 치열했고 꿈꾸던 장밋빛 미래는 없었다. 바라던 직장에 취업한 친구들은 학생 시절이 더 좋았다며 과거를 그리워했다. 태어나서부터 미래의 행복을 위해 늘 현재를 유예하며 살아왔는데, 꿈꾸던 미래에 도달해도 행복을 쟁취할 수 없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행복한 나라에 나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무작정 스웨덴으로 유학을 결심했다. 행복해 지고 싶어서.


사실 행복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추상적인 관념으로만 알 뿐이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마땅히 추구할 권리이자 삶의 목적. 고등학교 시절 윤리 교과서에서 만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했다. 그래서 나에게 행복은 실체가 없었지만, 삶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무언가가 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행복한 삶을 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는다. 대신 매일 행복한 경험을 자주 하려고 한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닌 도구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5년 전 행복에 대한 내 관점을 바꿔 버린 책, '행복의 기원'을 만났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행복의 비밀을 알았다. 저자 서은국 교수는 30년 동안 행복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온 권위 있는 학자다. 전 세계적으로 행복에 관한 연구 인용 시 가장 인용이 많이 되는 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진화론에 근거해 여러 과학적 연구들을 소개하며 행복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뒤집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궁극적으로 생존과 번식을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었으며, 이 행복감은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잘 맺을 때 발생한다. 우리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무리를 지어 살아남았고, 우리는 그들의 자손이다. 무리를 짓는다는 것은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이고 좋은 관계를 맺을 때 우리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신호가 뇌에서 분비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밥을 먹는 그 순간에 행복이 존재하며 아무리 내향적인 사람이라도 궁극적으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갈망한다. 다만 외향적인 사람에 비해 먼저 남에게 다가서는 게 어려울 뿐. 따라서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가 이들이 잘 어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게 중요하다.


가족들과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스톡홀름


책에서 저자는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행복의 원동력은 복지제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 돈이나 사회적 지위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 덕분이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저자가 옳았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매일매일 지켜지는 곳. 이런 문화가 우수한 복지제도를 만들었고, 제도는 문화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토록 살고 싶었던 북유럽 스웨덴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귀국 한 지 3년 반이 흘렀다. 그토록 떠나고 싶던 한국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순간을 자주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한다. 귀국  후, 약 10년 만에 엄마와 함께 사는 동안에는 엄마와 함께 하는 서울 구경과 치맥이 행복이었다. 연애를 하는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저녁식사, 달리기, 사이클링 등 소소한 일상이 행복이다. 엄마나 친한 친구들에게 남자 친구를 소개하고, 내 사람들끼리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도 행복이다. 별거 아닌 일상에 행복은 깃들어 있었다. 래퍼 김하온과 빈첸이 노래한 대로 행복은 어디에나 있었다. 오히려 찾으면 찾을수록 어디에도 없었다. 행복감은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뭔지 이미 알고 있다.


나의 20대를 돌이켜보면, 불행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애매한 상태에서 늘 불안했다. '좋은 고등학교를 갈 수 있을까? 에서 시작된 레이스는 좋은 대학, 좋은 기업을 갈 수 있을까?' 등 좋음에 대한 정의 없이 내 삶의 평가를 타인에게 맡겨 버린 것도 모자라 경쟁심만 가득했다. 주변인들이 모두 경쟁자인데 어떻게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가 있을까. 


어떤 곳에 살든 한정된 자원을 놓고 다투는 생존 경쟁에서 누구나 자유롭지 않다. 이 경쟁에서 떨어지는 게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때문에 낙오자를 보호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어디 살든 간에 내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 욕망에 솔직해지고, 내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것. 이 노력으로 당장 건물주가 될 수는 없지만, 오늘 내 하루는 좀 더 행복해 질 것이다(누가 아는가? 행복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많이 하다보면 건물주 보다 더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운 사람이 될지). 어쨌든 좀 더 나의 내면에 가까워지고 건강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 그게 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길이자 잘 먹고 잘 사는 일이다.


나는 더이상 행복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온전히 느끼는 대로 생각하고 표현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에 전화나 카카오톡을 한 통 더하고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을 온전히 지키려고 노력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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