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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크라테스 Oct 12. 2021

허벅지를 위한 기도를 멈췄다

기준이 기준이 아닐 때 거리두기를 하자

허벅지를 위한 기도

'왼쪽 54cm, 오른쪽 54.3cm'
1분 1초 영어 단어를 외우기에도 바쁜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매일 의식처럼 허벅지 치수를 쟀다.

준비물은 1~2천 원짜리 바느질 세트를 사면 들어 있는 흐물흐물한 줄자 하나로 충분했다. 학교까지 매일 걷고, 14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려도 허벅지 두께는 0.1cm도 달라질 기미가 안 보였다. 재고 또 재도 변하지 않는 숫자에 나는 매일 좌절했다. 흐물흐물한 줄자 하나가 내 자존감을 흐물흐물 무너뜨렸다. 내 다리는 왜 이렇게 굵을까.

 

대한민국 10대 여성의 평균 허벅지 두께가 몇 cm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TV에는 나무젓가락처럼 굴곡 없이 매끈하게 뻗은 '예쁜' 다리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이 표준인 듯했다. 친구들이 치마 밑단과 바지 밑단을 줄이는 등 교복 줄이기에 열을 올리던 시절, 나는 교복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애썼다. 무릎 위부터 시작되는 넙적한 부분을 가리기만 해도 조금은 다리가 얇아 보였으니까. 치마를 입지 않는 날에는 다리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 아빠 양복 같은 교복 바지를 입었다.


내 다리에 대한 콤플렉스는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졸업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엄마는 딸의 초등학교 졸업에 한 껏 들떴는지 엄마의 졸업식 마냥 딸의 스타일에 엄마의 패션 센스를 쏟아부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멋쟁이였던 엄마는 멋쟁이만 입는다는 백바지(흰 바지)를 준비했다. 그리고 내 머리는 단정하게 묶어 올리고, 솜털 같은 잔머리는 꼬리빗과 젤로 반듯하게 정돈해주었다. 초등학교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할 생각에 나의 기대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엄마가 꾸며 준 가장 예쁜 모습으로 친구들이랑 사진 찍어야지.'


그런데 학교에 가자마자 풍선처럼 부푼 나의 기대를 터뜨린 친구의 한 마디.

'니는 무슨 생각으로 흰 바지를 입었어?'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반 친구는 흰 바지를 입고 간 내게 허벅지도 두꺼운데 흰 바지를 입을 용기가 나냐며 빈정댔다. 멋쟁이만 입는다는 백바지를 입고 자신감 넘쳤던 어린 소녀의 자존심과 자존감은 와르르 무너졌다. 그 시절 어렸던 우리, 친구는 농담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10~20대 내내 흰 바지를 입지 못했다. 오히려 다리 콤플렉스는 대학 입학 후 내 몸에 대한 혐오로 번졌다. 대입 터널을 지나며 더욱 육중해진 나와 달리, 캠퍼스 내외엔 소녀시대처럼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예쁜'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은 만나면 다이어트 이야기만 했다.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나는 내 아름다움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자기 결정권은 내가 박탈한 걸까, 사회가 박탈한 걸까

'나는 네가 흰 바지도 더 자주 입고, 반바지도 입었으면 좋겠어. 입고 싶은 대로 다 입어'

나의 바지 트라우마를 고백하자 영국인 남자 친구는 나를 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더불어 내가 영국에 가면 제일 말랐을 거라는 농담도 곁들인다. 이제는 과거처럼 스스로를 싫어하지 않는다며 그를 안심시키다, 문득 어느 시점부터 내 삶의 주도권을 회수했는지 기억해본다. 수 십 년의 비교 탐구생활을 끝낸 그날은 마땅히 축하해야 할 날이니까!


unsplash @evadarron

2012년 6월. 난생처음으로 혼자 서역 땅을 밟았다. 그곳은 패션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였다. 계절도 남의 시선도 상관없이 각자가 입고 싶은 대로 옷을 입는 모습에 가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2016년 8월 나는 북유럽 스웨덴에 정착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고 날씬한 미남미녀가 많다고 소문난 엘프 인간 보유국 스웨덴. 혼자 오징어가 되지 않을까 쫄았던 것과 달리, 2년 동안 스웨덴에서 머무른 시간은 오히려 자신감을 회복한 해방의 시간이었다.


물리적인 환경이 달라지니 만나는 사람도, 생각하는 기준도 모두 다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그곳에서는 누구도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았고, 미디어와 현실 속에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이 존재했다. 인종, 나이를 넘어 생김새, 몸매, 스타일에 상관없이 곳곳에서 각자의 매력을 발하던 사람들. 미디어와 현실의 괴리감이 크지 않았다고나 할까. 사람들은 각자의 매력대로 인정받았고, 아름다움의 기준은 자연스레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통상적이라는 이유로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니, 나는 외부를 신경 쓸 이유도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킬 이유가 없었다. 외부를 차단하니 자연스레 내 에너지는 자신과 스스로의 내면으로 집중되었다.


나만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세우고 내가 그리는 모습을 실천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시간. 어쩌면 타인의 무관심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무심한 말 한마디로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보다는 무관심이 더 낫다. 덕분에 나는 원하는 대로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도 탐구하고, 내가 그리는 내 모습이 어떤지 구체적으로 밑그림을 그려 나갔다. 한국과 달리 옷마다 사이즈 선택의 폭이 넓은 것도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사이즈가 없어 좌절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사소한 일을 결정할 때도 다양한 선택지 속에서, 삶의 무게 중심과 주도권을 스스로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은 참 자유로웠다.


자기 결정권: 사적인 영역에서 국가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로,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를 근거로 한다.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자기 결정권은 사적인 영역에서 국가의 간섭 없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다. 무얼 먹든, 입든, 하든 그리고 누구를 만나든지 내가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내게 있다는 것을 왜 아무도 내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이내 주변을 원망하다, 우리 모두 다 몰랐던 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 교육을 받고 비슷한 삶의 방식을 택하며, 우리는 남들과 점점 더 비슷해진다. 99%가 비슷한 사회에서 1%가 되는 것은 심리적으로도 매우 겁나는 일이다. 그래서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기에 남들이 하는 대로 결정해 온 게 아닐까. 그렇게 자기 결정권은 우리 결정권에 묻혀 갔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이길 보다, 그들이길 바랬던 것처럼.


꾸미기 좋아하던 신입생 시절 당연히 흰 바지는 내 선택지에서 당연히 제외, 청바지를 고를 땐 항상 어두운 색만 샀다. 나는 사회적으로 청바지에 흰 티만 입을 자격이 안 되는 것 같았으니까. 친구들을 만나도 매일 다이어트 얘기였고, 소개팅과 미팅을 나갈 땐 키와 얼굴 몸매로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이어트 왕국에서 결국 나는 스스로에게 가혹해지는 길을 택했다. 대학교 2학년 3주간 탄수화물 단백질 파우더만 먹으며 하루에 3시간씩 2차례 운동을 했다. 그 결과 -10kg에 성공, 몸 곳곳에 모세혈관이 터져 피멍이 들기 전까지 나는 스스로에게 가혹했다. 한의원에 들리지 한의사 선생님은 칭찬은 커녕 꾸중을 줬다. 

'그렇게 안 먹고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니 모세혈관이 약해 터지죠, 쯧'

이 가혹한 여정은 나의 선택이었을까, 강요된 선택이었을까. 강요된 자발적 선택은 아니었을까.



삶이란 알 깨기 싸움

한국에 온 지 3년이 지났다. 20대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여전히 한국에 살고 있지만, 나는 더 이상 남의 판단에 상처 받지도, 자기혐오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내 몸은 그대로지만 나는 더 이상 내 몸을 혐오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하게 먹고 운동하고 아껴주며, 내 몸의 장점을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입고자 노력한다. 청바지에 흰티도 이제는 자신 있게 입는다. 가장 큰 변화는 혹여 타인의 시선이나 말이 가시처럼 내게 꽂혀도, 그 시선을 비난하기보다 웃음으로 승화시킬 배짱이 생겼다는 점이다. 

'살이 좀 쪘네?'

'어떻게 알았어? 요즘 너무 잘 지내는 게 들켰네!ㅎㅎ'

나는 더 이상 내가 뚱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여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우리 몸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그 기준이 잘 못되었다면?


나는 삶이란 주어진 환경이라는 알을 깨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진정한 자기 자신은 익숙한 것,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견한다고 믿는다. 자기 객관화도 중요하지만, 내 사고의 기준을 세우는 주변 사람들과 내가 속한 사회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더 중요하다. 물론, 그 과정이 절대 쉽지 많은 않을 것이다. 눈치 없는 사람, 유별난 사람, 적응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더군다나 공동체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내가 이상한 건 아닌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기 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기준에 상관없이 매일 질문을 던지자. 내가 던지는 질문에 누군가는 비웃더라도 나로서 살아갈 용기를 매일매일 조금씩 키워나가자. 내 삶이 변하고, 내가 사는 사회가 변하는 첫걸음일 테니까. 우리 다 같이 당연한 것들에 의심을 품고, 오늘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자. 지금 또는 훗날 어디에 살든 내 삶을 주도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는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개인적 존재이니까. 거리두기는 우리의 마음에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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