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컬쳐커넥터 김도희 Oct 12. 2021

허벅지를 위한 기도를 멈췄다

기준이 기준이 아닐 때 거리두기를 하자


허벅지를 위한 기도

'왼쪽 54cm, 오른쪽 54.3cm'
1분 1초 영어 단어를 외우기에도 바쁜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매일 의식처럼 허벅지 치수를 쟀다.

준비물은 1~2천 원짜리 바느질 세트를 사면 들어 있는 흐물흐물한 줄자 하나로 충분했다. 학교까지 매일 걷고, 14층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려도 허벅지 두께는 0.1cm도 달라질 기미가 안 보였다. 재고 또 재도 변하지 않는 숫자에 나는 매일 좌절했다. 흐물흐물한 줄자 하나가 내 자존감을 흐물흐물 무너뜨렸다. 내 다리는 왜 이렇게 굵을까.

 

대한민국 10대 여성의 평균 허벅지 두께가 몇 cm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TV에는 나무젓가락처럼 굴곡 없이 매끈하게 뻗은 '예쁜' 다리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그것이 표준인 듯했다. 친구들이 치마 밑단과 바지 밑단을 줄이는 등 교복 줄이기에 열을 올리던 시절, 나는 교복 치마가 무릎 위로 올라가지 않도록 애썼다. 무릎 위부터 시작되는 넙적한 부분을 가리기만 해도 조금은 다리가 얇아 보였으니까. 치마를 입지 않는 날에는 다리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 아빠 양복 같은 교복 바지를 입었다.


내 다리에 대한 콤플렉스는 초등학교 6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졸업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엄마는 딸의 초등학교 졸업에 한 껏 들떴는지 엄마의 졸업식 마냥 딸의 스타일에 엄마의 패션 센스를 쏟아부었다.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멋쟁이였던 엄마는 멋쟁이만 입는다는 백바지(흰 바지)를 준비했다. 그리고 내 머리는 단정하게 묶어 올리고, 솜털 같은 잔머리는 꼬리빗과 젤로 반듯하게 정돈해주었다. 초등학교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할 생각에 나의 기대는 풍선처럼 부풀었다.

'엄마가 꾸며 준 가장 예쁜 모습으로 친구들이랑 사진 찍어야지.'


그런데 학교에 가자마자 풍선처럼 부푼 나의 기대를 터뜨린 친구의 한 마디.

'니는 무슨 생각으로 흰 바지를 입었어?'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반 친구는 흰 바지를 입고 간 내게 허벅지도 두꺼운데 흰 바지를 입을 용기가 나냐며 빈정댔다. 멋쟁이만 입는다는 백바지를 입고 자신감 넘쳤던 어린 소녀의 자존심과 자존감은 와르르 무너졌다. 그 시절 어렸던 우리, 친구는 농담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때의 트라우마 때문에 10~20대 내내 흰 바지를 입지 못했다. 오히려 다리 콤플렉스는 대학 입학 후 내 몸에 대한 혐오로 번졌다. 대입 터널을 지나며 더욱 육중해진 나와 달리, 캠퍼스 내외엔 소녀시대처럼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예쁜' 친구들이 너무 많았다. 친구들은 만나면 다이어트 이야기만 했다.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나는 내 아름다움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자기 결정권은 내가 박탈한 걸까, 사회가 박탈한 걸까

'나는 네가 흰 바지도 더 자주 입고, 반바지도 입었으면 좋겠어. 입고 싶은 대로 다 입어'

나의 바지 트라우마를 고백하자 영국인 남자 친구는 나를 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더불어 내가 영국에 가면 제일 말랐을 거라는 농담도 곁들인다. 이제는 과거처럼 스스로를 싫어하지 않는다며 그를 안심시키다, 문득 어느 시점부터 내 삶의 주도권을 회수했는지 기억해본다. 수 십 년의 비교 탐구생활을 끝낸 그날은 마땅히 축하해야 할 날이니까!


unsplash @evadarron

2012년 6월. 난생처음으로 혼자 서역 땅을 밟았다. 그곳은 패션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였다. 계절도 남의 시선도 상관없이 각자가 입고 싶은 대로 옷을 입는 모습에 가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2016년 8월 나는 북유럽 스웨덴에 정착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고 날씬한 미남미녀가 많다고 소문난 엘프 인간 보유국 스웨덴. 혼자 오징어가 되지 않을까 쫄았던 것과 달리, 2년 동안 스웨덴에서 머무른 시간은 오히려 자신감을 회복한 해방의 시간이었다.


(후략)



나는 삶이란 주어진 환경이라는 알을 깨 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진정한 자기 자신은 익숙한 것,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나를 둘러싼 세계를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발견한다고 믿는다. 자기 객관화도 중요하지만, 내 사고의 기준을 세우는 주변 사람들과 내가 속한 사회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더 중요하다. 물론, 그 과정이 절대 쉽지 많은 않을 것이다. 눈치 없는 사람, 유별난 사람, 적응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더군다나 공동체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내가 이상한 건 아닌지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잃기 쉬울 수도 있다.


나나랜드를 꿈꾸는 모든 분들께 바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기준에 상관없이 매일 질문을 던지자. 내가 던지는 질문에 누군가는 비웃더라도 나로서 살아갈 용기를 매일매일 조금씩 키워나가자. 내 삶이 변하고, 내가 사는 사회가 변하는 첫걸음일 테니까. 우리 다 같이 당연한 것들에 의심을 품고, 오늘도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자. 지금 또는 훗날 어디에 살든 내 삶을 주도권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는다. 우리는 사회적 존재이기에 앞서, 개인적 존재이니까. 거리두기는 우리의 마음에도 필요하다.


** 더 내밀한 이야기는 책에서 함께 이야기 나눠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나나랜드>> 카카오톡 선물하기: https://bit.ly/466Dyux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