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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r 25. 2024

오지라퍼 대만 사람들 덕분에

잊어버린 순수와 친절을 기억하나요?

삶을 사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를 꼽으라면 나는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어떤 사람들과는 스쳐 지나가기만도 하고, 어떤 사람들과는 꽤나 밀도 있는 인연을 쌓는다. 그리고 그 밀도 있는 인연은 또 다른 인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스쳐 지나간 인연보다 크다. 우리의 인연의 밀도는 다르지만, 그에 상관없이 내가 만난 상대에게 그 순간 진심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친절이자, 인류애라고 생각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은 옛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농축된 강력한 문구다. 그리고 대만에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길 위에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아침 식당 앞에서, 볼일 보러 간 통신 가게에서 남편과 내가 조금이라도 길을 헤매거나, 언어 장벽 때문에 막막해하는 눈치면 주변의 대만인들은 불쑥 내 퍼스널 스페이스(사적인 공간)를 침범하며 친절을 베푼다.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중국어를 속사포로 내뱉으며 말이다. 너무나 갑작스럽고 당황스럽지만 그 친절이 싫지가 않다. 랩보다 빠른 중국어에 잠시 넋이 나갔다가, 손짓, 발짓, 표정 온갖 바디랭귀지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대만 사람들의 친절에 남편과 나는 무장해제된다. 도움을 주는 분들의 말을 100% 알아듣지는 못했더라고 눈치껏 이해하고, 연신 謝謝(xiexie, 고맙다는 말)를 외치며 고개를 꾸벅한다. 그러면, 대만 사람들은 항상 不会" (bùhuì) - 천만에, 별거 아니야.라고 쿨하게 대답 후 각자의 갈 길을 간다.


아름다운 대만의 캠퍼스

대만에 산 지 3주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남편과 내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대만 사람들이 정말 친절하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한국에 여행을 온 친구들은 한국인들도 너무 친절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곤 하는데, 대만 사람들과 우리의 친절은 무언가 다르다. 뭐랄까? 사람들에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고, 낯선 이방인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과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는 열린 마음이 있다. 버스에서 우리가 정류장을 놓칠까 봐 알려주는 기사님과 옆좌석 아주머니. 짧은 영어지만 우리가 주문한 음식을 건네며 항상 인사를 건네는 단골 아침 식당 아주머니, 하루에 몇 번을 봐도 밝게 '니하오!'를 외치는 아파트 경비원. 옷깃만 스친 대만 사람들의 오지랖은 나까지 행복하게 만든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은 한국 사람들은 외국인이 도움을 청하려 하면 영어로 말 걸까 봐 피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하는데, 대만 사람들은 영어 공포증이 없는 걸까? 아니, 대만인들은 영어가 아닌 중국어로 나와 그들 사이에 연결될 다리를 놓는다. 물론 우리가 중국어를 잘할 거란 기대도 하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동네 맛집, 할아버지 감사해요! 시예시예.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아침 식당에 갔다. 수 십 가지 메뉴 앞에서 어떤 음식을 주문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자, 우리 뒤에 줄 서 계신 할아버지가 친절하게 이 집에선 이걸 꼭 먹어야 한다며 추천 메뉴를 알려주신다. 손짓, 발짓, 짧은 중국어와 휴대폰이 동원됐다. 언어 장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중국어로 구글에 메뉴를 입력하면 뜨는 수 십 만개의 사진으로 우리는 정체불명의 음식이 어떤 음식인지 단박에 깨닫는다. 주문할 차례가 되자 짧은 중국어로 할아버지가 추천해 준 메뉴를 콕 집으며 '이거 주세요!'라고 외친 후 간이 테이블에 앉았다. 낯선 이방인 두 명이 대만의 전통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는 게 신기했는지, 한 대만 할머니가 불쑥 맛있냐며 말을 걸었다.


'엄청 맛있어요. 엄청 맛있어요! (很好吃, 헌 하오츠)'라고 대답하니, 할머니 역시 주문한 빵이 가득한 봉지를 한 손에 걸고, 다른 한 손으로는 하나 꺼내어 한 입 맛있게 드시며 이 집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우셨다. 그리고는 중국어로 뭐라고 말씀하시더니 웃으며 '바이바이'를 외치고 유유히 멀어지셨다.


"대만 사람들은 정말 정말 친절해! 너네도 그렇게 생각해?"

며칠 전 대만 친구를 만나 대만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감상을 나눴더니 의아하고 놀라는 눈치다. 그랬더니 멋쩍게 웃으며 일본인이 더 친절한단다. (참고로 대만도 일본 식민지였지만, 대부분의 대만 사람들은 일본을 굉장히 좋아한다). 대만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길 위에서 옷깃만 스친 그들이 내미는 순수한 미소와 친절에 마음을 뺏긴 사람들이 많을 거라 믿는다. 대만 사람들 그 특유의 감성이랄까.


대만 사람들의 정만큼 달달한 버블티

지난 주말은 대만 친구들을 만나며 친구 주간으로 꽉꽉 채워 보냈다. 10년 전 우리 학교에 한국어를 배우러 왔던 친구. 6년 만에 만난 대만 오빠는 어제 만난 마냥 너무 편하고 반가웠다. 일요일엔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남편의 소중한 친구가 자신의 친한 친구를 소개해줬다. 우리는 새로운 친구 커플과 함께 대만을 대표하는 버블티를 마시고 우육면을 먹으며, 우리 인연의 밀도를 쌓아 나갔다. 한국에 있는 남편의 친구는 우리가 함께한 사진을 보고 그는 마음이 행복에 젖었다고 했다. 고마운 건 우린데.


아무런 연고도 없이 온 대만에서 옷깃만 스친 대만 사람들과, 다시금 이어지는 소중한 인연에 인생에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금 배운다. 낯선 타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친절을 베풀고 아름다운 미소를 나누는 것. 내게 주어진 인연에 감사하며 진심을 나누고 베풀 것. 그러면 언젠가 더 큰 친절과 배려가 되어 돌아온다. 그러나 이를 바라고 내 진심을 나누지는 말자. 우리 삶은 사람을 통해 더 풍요로워진다. 인생이라는 찰나의 여정 중 더 찰나인 순간을 나누는 모든 인연들에 감사한 밤이다. 


내일 하루 조금은 더 다정해지자.



어쩌다 대만에서 살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을 브런치북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역사/문화와, 결혼 후 퇴사한 국제 커플이 각자의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해외 생활에 관심 있거나, 결혼 후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시는 모든 분들과 연결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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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에 어쩌다 오게된 사연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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