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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Apr 10. 2024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만 한다

30대 중반, 0부터 시작하는 커리어

일을 하다 보면 자의든 타의든 일을 그만둬야 할 때가 있다. 건강상의 문제로, 출산 및 양육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위해 또는 예기치 못한 해고로.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보다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더 많이 만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 내가 처한 상황을 나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상황을 대하는 마음만 다르게 먹어도 우리는 통제 가능한 요소들 중에서 개선 가능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30대 중반, 세 번의 퇴사

나는 서른 살 취업 후 세 번의 퇴사를 했다. 금 더 일찍 나에게 200% 솔직하게 직업을 탐구했다면 어떨까하는 아쉬움에 지난 퇴사를 회고해본다.


첫 번째 퇴사는 수습 기간 후 정규직 전환을 포기한 경우인데, 수습 기간이었기에 나도 회사를 알아가는 시간이라 생각했다. 생각보다 보수적이고 위계적인 회사 문화에 내게 더 잘 맞고, 생산적인 환경을 찾아 재도전해보기로 했다. 첫 번 째 회사 덕분에 조직 문화와 환경이 개개인의 생산성과 웰빙, 그리고 조직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많이 배웠다.


두 번째 회사를 찾을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수평적이고 조직 투명성이 높은 회사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해외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합격을 했다. 그런데, 역시나 인생에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 합격 후 터진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가 국경을 닫기 시작했고, 바이러스로 인한 해외 살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나는 국내 취업으로 마음을 굳혔다. 선택지가 없기도 했고, 운 좋게도 플랜 B로 세워두었던 회사에 취업했다. 내가 관심 있는 산업 군은 아니었지만, 인터뷰를 보며 조직 문화가 나와 잘 맞고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 느꼈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이 다 돼 갈 때쯤 나는 다시금 퇴사 카드를 꺼냈다.


내 직무는 카피라이터였는데,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다 보니 노력을 해도 트렌드를 따라가기에 벅찼고, 글로 객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내 카피엔 영혼과 진심이 실리지 않았다. 마케팅이라는 건 그 제품을 사는 고객의 마음 깊숙이 가 닿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고객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으어난 성과가 나고, 창의성이 발휘될 리가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해 회사에 붙어 있고 싶지도 않았지만, 이대로는 회사와 나의 성장이 모두 정체될 것 같았, 결혼 전 마지막으로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 성공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퇴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만든 콘텐츠로 커뮤니티를 키워 돈도 벌고 독립적으로 일해야지!'라는 막연한 목표만 세우고 나온 게 참 아쉽다.


혼자 유튜브 기획과 촬영을 하며 6개월을 보냈는데 실제 해보고 나서야 혼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쉬운 게 아니고, 생각보다 내가 관심은 있지만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특출 난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혼자보다 여러 사람과 일하며 배우는 게 더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다른 사람과 협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것도. 짧은 도전 끝에 나는 다시금 회사로 돌아갔지만, 그때의 퇴사를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결혼을 앞두고 일정한 수입이 없으면 무책임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방향성 없이 급하게 취업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퇴사는 자의 반 타의 반이다. 나는 한국에서 설립된 지 2년 차인 작은 스타트업에 다녔는데, 3개월마다 바뀌는 리더 교체와 공백, 목적성 없는 잦은 야근, 방향성 없는 경영진의 의사 결정에 팀의 사기도 바닥을 뚫고 저하됐을 무렵, 남편과 나는 각자의 커리어 계발을 위한 가족회의를 열었다. 국제커플인 우리는 앞으로 어디에 살지, 이동 시 누구의 커리어를 우선시할지, 가족계획은 언제쯤 할지, 아이를 갖기 전 어떤 도전을 할지 등 부부로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함께 미래를 계획했다.


결론적으로 우리 부부는 보다 전문성이 뚜렷하고 방향이 확실한 남편의 커리어를 중심으로 삶의 방향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커리어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의 지난 선택들을 회고하며, 장기적으로 내가 잘할 수 있고 어디 살든 상관없이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모색하기로 했다. 이 방향이 각자의 성장과 웰빙뿐만 아니라 가족으로서 지속가능한 삶을 마련하는 첫걸음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우리 둘은 작년 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남편의 커리어 계발을 위해 대만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나는 어쩌다 남편을 따라왔지만,  대만에서의 시간이 어쩌다 흘러 보낸 시간이 되지 않도록 다시금 커리어를 재정비하고자 한다.


맨땅에 헤딩하며 커리어 전환하기

퇴사 후 보다 객관적으로 나를 파악하고자 심리 검사를 실시했다. 내가 받은 검사는 총 2가지인데, 내 강약점을 파악하는 갤럽 강점 검사와, 나의 내재된 욕구와 성장에 도움이 되는 환경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버만 검사다. 그 결과 추상적으로 '난 이런 일이 재밌는데~ 잘하긴 하는 걸까?' 생각했던 분야가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고, 나가 타인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환경에서 성과를 잘 낼 수 있는지도 배웠다. 나의 감정과 추측을 바탕으로 내 자신을 탐구하는 것보다, 전문적인 심리 결과를 받으니 커리어 개발 방향이 조금은 더 뚜렷해졌다. 불어 나의 약점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내가 회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와 내가 모자란 부분을 보완해 줄 수 있는 파트너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도 배웠으니 말이다.

버크만 진단의 목적

이 결과를 바탕으로 나는 대만에서 연고도 없이, 소속된 회사도 없이 새롭게 커리어를 만들어 보려 한다. 우선순위로 삼은 분야는 HR 분야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설득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에 대한 애정과,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환경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을 직업적으로 키워보고 싶다. 개인과 조직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배우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아직 험도 없고 나에게 보장된 일도 없지만, 모르는 분야인만큼 당 분야의 한국과 대만에 계신 선배님들께 콜드 메일을 보내고, 커피챗을 요청하며 우선 직업 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섣불리 커리어 전환을 하기 전 충분히 탐구하고, 현직자의 경험을 통해 배우며 필요한 능력을 계발하는 것, 그것이 어쩌다 대만에 온 내가 성장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낸다. 일생 중 70% 이상은 일에 쏟을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것에 나는 얼마나 진심을 다해 조사하고, 자기를 탐구하고, 이 일이 나와 맞을지 내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자문했던가? 돈을 벌고 취업을 해야 한다는 압박과 불안감에 일을 시작하진 않았던가.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커리어란 '어떤 분야에서 겪어 온 일이나 쌓아 온 경험이다'. 커리어는 단순히 직업적 경험만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생동안 진심을 다해 도전하고 경험한 모든 것이 커리어이며, 직업적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회사에서든 밖에서든 간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헤르만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구절이다. 인간이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30대 중반, 0부터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출발선에 섰다. 그리고 문이 열릴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지만 너무 무겁지는 않게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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