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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Mar 18. 2024

오늘 얼마나 현존하셨습니까?

퇴사 회고, 불안을 알아차려야만 하는 이유

퇴사 4개월, 실패했습니다만


2023년 11월 퇴사를 했다. 중국어 공부를 하러 대만에 가겠다는 목표가 있던 남편보다 한 달 이른 퇴사였다. 당시 퇴사는 팀 내 리더의 잦은 교체, 목적 없는 방향성, 무기력한 팀원들, 그리고 성장 없는 조직 환경에서의 탈출을 명목으로 '더 나은 직업'을 스스로 만들어보겠다는 결의에 찬 이유였다. 월급 루팡은 되고 싶지 않았다. 흘러가는 내 시간이 아까웠다. 자신 있게 회사에서 나와 퇴사날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 가서 혼자 케이크 한 조각을 촛불도 없이 불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자유에 책임을 다해보겠노라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한 자 한 자 단단하게 다이어리에 그날의 다짐을 꾹꾹 눌러 적었었다.


그날의 기억..

안타깝게도 결의는 단단했지만, 퇴사 초의 설렘과 파이팅 넘치는 자세는 빠르게 불타오른 만큼 더 빠르게 푹 식어 없어져 버렸다. 조급함, 이 조급함이 문제였다. 작지만 소중한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놓은 돈으로, 얼마 간은 버틸 수 있겠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있었지만, 하루하루는 시간은 흐르는데 어떤 것을 해야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몰라 불안했다. 시작을 못하니 꾸준히 해나가지 못한 건 당연지사다. 콘텐츠를 통해 내가 경험하는 세계를 공유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서로의 세계를 확장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순수한 동기는 온라인 콘텐츠를 통해 빠르게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변질됐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폭발적으로 성장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설렜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공을 꿈꿀수록 성공의 씨앗조차 내리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까? 조회수가 나올까.. '

'카메라 속 내 모습이 너무 부자연스럽고, 주제도 없고... 내가 이걸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맞는 걸까?'


도전하고 싶은 마음과 성공에 대한 욕심에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내 생각에 나를 가두었다. 글을 쓰지도 못하고, 영상도 기획만 하고 업로드해보지도 못하고 3개월이 흘렀다. 생각은 많고 실천은 없었다. 요리를 할 때도 마음이 급해 프라이팬을 가장 강한 불로 데우면, 음식이 겉면은 타고 속은 익지 않아 버리게 된다. 이처럼 조급함과 불안함에 불타오른 표면적인 열정은 내 시간도 정신도 실속 없이 타버렸다. 그때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책을 만났다. 빠져나올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같이 내 생각에 갇힌 나를 구해준 책.




우리가 매일 내 삶을 책임 지는 법

출처: 예스24 , 나는 밀리의서재 전자책으로 읽었다.

책의 저자인 에크하르트 톨레는 살아 있는 영적 지도자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현존하는 삶'의 중요성과 그 방법을 알리고 있다. 그는 종교나 이념에 상관없이 수 천 년 간 지속되어 온 수많은 철학가와 종교 지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를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와 방법으로 전달한다. 이 책의 화두는 '에고(EGO)'인데, 톨레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각, 감정 그리고 물질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우리의 기원인 우주와 자연 그리고 현재 나에게 주어진 삶으로부터 멀어져 '지금 있음', 즉 현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객관적인 사실이나 중립적인 상황을 '내 기분과 감정 또는 생각'으로 해석해 고통을 자초하거나, 존재를 소유한 물건으로부터 자꾸 확인하려고 한다. 이 모두 우리가 살아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형상화된 모든 것으로부터 내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에고다. 톨레는 이 에고가 개인적인 문제라기보다 인간의 집단적인 무의식이라고 하기에,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한다. 대신 에고가 발현될 때마다 '알아차리는' 의식적인 공간을 일상에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현재'에 존재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지만 우리가 이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것은 꽤나 어려운 문제다. 이 일이 꽤나 어려운 이유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오감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그 정보들은 내 머릿속을 유영하며 의도치 않아도 자꾸 떠오른다. 정말 신기하게도 하루에 내가 어떤 정보를 듣고 봤느냐에 따라 그 관련된 이미지나 생각이 어느 순간 불쑥불쑥 떠오른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인간이 현존하는 데에는 정말 피나고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알게 된다. 특히나 온갖 정보가 쏟아지고, 휴대폰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는 정보에 노출되는 현대인은 현존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있다. 우리는 얼마나 환경에 취약한 존재인가.


톨레는 '현존하는 삶'을 위해 책의 말미에 세 가지를 제시한다. 바로 '받아들임', '즐거움', '열정'이다.

받아들임이란 지금 이 상황, 이 순간이 나에게 그 일을 하라고 요구하므로 기꺼이 그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즐겁게 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최소한 그것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임을 받아들일 수는 있다.

즐거움은 깨어있는 행동의 두 번째 방식이다. (중략), 즐거움을 통해 당신은 우주의 창조적인 힘과 연결된다. 즐거움은 '순수한 있음'의 역동적인 측면이다. 우주의 창조적 힘이 자신을 의식할 때, 그것은 기쁨으로 나타난다.

열정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깊은 즐거움을 느낌과 동시에 목표와 비전의 요소가 더해지는 것을 의미한다(중략). 열정은 자신의 풍요로부터 나누어 준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즐겁게 하고, 그것이 목표와 비전과 결합하면 열정이 생겨난다. 목표가 있다 해도 관심의 초점은 현재 순간에 하고 있는 일에 머물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적 목적과의 연결에서 이탈하게 된다.

- 에크하르트 톨레,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톨레와 내적 대화를 하며 퇴사 후의 불안과 조급함은 모두 내 에고의 발현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나 역시 아주 보통의 인간으로서 환경의 영향에 매우 취약하며, 에고의 발현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였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지만, 톨레 덕분에 조금 더 전체적이고 장기적인 삶의 관점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됐다. 그리고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의 최선은 '내 의식을 책임지는 일'임을 되새긴다. 그래야 나는 떠오르는 생각에 유영하지도, 내게 주어진 상황에 적대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삶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우주와 자연과 연결된 한 유기체로써, 지금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순수한 즐거움과 열정을 따라가 보자 한다. 그래야만 나는 삶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삶의 파도와 함께 춤을 출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회사 밖 여행 중이다.

<회사 밖, 업을 찾는 업그레이드>의 연재를 시작하고 이 글을 끝맺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앞선 글들에고로 똘똘 뭉친 글들인 것 같아 다시 읽기 부끄럽다... 움츠렸던 지난 3~4개월, 어두컴컴한 동굴 속을 지나 이제야 내 욕심을 조금은 내려두고, 나의 성공과 성취보다 내가 즐겁게 함으로써 더 큰 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이때 성공과 성취는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회사에 돌아가지 않고 스스로 독립할 거야!' 회사 밖에서 자유와 독립을 위해 발버둥 쳤던 '회사 밖은 무한한 자유고, 회사 안은 속박이다'는 이 이분법적인 생각을 깨뜨리기로 했다. 다만 지금 나는 회사 밖에 있을 뿐이다. 우주의 일부로서 우주의 창조적 힘을 빌려 내가 살고 있는 삶에 도움이 되고 싶다. 미에도 그게 회사 밖이 될지, 다시 회사 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 내게 주어진 삶은 회사 밖 자유와 책임이다.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자유에 무한히 감사하며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일 테다.



어쩌다 대만에서 살면서 배우고 느끼는 것을 브런치북에 연재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역사/문화와, 결혼 후 퇴사한 국제 커플이 각자의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해외 생활에 관심 있거나, 결혼 후 커리어에 대해 고민하시는 모든 분들과 연결되고 싶어요.

여러분의 이야기도 댓글에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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