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5주 차의 기록: 역행자, 여러분도 읽어 보셨나요?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나는 나 스스로 나를 위한 일을 만들 수 있다!'는 패기 어린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퇴사 5주 차 나는 내 자유의지를 믿지 않기로 했다.
누구나 어릴 적부터 무언가 소소하게 성취해 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작은 성취가 모여 다음 무언가에 도전할 용기를 주고, 그 용기와 성취했던 경험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더 좋은 전략과 회복 탄력성을 주기도 한다. 아직 세상에 내 이름을 걸고 내놓을만한 큰 일은 못했지만, 대입, 공모전, 유학 장학금, 브런치 수상, 출간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을 믿고, 이는 내 의사결정을 내리는 나름의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퇴사 5주 차 나는 나를 믿지 않기로 했다. 막연한 '잘 될 거야!'라는 마음가짐 대신 논리적인 의사 결정과 꾸준한 학습 그리고 내가 목표를 달성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 다짐해서도 안 되겠구나, 그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 다음 주에는 환경을 만들었다는 완료 시제가 되도록 움직여야 한다.
자청의 역행자를 읽고 있다. 역행자의 작가이자 유튜버, 재회 상담, 북카페 등 다양한 사업체를 거느린 '자수성가 청년'의 줄임말인 자청. 50만 부나 팔린 자기계발서인 만큼 읽어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실 그를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 한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만든 '자기 계발' 강의 때문이지만 단 한 번도 그의 유튜브나, 책 그리고 블로그를 들어가 볼 생각을 하진 않았다. 내 과거의 영광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에 성공한 사람들의 방법을 학습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부러운 마음에 '자기 방어 기제'가 작동했던 것인데 왜 그것을 외면만 했을까. 무의식 중에 소위 '자기계발서'는 뻔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수많은 '자기계발서'를 읽어 왔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읽어온 자기계발서처럼 위로나 지침을 주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나의 모자람을 '인정'하게 해주고 있다. 내 뇌와 마음에 사랑의 회초리로 나를 때리는 것만 같다.
'정신 차려!! 너도 별 다를 바 없는 인간이면서, 뭘 그렇게 너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그래!!!'
역행자, 순리를 거스르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책을 마침내 읽게 된 건 영국으로의 긴 비행을 앞두고 독서에 집중할 시간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간간이 책의 내용을 가지고 나에게 알려준 동생 덕분이기도 하다. 나와 동생도 살아온 환경과 생각하는 방식이 너무 달라서, 매번 '성공이나 인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면 서로에 대한 격려로 대화를 시작했다 비난으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이런 주관적인 생각의 차이를 뛰어넘은 사실은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가끔 동생은 내 이야기를 듣다가 나의 '자기 방어 기제'가 발동할 때면 역행자 책의 내용을 차분하게 언급하며, 한 번 가볍게라도 일독해 볼 것을 권하곤 했다. 생각의 차이가 아닌 인간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나를 반성하게 하니 반박할 길이 없었다.
이 책에서는 역행자 7 모델을 제시하는데, 이 7 모델을 '순서대로' 따르면 누구나 자유를 쟁취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자유를 원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쟁취해야 우리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돈이나 생존에 구애받지 않고 달성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에 자유에도 공식이 있다고 주장하는 저자의 말에, '도대체 예측할 수 없는 인생에 어떻게 공식이 있겠어?'라며 내 안에 자의식이 발동했다. 하지만, 이마음은 부러운 마음이라는 것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책을 펴 들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그래, 내가 이랬지!' 뼈때리는 말에 정신이 화들짝 들고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역행자 7 모델은 아래와 같다.
1. 자의식 해체
2. 정체성 개발
3. 유전자의 오작동 극복
4. 뇌 자동화
5. 역행자 지식
6. 경제적 자유를 얻는 구체적 루트
7. 역행자의 쳇바퀴
저자는 이를 '성공적인 인생 공략을 위한 모델'로 제시한다. 나는 이 모델의 핵심이 단순히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아니라,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훈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고대의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나 자신을 아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라는 세계에 갇히게 되면, 우리는 평생 명백한 사실과 세상의 진실에 눈을 뜰 수 없다. 더 넓은 삶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익숙한 사람들과 환경에서 나의 생각의 저변을 넓히는 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수상한 눈으로 뻔한 자기 계발서라고 치부하던 자청의 '역행자'는 거울과 같은 책이 되어주고 있다. 나라는 인간의 포장을 벗겨내고 내가 가진 알맹이를 보다 객관적으로 보고, 내가 인간으로서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뼈 때릴 만큼 아프게 깨닫게 해주고 있는 책. 경제적인 자유를 넘어 삶의 주도권을 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요즘엔 '경제적 자유'에만 집중되서인지, 그걸 쟁취하기까지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학습, 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꾸준한 운동 등 진정한 자기 계발 노력을 보지 못했다. 아니 외면했다. 책 속에 녹아 있는 그 알맹이를 보지 못하니, 내 마음속엔 성공에 대한 '열망'만 남을 뿐 실천하긴 어려웠던 것이다.
퇴사 4주 차에 이어, 5주 차도 여전히 나라는 사람의 포장을 벗겨내고 깎아내는 중이다. 회고와 새 출발을 위한 의지가 불타오르는 연말연시,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발가 벗겨지고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참 다행이다. 깎아지고, 벌거 벗어진 만큼 텅 빈 내 정신과 마음에 새로운 정체성을 심을 수 있다고 믿는다. 성공에 대한 몽상과 뜬구름 잡기가 아닌, 철저히 현실주의자로 나만의 작은 성취를 다시금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은 저자의 말대로 '나라는 인간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