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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Dec 14. 2023

퇴사 후 발가 벗은 이 기분

퇴사 1개월의 회고: 자기 인정과 학습

퇴사 후 매주 내가 어떻게 그 시간을 보냈는지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고를 하지 않으면 제 생각이나 습관이 계속 제자리에 머물기에, 회고야말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퇴사를 한 분이나, 퇴사를 준비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여러분의 이야기도 나눠주세요:)

퇴사한 지 한 달이 되었고, 으레 그렇듯 한 달이라는 숫자는 1주 차, 2주 차, 3주 차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온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긴 시간이기도 하지만, 지난 한 달간 나는 특별하게 성취해 낸 것은 없다. 오히려 퇴사 후 어떤 특정 목표를 향해 달리기보다, 꾸불꾸불한 길을 돌며 나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시간이었다.


퇴사 후 매주 그 시간을 한 두 단어로 정리해보고 있다. 핵심 단어로 정의해 보면 내가 그 주에 무엇을 집중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퇴사 1주 차는 '모험과 탐구', 2주 차는 '집중과 확산', 3주 차는 '에너지 관찰과 메타인지', 4주 차는 '인정과 학습'이다. 1주 차에는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해 사람들을 퇴사 생활에 변주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나에게 맞는 커뮤니티와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대략 정리가 되었다. 1주 차가 관심을 확산시키는 시간이었다면, 2주 차는 그에 이어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3주 차는 내가 관심 가는 주제와 일을 중심으로 내가 느끼는 에너지를 관찰하고, 그에 대해 가진 생각과 지식을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에너지 관찰을 위해 관심 있는 일을 해보고 그때 내가 분출하는 에너지를 회고해보고, 그 일을 의뢰했던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며 나의 강점과 약점을 되새겨 봤다.


퇴사 3주 차에 감사히 내가 관심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다문화와 여행'을 주제로 용인의 한 중학교에 가서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주한아랍에미리트 대사관의 프로젝트를 도와서 아랍에미리트에서 온 친구와 함께 그 나라 문화를 전달하는 일이었고, 다른 두 번은 여행과 국제결혼을 통해 바라본 '다문화 이해'에 대한 내 생각을 나누는 일이었다. 수 백명의 중학생들 앞에서 내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고, 친구들만의 경험을 이끌어 내며 교류하는 일이 너무나 즐거웠다.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 상호 작용하고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얼마나 설레던지! '선생님, 잘하시더라고요! 수고 많으셨어요!', '이때까지 했던 수업 중에 재일 유익하고 재밌었어요!' 수업 후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건네는 한 마디에, 내 소임을 다했구나, 그래도 내가 잘하는 일이 있구나 위안을 얻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


마음이 가는 일을 하다 보면 진심을 다해 준비하고 일하게 되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 그 마음 가는 일을 찾아내기란 그토록 어려울까? 자기 이해와 확신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나는 내가 가진 자원을 가지고 세상의 기회를 찾을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주어진 기회에 나를 끼워 맞추기만 했으니까. 나 자신과 주변 환경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기회를 모색하고,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사실. 나의 생계를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고, 나를 보살펴 주지 않는 울타리가 없어지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면서 깨닫는다.


내 마음이 향하고 잘하는 것을 알았다면, 퇴사 4주 차는 '자기 인정과 학습'이다. 그동안 나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매기만 했지, 더 잘하려고 무언가를 배운 적은 없었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되돌아보니 독서도 편식이 심했다. 약간씩 다른 내용의 자기 계발 서적이나 사회 인문학 책만 읽었지,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내 돈과 시간을 투자해 강연을 듣거나 직접 만들어보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다 내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고, 늘 나는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너무나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다. 나는 나를 얼마나 과대평가했는가. 퇴사 4주 차에는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듣고 있다. 내 돈을 직접 지출해서 몰입하며 듣는 유료 강의는 고등학교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강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튜터를 통해 나를 되돌아본다. 객관적으로 나보다 한참은 더 앞서 있는 그는 한 없이 자신을 낮추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지 않고, 끊임없이 공부를 해왔다. 자기애와 자존감이 높은 것은 좋지만, 때로는 해가될 수도 있겠구나. 그동안 나는 내 생각과 세상에 갇혀 있던 건 아니었을까.

책장에 있는 '에고라는 적'이라는 책을 들춰봤다. 부제부터 머리를 한 대 치는 것 같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버려야 할 한 가지- 에고라는 적'.

약 5년 전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곤 제목에 이끌려 사 읽었던 책. 이 책에 이끌렸던 이유는 이미 내가 나의 에고에 갇혀있었기 때문이었지 않을까. 그걸 깨고 싶었기 때문에 그 방법을 책의 저자에게 묻고 싶었던 걸지도.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 저자로서 나는 당신이 이 책을 다 읽은 뒤에 내가 이 책을 완성했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끼기를 바란다. 그 기분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예전보다 덜 생각하게 되는, 에고에 덜 휘둘리는 마음 상태이다. 부디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가능한 한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기만의 특별함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루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철저히 현실에 기분을 두고 작은 성취를 통해 내 목표를 이룩해 가는 것. 나의 특별함에 매몰되어 주변 상황과 자기 자신을 철저히 분석하고 인지하지 않고 꿈만 꾸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막연히 '나만의 일을 할 거야!'라는 순수한 열정과 야망을 가지고 퇴사를 했지만, 그동안 나는 환상에만 빠져 지냈던 것은 아닐지! 퇴사 4주 차, 나의 오만함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관심 가는 분야를 꾸준히 학습하며, 더 겸손하게 갈고닦아야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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