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테이블에는 엘크 고기, 와인 외에도 한국과 스웨덴이 놓였다.
브라질에서 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스웨덴 가정의 저녁 식사에 초대받았다.
"언니, 안나가 저녁에 엘크 고기 요리 해주신다고 오라셔!"
안나는 이 곳 우메오에서 만난 내 친구 해린이의 스웨덴 친구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어릴 적 스웨덴에 입양되어 스웨덴에서 평생을 보냈다. 현재는 유머 감각이 넘치는 남편과 예쁜 두 딸과 함께 우메오에 살고 있다. 해린이는 안나를 3년 전 학교에서 운영한 호스트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한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꾸준히 배우는 안나 이야기를 해린이로부터 많이 들었기에, 너무나도 만나보고 싶은 분이었다. 게다가 직접 만들어주시는 엘크 고기 요리라니!
저녁 식사에 초대받은 그 날은 우메오가 1월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영하 21도.
며칠 전 까지만 해도 섭씨 36도를 웃도는 브라질에 있었는데, 영하 21도의 최고 추위를 마주하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풋 나왔다. 지구 반대극에서 금세 지구 반대극으로 며칠 새에 날아온 내가 어이가 없으면서도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신기함과 신비함으로 가득 찼다.
오후 3시에 지평선 너머로 숨어버린 해를 뒤로하고, 하늘에서 은은하게 비춰주는 별빛 달빛의 인도를 받으며 자박자박 눈길을 지나 안나의 집에 도착했다. 우메오 강가에 위치한 안나의 집은 소박한 작은 조명들과 촛불들로 집 자체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어둠 속에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나, 해린이, 한국에서 해린이를 방문한 해린이 동생 미린, 그리고 안나네 가족.
우리는 주방 테이블을 둘러싸고 음식을 준비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만난 만큼 조금의 어색함은 있었지만 한국과 스웨덴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우리는 몇 년의 우정을 쌓아온 듯 편안해졌다.
스웨덴 플랫 브래드(건조한 비스킷 같은 빵), 샴페인과 생선으로 애피타이저를 끝내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감자 요리를 준비할 거야"라고 안나는 말했다.
엘크 고기와 곁들여 먹을 감자요리는 얇게 썰어 크림, 치즈, 소금으로 간을 하고 오븐에 구워야 했다. 우리들이 손질한 감자를 안나의 남편인 크리스가 감자 써는 기계에 넣고 슬라이스 했다. 순식간에 손질된 감자를 안나가 스웨덴 그리고 이탈리아산 치즈, 크림, 소금 그리고 후추를 가지고 맛있게 간을 했다.
"이제 45분 정도 기다리면 돼"라고 다시 안나가 말했다.
"이제 엘크 고기 요리를 만들 거예요?" 나는 안나에게 물었다. 10월 엘크 농장에 가서 엘크 스튜를 먹어는 봤지만 한 번도 직접 요리를 해 본 적은 없기 때문에 너무 궁금했다.
"음, 그러면 좋겠지만 오늘 먹을 고기는 내가 어제 먼저 준비해놨어. 오늘 먹을 엘크 고기는 차갑게 먹을 거야"
"차갑게 먹는다고요?"
"응, 고기만 차갑고, 오븐에서 구운 감자랑 친구가 숲에서 캔 버섯으로 따뜻한 브라운소스를 만들어 같이 먹을 거야. 물론 잼도 같이!" (스웨덴 사람들은 숲에서 버섯을 캐서 말린 후 요리해 먹는다, 심지어 버섯에 대해 배우는 책이나 수업도 있다)
안나가 준비한 스테이크는 스웨덴 북부 사미(Sami)족이 전통적으로 고기를 요리하는 방식이었다. 뼈가 없는 냉동 또는 얼지 않은 순록이나 엘크 고기를 65~75도의 오븐에서 8시간 구운 다음, 그 고기를 물, 소금, 후추 그리고 다양한 잎과 열매를 넣고 끓인 물에 4 ~ 5시간 재워두고 차갑게 식힌다. 이후 고기를 건져낸 후 물기가 빠지면 칼로 얇게 썰어 먹는 것이다.
안나는 냉장고에서 큰 냄비를 꺼내 우리이게 안나가 만든 엘크 고깃덩어리를 보여주었고, 크리스가 고기를 건져내여 얇게 썰었다. 도마 위에 오른 와인 빛의 홍조를 띤 신선한 엘크 고기는 너무나도 부드러워 보였고, 입안에 넣자마자 녹아버릴 것 같았다.
감자가 다 구워지고, 고기가 준비되는 동안 안나는 브라운소스를 만들었다. 간장, 소금, 후추, 크림으로 소스를 끓인 후 마지막으로 그녀의 친구로부터 받은 버섯을 넣어 조금 더 끓였다. 차가운 고기와 따뜻한 감자, 그리고 소스의 조합이 너무나도 기대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정성과 사랑으로 만든 음식이기에 오늘의 저녁은 더욱 풍성하고, 따뜻하고 맛있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했다.
우리는 요리를 준비하면서 샴페인, 간단한 생선 그리고 우리만의 이야기로 애피타이저를 끝낸 후 우리들의 첫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안나와 크리스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와, 해린이와 그녀의 동생 미린이는 거실의 아늑한 테이블에 접시, 포크, 나이프, 와인 잔 그리고 초를 셋팅했다. 겨울이 길고 어두운 스웨덴에서 초는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스며들어있듯이 오늘도 초는 테이블 한가운데에 놓여 우리의 첫 저녁을 축복해주었다.
안나, 크리스, 안나의 두 딸 그리고 한국에서 건너온 우리 셋. 처음 함께하는 저녁이었지만 우리는 저녁 내내 대화를 나누느라 쉴 틈이 없었다. 한국, 스웨덴 이야기 외에도 한 사람으로서 각자의 삶과 우리가 자라온 환경 그리고 그에 대한 문화가 테이블 위에 어우러져 이 날의 저녁은 더욱 풍성했다. 다음은 직접 나의 손으로 안나와 그녀의 가족들에게 따뜻한 한국음식을 대접하고 싶다.
길고 추운 스웨덴의 겨울이지만, 오히려 우리는 실내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음식을 앞에 두고 우리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겠지. 차, 촛불, 사람, 따뜻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처음 맞는 스웨덴의 추운 겨울이 오히려 더욱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