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게(Hygge)' 덴마크어/노르웨이어로 휘게는 편안함, 안락함, 따뜻함을 뜻해요. 지난해 영국 옥스퍼드 사전에서 뽑은 '올해의 단어' 후보에 '휘게'가 뽑혔고, 콜린스 사전에서는 아예 '올해의 단어'로'휘게'를 선정했다고 해요. 이 단어에서 유래한 '휘게 라이프'는 돈이나 명예를 무작정 좇기보다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소소한 즐거움(예를 들면, 친구나 가족들과 초를 켜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일)을 추구하며 사는 '작은 삶'을 의미해요. 지난해 한창 우리나라가 시끄러운 와중에 '휘게 라이프'에 대해 쓴 책이 순식간에 서점의 상위권을 차지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권력, 돈, 명예를 중요시하며 이를 위한 경쟁에 매몰된 우리나라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염증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살고 있는 스웨덴에는 'Hygge(휘게)'라는 단어는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생활 방식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친구들 또는 가족과 따뜻한 커피 한 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뜻하는 'Fika(피카)'가 스웨덴 사람들의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중 하나임을 생각하면, '휘게'나 '피카'나 의미하는 바는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해요. (스웨덴 Fika문화의 이면의 의미: https://brunch.co.kr/@enerdoheezer/32)
사실, 저는 한국에서 바쁜 삶을 사는 사람 중 한 명이었어요. 늘 1분 1초를 아까워하며 발걸음을 서두르기 일쑤였고, 심지어 친구들과 차 한잔 하는 시간을 너무나도 아까워했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서울에서 해야 하는 공부나 일이 많다는 핑계로 집에 가는 일은 더욱 줄어들었죠. 솔직히 말하면, 바쁘게 스스로를 내몰아치긴 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에요. 패기와 꿈으로 가득했던 20대 초반의 저는 '나의 꿈 =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 행복'이라는 등식만 바라보고 달렸기 때문에, 학생으로서 조금이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람차고 만족스러운 순간들이 많았어요. 그러다 보면 공부를 마치고 이 사회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어디서 발현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직업에 대한 야망, 더 넓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제 인생의 모티베이션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나의 행복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율도 절반이 넘었구요. '행복' = '자아실현' = '직업'이라는 공식이 마음속에 자리 깊숙이 자리 잡고있었어요.
하지만, 스웨덴에 온 후 '삶과 행복'에 대한 관점이 많이 바뀌어가고 있어요.
첫 번째로, 이 곳 사회는 굉장히 '가족 중심적'이고 인간적인 사회예요. 평일에는 대부분 6시, 주말에는 4 ~5시에 대부분 상점들이 문을 닫아요. 심지어 우메오 대학교의 도서관도 한국에서 흔한 24시간 운영제가 아니랍니다. 평일에는 오후 10시가 되면 문을 닫고, 주말에는 11시(토)/12시(일)에 문을 열어 오후 5시(토)/6시(일)에 문을 닫는답니다. 학생들 공부하라고 문을 한창 열어둬야 할 대학인데, 문을 닫는다는 자체가 저에겐 큰 충격이었어요! 하지만, 이 곳 학생들 역시 아침 평일엔 아침 일찍(8시만 되면 도서관이 바글바글해요) 나와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가족 또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스스로에게 '휴식'시간을 주기 때문에 학교가 24시간 문을 열 필요가 없는 거죠. 24시간 운영을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그의 삶을 희생해야 하고요. 한 번은 제 스웨덴 친구가 그러더라구요. 모든 상점이 밤늦게까지 문을 열면 누군가는 그가 가족들과 친구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희생하고 있는 거라고. 물론, 이 곳에도 슈퍼마켓, 클럽이나 음식점은 밤늦게까지 운영하는 곳도 있어요. 하지만 특수한 업종을 제하고는 대부분 문을 일찍 닫아요. 이런 현상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들이 '왜' 이런 문화를 지키고 있는지, 또 나라에서는 이를 정책적으로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겠죠? '다른 사람들의 편리가 증대되는 동안 누군가는 희생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에 의한 자발적 희생이 아니라 경쟁 사회에서 '생존'을 위한 희생이 만연한 우리나라 사회에 던져주는 시사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는 사람을 다채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
스웨덴에 살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점 역시 많이 바뀌었어요. 사실 저는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일'을 통해 발견하곤 했어요. 또 직업에 대한 관점도 굉장히 제한적이었어요. 나는 A라는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는지 직업을 통해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나의 '역할'에 대해서는 깊게 고찰해보지 못했어요. 사실 자신이 관심 있는 '어떤 분야'에서든 내가 직업을 구하는 '시기'에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도전하고 쟁취한다면 그게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이 다음 '점'으로 이어질 텐데 말이죠. 이 곳 친구들 역시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은 우리들이 하는 것과 비슷해요. 돈을 어떻게 벌지, 어떤 커리어를 쌓아 나갈지와 같이 흔한 우리의 고민거리들이죠. 하지만 우리와 가장 다른 점은 관심 분야나 자신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우리보다 넓기 때문에 선택의 기회가 많다는 거죠.
Stockholm 대학교 도서관 (출처:Imagebank Sweden)
스웨덴은 대학원까지 무상교육이기 때문에 자신이 공부하던 전공이 잘 맞지 않으면 다른 학교나 학과에 지원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요. 이 곳도 경쟁을 통해 합격을 해야 하지만(치대, 의대, 약대 그리고 각 학교의 유명한 대학/과는 경쟁률이 높아요) 적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합격을 하지 못하면 나중에 대학원에 진학을 하면 되기 때문에 '교육을 받기 위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남을 밟아 나만 살아남는 경쟁을 끝없이 할 필요가 없어요. 일례로, 약대를 다니고 제약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워낙 하고 싶었던 공부인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다시 의대로 진학한 친구도 있고, 자신이 공부하던 학과의 커리큘럼이 맞지 않아 다음 학기 다른 학교의 비슷한 과의 진학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어요. 이 외에도 대학을 바로 진학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 후 일을 하다가 대학에 늦게 진학하는 경우나 대부분 학/석사 통합 과정이지만 학사 전공이 자신과 너무 맞지 않아 석사 진학을 하지 않고 자신의 탤런트를 살려 아예 다른 길을 걷는 친구도 있죠.
그리고 스웨덴의 많은 친구들은 자신의 다양한 재능을 살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요. 생물학을 공부하는 친구이지만 '첼로'를 연주하고 '콰이어'에 들어가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거나, 도시계획을 공부하지만 수영을 좋아하고 잘 하는 친구는 아르바이트로 1주일에 한 번 씩 수영 코치로 활동을 해요. 저는 저 스스로를 규정지을 때 항상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 내가 공부하고 있는 전공, 직업 등 일을 통해서만 자아를 발견하곤 했는데, 스웨덴 친구들을 보면서 한 개인이 얼마나 다양한 색깔을 발현할 수 있는지 깨닫고 있어요. 그동안 '공부'라는 목적하에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저의 재능을 발견하는 건 제가 풀어나가야 할 숙제겠죠!(있을 거라 믿어요...(눈물))
행복해지는 자신만의 방법을 선택하세요.
여러분의 행복의 무게 추는 어디에 있나요? 각자가 정의하는 자신이 행복의 기준이 모두 다를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데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스칸디나비아의 많은 사람들처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통해 행복을 발견하기도 하죠. 어떠한 행복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가족중심적인 가치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도 돈을 많이 벌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저 역시도 스웨덴에 사는 동안 여전히 미국과 같은 곳에서 정말 열심히 일하고, 바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세계에서 훌륭한 학자들과 회사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니까요. 인간은 다양한 욕망을 가진 존재이기에 이 욕망을 부정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스웨덴에서 제가 배우고 있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좋은 삶과 행복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가족,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을 놓을 수 없듯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바는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삶을 지향하는지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들이 지향하는 삶을 성취하기 위해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여론을 조성하고 정책과 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