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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컬쳐커넥터 김도희 Jan 27. 2017

[변화]스웨덴에서 심은 오늘의 사과나무

 해가 떴고,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다짐했다.

 

오늘 내가 사는 우메오에 해가 떴다. 오랜만에 흐린 구름으로 가득하던 하늘이 걷히고, 구름 뒤에 늘 숨어있었던 해가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1분이라도 빨리 건물로 들어가고자 지름길을 택하는데, 오늘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을 택해 둘러왔다.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소나무들 사이로 밝게 비치는 햇살은 하얀 눈 위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도 반사되어 빛을 발한다. 아빠가 생각났다. 약 5년 전 아빠를 소나무에 묻어드리고 왔는데, 꼭 아빠의 영혼이 바람을 타고 이 곳 스웨덴에 와서 내 곁에 머무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바람을 타고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빠가 돌아가시는 해 나는 난생처음 직접적으로 '죽음'을 실감했고 그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다. 죽음이 단순히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장기나 기관들이 멈춰버리는 상태로 느껴져 허무하기도 했지만, 더욱 허무했던 것은 아빠가 어떤 운명을 지녔든 간에 한 인간으로서 당신이 누릴 수 있었던 자유를 누리고, 감정을 표현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아빠라는 타이틀 하에 그리고 회사라는 조직의 일원으로 유예하며 살았단 사실이다. 어쩌면 아빠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에 태어나 한 인간 또는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던 법을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처음으로 나 역시 내 '실존'에 대해 고민을 해보기 시작했다. 한 사회에서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들에 맞서 한 개인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많은 곳을 여행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자 노력했고, 그때 그때 마음에서 생기는 관심을 바탕으로 이 것 저 것 여러 활동에 참여도 했다. 교육, 문화, NGO, 스타트업 등 워낙 한 분야에 집중 못하고 이것저것 하는 탓에 주변에서 '너는 하나를 파고 들 줄 모르니?'하고 핀잔도 많이 들었다. 사실, 스스로 자책과 고민도 많이 했다. '나는 왜 한 가지 정말 내 열정을 모두 쏟아붓는 단 한 가지를 찾지 못하고 있을까?'. 하지만 분명했던 것은 어쩌면 분야가 다 달라도 내가 마음이 다 하는 것들을 했을 뿐이고, 결국 분야를 막론하고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개개인이 사회에서 자신이 꿈꾸는 것들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는 점이다. 교육 봉사를 할 때는 아이들에게 출신 배경에 상관없이 배움의 기회를 주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꿈을 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고, 문화 봉사를 할 때는 한국 외에도 더 넓은 세상이 있으며, 우리는 나라라는 공동체를 넘어 지구시민으로서 우리가 서로를 존중해야 함을 공유하고 싶었다. 실패했던 NGO 일을 통해서는 단순히 NGO에서 일하는 것만이 사회를 위해 착한 일,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를 가든 나의 재능을 살려 이 사회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내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함을 느꼈다. 짧게 인턴 생활을 했던 스타트업에서는 회사가 사회에서 좋은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해도 '자본'이 없으면 회사의 생존이 어렵고 , 그 가치를 실현하기가 만만치 않음을 느꼈다. 또한, 일은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으면서도 내가 가진 재능 및 관심사와 나의 성격을 반영하는 '역할'을 실현시킬 수 있어야 함을 느꼈다. 이렇게 돌고 돌아 전 세계 많은 나라들 중에서 한 개인이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휘하고, 사회에 다시 기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뒷받침되어있다고 인정받는 '스웨덴'에 왔다. 그리고 여전히 고군분투하며 또 다른 점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듯이 인생의 무수한 점들은 어떻게 이어질지 예측은 못하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다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점들을 통해 내가 지녔던 나만의 철학, 고집 또는 믿음이 지금 내가 사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고, 지금 나의 영혼을 키우고 있다. 사실 석사라는 수단으로 이 곳에 와서도 여전히 나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하면 또 이 치열한 사회에서 생존할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생은 단 한 번 나에게 주어졌고, 나는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기에 오늘도 나는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는 심정으로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야 할 뿐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통해. 이 글을 통해 내 생각을 공유하는 것이 다른 한 개인이 그/그녀의 두려움을 나와 나누고, 좀 더 큰 용기를 지닐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나는 오늘의 사과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내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또 내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우메오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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