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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Sep 30. 2021

실수


"이거 누가 넘어뜨려놨어?! 아휴~ 다 샜네!!!"


시가에 가려고 분주하게 짐을 챙기던 명절 연휴 첫날.

가는 길에 마시려고 텀블러에 수정과를 가득 담아

에코백에 넣어두었다.

밀폐가 되지 않는 텀블러라

넘어지지 않게 신경 써서 잘 세워뒀는데

어쩐 일인지 넘어진 채로 주변이 수정과로 흥건했다.

가뜩이나 갈 길이 바빠 마음이 급한데

이걸 언제 다 치우나.

한껏 가시를 세우고 누가 가방을 넘어뜨렸냐고

신경질을 냈다.

자기가 그랬나 보다 생각한 남편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아니 이거 밀폐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 조심 좀 하지

툴툴거리며 인상을 있는 대로 쓰고 걸레질을 했다.


한참이 지나 문득

이미 넘어져 다 새버린 텀블러,

누가 넘어뜨렸든 뭐가 중요한가 얼른 치우면 될 걸.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애한테 '실수해도 괜찮다' 말해놓고

정작 나는

누군가의 실수에 이렇게 신경질을 내고 있구나.

사실 원인을 따지고 보자면

그 가방 안에 수정과가 담긴 텀블러를 넣어놨다고

말하지 않은 내 탓이었다.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먼저 찾기'

몇 년을 배워놓고도 막상 실전에서는 다 잊어버렸다.

부끄럽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실컷 신경질 내놓고 이제와 사과를 하려니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보 미안해요.

내가 거기에 텀블러 넣어놨다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안 해놓고 당신 탓만 했어요."


나도...

실수해도 괜찮아.

하지만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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