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누가 넘어뜨려놨어?! 아휴~ 다 샜네!!!"
시가에 가려고 분주하게 짐을 챙기던 명절 연휴 첫날.
가는 길에 마시려고 텀블러에 수정과를 가득 담아
에코백에 넣어두었다.
밀폐가 되지 않는 텀블러라
넘어지지 않게 신경 써서 잘 세워뒀는데
어쩐 일인지 넘어진 채로 주변이 수정과로 흥건했다.
가뜩이나 갈 길이 바빠 마음이 급한데
이걸 언제 다 치우나.
한껏 가시를 세우고 누가 가방을 넘어뜨렸냐고
신경질을 냈다.
자기가 그랬나 보다 생각한 남편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아니 이거 밀폐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 조심 좀 하지
툴툴거리며 인상을 있는 대로 쓰고 걸레질을 했다.
한참이 지나 문득
이미 넘어져 다 새버린 텀블러,
누가 넘어뜨렸든 뭐가 중요한가 얼른 치우면 될 걸.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애한테 '실수해도 괜찮다' 말해놓고
정작 나는
누군가의 실수에 이렇게 신경질을 내고 있구나.
사실 원인을 따지고 보자면
그 가방 안에 수정과가 담긴 텀블러를 넣어놨다고
말하지 않은 내 탓이었다.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먼저 찾기'
몇 년을 배워놓고도 막상 실전에서는 다 잊어버렸다.
부끄럽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실컷 신경질 내놓고 이제와 사과를 하려니 민망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보 미안해요.
내가 거기에 텀블러 넣어놨다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안 해놓고 당신 탓만 했어요."
나도...
실수해도 괜찮아.
하지만 다음에는 그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