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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ney Feb 24. 2022

옹기종기 모여 앉아 달고나 게임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매주 토요일마다 주일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성당 언덕 아래 천변에 자리한 노점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뽑기'라고 불렀던 달고나를 하기 위해서였다.


입구부터 달다구리 한 향기가 가득한 좁은 천막 안에 친구들과 다닥다닥 붙어 앉았다. 주인아주머니 앞에 각자 가져온 50원을 순서대로 놓으면 돈을 낸 순서대로 달고나를 받았다. 달고나 받는 순서에 따라 양이 다른 것도 아니고 게임이 특별히 더 잘 되는 것도 아닌데 50원을 올려놓는 표정들이 무척이나 진지했다.

그러고는 연탄불 위에 여기저기 탄 자국이 가득한 국자를 두세 개 얹어놓고 무심하게 설탕을 녹이고 있는 주인아주머니를 자못 경이롭게 바라보곤 했다. 조금만 불이 세거나 때를 놓치면 설탕이 타버리는데 주인아주머니는 전문가답게 두세 개를 한 번에 만들어도 태우는 법이 없었다.


아주머니가 설탕이 뿌려진 쟁반 위에 다 만들어진 달고나를 올려놓고 어떤 모양으로 찍어줄까 물었을 때 재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모양을 할 수가 없다. 미리 생각해놓고 빨리 대답해야 한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잘 만들어진 달고나를 앞에 두고 옷핀을 손에 쥐었다. 한 땀 한 땀 신중하게 모양대로 손을 움직이다 보면 여름이고 겨울이고 땀이 났다. 그 사이에도 아주머니는 주문받은 달고나를 계속 만들었고 옆에 앉은 친구들 사이에서 환호성과 탄식이 번갈아 들리곤 했다.

몇 개를 성공해야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게임에 성공하면 아주머니가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 기회를 얻기 위해 집중해서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일주일에 딱 한 번 친구들과 달고나를 하러 가는 것은 나에게 최대의 사치이자 기쁨이었다.


그렇게 한 동안 매주 달고나 게임을 했는데 어느 날 천변 정비 사업 때문에 노점이 철거됐다. 아쉬움에 엄마 몰래 집에서 스텐 국자에 설탕을 녹여서 달고나를 만들다가 국자를 태우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서 만들어 먹은 달고나는 뭔가 더 씁쓸한 맛이 났다. 친구들과 함께 게임하는 그 맛이 빠져서일까.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인기로 달고나 만들기가 유행을 해 마트에서 포장된 달고나를 살 수 있게 되었다. 그 달고나를 볼 때마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콕콕콕 옷핀을 잡은 손에 땀이 나도록 달고나 게임을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추억을 떠올리며 포장된 달고나를 샀다. 오늘은 친구 대신 딸과 달고나 게임을 하리라. 하지만 막대사탕 모양을 한 달고나는 어린 시절의 그것과 달리 너무 두꺼워 게임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 달고나를 맛보는 딸은 쓴맛이 난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굳이 이걸 왜 먹었나 의아한 눈치다.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 아이는 온갖 종류의 사탕과 젤리 속에서 살고 있다. 무엇을 먹을까 선택이 어려울 만큼 종류가 많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사탕도 젤리도 귀했다. 달고나의 그 쓴맛을 알면서도 맛있게 먹을 만큼.

딸과도 달고나 게임으로 추억을 만들려다 되려 아이와 나의 세대차이만 실감했다. 혼자 먹는 달고나는 어릴 때 집에서 먹었던 그 맛처럼 달면서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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