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오늘의 자체휴강 1
10시 24분.
나는 수업이 시작하기 6분 전에 강의실에 도착했다. 아직 교수님은 들어오지 않으신 것 같다. 나는 조금 거칠어진 숨을 고르기 위해 숨을 깊게 내쉬었다. 강의실에 들어가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각각 주변 사람들과 수다를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성한 강의실에서 저렇게 언성을 높이는 건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이 강의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불경한 잡답은 피할 수 있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정말 다행이다.
'...음'
주섬주섬 가방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사실 한 두 명 정도는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외로운 외톨이가 멍때리는 사이에 교수님이 들어오셨다.
출석을 부르고 나서 바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개강한 지 3주째가 지나고 있지만, 계속 자체휴강을 때린 나는 이 수업이 첫 수업이었다. 정말로 불경한 건 잡담따위가 아니라 나였다.
공대생인 나는 주로 공대에서 수업을 듣지만, 가끔 교과목 코드가 같은 과목을 다른 학과에서 듣기도 한다. 우리 학교에는 과목 코드만 같으면 같은 수업으로 인정해주는 제도가 있다. 그리고 나만큼 이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지금 이 강의도 사범대에서 열린 강의지만 내 전공 교과목과 코드가 같아서 대신 듣는 중이다.
누군가는 공대 사람이 다른 학과 강의를 들으면 성적을 따기 쉽다면서, 성적을 잘 받기 위해 듣는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 한해서 이건 틀린 얘기다. 다른 학과 수업에서 성적을 잘 받아낼 자신도 없지만,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성적 자체에 그다지 흥미가 없다. 어차피 졸업만 하기 위한 학점 채우기. F만 안 받으면 된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왜 이렇게 다른 학과의 강의를 찾아 듣고 있는가. 그 이유는 바로 테트리스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내가 우리 학과 강의를 듣지 않고 사범대 강의를 듣는 이유는, 단지 강의 시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게으른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시간표를 짤 때는 테트리스처럼 딱딱 맞춰서 짜고 싶은 법! 중간에 우주 공강이라도 생기면 왔다 갔다 하기도 참 번거로워진다. 후딱 끝내고 얼른 집에서 쉬고 싶은 것이다.
뭐 그런 이유로 이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나는 조금 놀랐다.
'이 수업 뭐야.'
교수님의 강의를 대충 듣는데, 내가 평소에 듣던 강의와는 명백히 달랐다.
평소 듣는 공대의 강의가 '난 떠들 테니 너넨 알아서 알아들어라' 였다면,
이 강의는 '자 차근차근해서 시험 잘 쳐보자'였다.
어떻게 보면, 사범대 강의이다 보니, '임용'이라는 시험을 대비하는 측면이 있고, 그러다 보면 시험을 풀기 위한 수업을 하는 게 그들에겐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학기 중의 중간고사, 기말 고사도 그 '임용'시험의 대비를 위한 실력 확인 처럼 되어 있겠지. 여기까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이 강의를 듣고, 이전까지 들었던 공대, 아니 정확히는 우리 학과의 강의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애써 모른 척하고 있던 사실을 직면해 버린 것이다. 나는 우리 학과의 날림 강의에 대해서 '하긴,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면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변별력이 없어져서 곤란하겠지'라는 이유를 만들어 내 멋대로 납득하고 있었던 것 같다. 여태껏 의식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넘겨왔다는 걸 방금 깨달아 버렸다.
'대충 설명하는 거로 변별력을 만든다는 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이야. 그냥 우리 학과 교수님들이 강의를 대충 할 뿐이잖아.'
강의가 끝나고 나서, 나는 고등학교 때 수능을 준비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고등학교 선생님들도 '수능'이라는 시험을 향해 달려가는, '시험을 위한' 수업을 했다. 이건 나쁜 의미가 아니라, 말 그대로 '학생의 시험을 신경 쓰는' 수업인 동시에 '그렇기에 학생이 이해하고 따라오도록 신경 쓰는' 수업이었다.
대학교에 오고 나서 먹이를 찾아먹는 방식에 익숙해졌는데, 이런 떠먹여 주는 강의도 있다는 걸 깨닫고 나니 뒤에 있는 우리 학과 강의를 듣기 싫어졌다.
'뒷 강의는 자체 휴강 해야겠다.'
오늘은 왠지 낮술이 땡기는 날이다.
점점 다음 강의실에서 멀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