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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an 19. 2024

어쩌다 그런 흔적을 남겼을까

일상 눈여겨보기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뒤로 발랑 넘어진 거실 의자와 비뚤어진 스크래처를 보면, 우다다 놀았을 모습이 떠올라 고양이들이 더 귀엽게 느껴진다. 이처럼 어떤 행위의 흔적들을 들여다보는 일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예컨대 반듯하게 정리된 이불과 뒤집어 벗어던진 잠옷이 한 곳에 놓인 모습 같은. 그것들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모든 존재는 다르게 행동한다는 걸 생생히 알려주는 것 같다.


책상 위에 포개놓은 귤껍질은 글을 썼다는 증거.

티백 끈이 딱 달라붙은 머그잔은 지난밤 명상의 표시.

조금씩 쑤셔오는 등과 어깨는 스트레칭을 한동안 쉬었다는 기록.

오밤중 방귀는 채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의 아우성.


 몇 년째 쓰이지 않아 바구니 한켠에 처박혀있던 화장품, 요가 매트 근처에 떨어진 머리카락들, 치약 짜개 아래 진득히 달라붙은 먼지까지 돌연 사랑스러워 천천히 닦고 버려야 할 것은 떠나보내주었다. 어쩌다 그곳에들 살게 되었니. 숨 가빴던 오전 베이킹을 끝내고 개수대에 쌓인 설거지 더미를 볼 때면, 스테인리스 볼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닦게 되었다.


 오늘 우체국에 다녀오는 길에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아직 치우지 않은 카페, 불 꺼진 배달 음식점 앞에 죽어 있는 식물, 임대 전화번호가 적혀있던 가게 앞에 추가로 붙은 단수 조치 공고문, 이맘때의 예상보다 가벼운 통장 계좌의 잔고를 발견했다. 집에도 거리에도 핸드폰 속에도 나부끼는 수많은 흔적들은 누군가의 숨은 안부이기도 하다.


 계획을 썼다 고치기를 몇 번씩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은 1월. 노오력하고 꾸며봤자 신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귀여울 - 어차피 생긴대로의 흔적이라면 이제는 거칠어도 더 많이 남기고 보듬어주어야겠다. 특히 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흔적이자, 스스로의 의식 상태를 비추어 언젠가 원하는 모습을 갖추게 해줄 질료가 될테니.


지금 이 순간 글을 읽는 여러분은 모두 안녕하신가요. 안녕하시다면 라이킷!

당신의 흔적을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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