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늦은 춘곤증에 졸다 산책을 다녀왔다. 봄인데도 꽤 더운 날씨. 아메리카노가 든 커다란 텀블러에 얼음을 한 스쿱 쏟고 들이키며 어젯밤에 잘 잤나? 떠올려본다.
수면은 음식만큼이나 건강과 직결된다. 무엇을 얼마나 자주 어떻게 먹는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한 반면, 잠에 대해서는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건 아쉽지만.
깊은 잠과 얕은 잠은 어떤 주기로 어떻게 겪는지, 잠들기까지의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코는 얼마나 고는지를 자고 있는 내가 무슨 수로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유료 수면앱을 다운로드하게 된 동기였다. 자고 일어나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수면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흥미롭고 또 유익했다.
한동안 애용하던 수면앱을 보조적으로 사용하자고 마음먹은 건, 앱이 알려주는 수치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신을 발견하고부터다. 얕은 잠의 단계에서 부드럽게 들려오는 따뜻한 음악소리와 함께 아침에 가장 먼저 각인되는 수면 평가는 무의식 깊이 침투한다. 그에 따라 ‘오늘은 잘 못 자서...' 혹은 '오늘 잘 잤으니까' 하며, 하루를 정해진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순간들이 생긴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수면 품질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 날은 가벼운 실망과 함께 오늘 피곤하겠구나, 생각한다. 평균 이상인 날은 실제로 몸이 찌뿌둥해도 ’왜 이래, 잘 잤잖아?‘하며 무리하게 체력을 소모하기도 한다. 불특정 사용자들이 제공하는 데이터와 통계를 기반으로 개인의 수면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도구일 뿐인데, 쓸수록 의존하고 의존할수록 수면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될 다른 행동을 하지 않으니... 나라는 개인 그 자체인 몸이 주는 신호에 성실하게 귀기울이는 쪽이 더 바람직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앱에 필요 이상 의존하기 시작한 순간 나는 수면보다 더 중요한 권리에 대한 통제를 잃을 우려가 있어 보였다. '배고프면' 먹듯이 '졸리면' 자고, 배부르면 먹지 않듯이(물론 먹지만) 피곤하지 않으면 깨어 있는 게 더 자연스럽고 존엄한 일은 아닐까?수면앱의 알람은 최후의 보루로만, 일어나지 않으면 아주 큰일나는 시간에 맞추고 자기로 했다. 깊은 잠에서 무지막지하게 끌어올려지는 일반 알람보다 얕은 잠에서 깨워주는 앱의 알람 기능이 좋은 건 사실이니까.
봄기운을 빌어 몸이 알람보다 먼저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실험을 스무날 이상 지속했다. 앱의 알람이 울려서 깬 날은 그중 단 하루다. 생각보다 눈이 번쩍번쩍 잘 떠졌다. 작년부터 앱을 쓰면서 수면 규칙성이 확보되었거나, 에너지 충만한 계절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몸의 신호에 맞춰 일어나 그때 그때 느끼는 솔직한 컨디션에 따라 하루를 보내고 있다. 졸리면 잠시 쉬고 힘이 넘칠 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바라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도구는 많다. 하지만 최초 목표가 아닌 도구 그 자체에 집착하게 된다면, 인생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백히 하자. 시계, 체중계, 알람, 통장 잔고 등 외부의 수치와 도식을 자꾸 확인하고 옭아매는 태도는 결국 자기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데서 오지 않을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빛나는 자기 확신을 한 덩이, 한 덩이씩 내면의 금고에 쌓아두고 원하는 때 자유롭게 꺼내 쓰고 싶다. 몇백억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건강이라는 자산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