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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Mar 01. 2022

글 쓰는 방

도농복합시에서의 일상 (1)


 평택의 농촌으로 이사 온 며칠 후, 차를 타고 시내 편의점에 갔다. 집 주변은 온종일 조용했고 저녁 무렵 둘러본 시내도 적막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휴대전화에 시선을 고정한 편의점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분)께, 이곳 사람들은 일찍 집에 들어가냐고 여쭸다. 이사왔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지금이~ 여덟시 반? 여기 사람들은 잘 시간이죠."


 저녁 여덟 시 삼십분이 잘 시간? 서울에서는 여덟 시 반이면 한창 무언가가 시작되는데. 아무리 작은 동네도 불 밝힌 가게들이 그득하고 마음만 먹으면 할 일이 넘치던 과거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곳은 저녁 어스름이 짙어지기 전에 매장들이 문을 닫는단다. 24시간 쉼 없이 일하고 노는 나라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서울이 그런 거였어.




"이건 어느 방이에요?"


 이사 온 이층 단독주택은 층마다 방이 세 개다. 둘이서 세 개의 방을 쓴다니, 이 날을 얼마나 고대했는지.

방들의 구체적 용도를 진지하게 생각한 건 이삿짐을 옮길 때였다. 짐을 옮겨주시는 분들이 계속해서 짐이 들어갈 자리와 배치를 물었다. 우선 침실을 정해 침대와 옷장을 넣어달라 부탁드리고, 다른 방에 책장과 컴퓨터와 남편의 물건들을 놓았다. 제일 작은 방에는 오랜만에 나타난 내 짐들을 일단 쌓아뒀다.

 

 수년간 남편의 방에서 좁게 지내는 동안, 혼자 살 때 모은 나의 짐들은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서울 매장을 열 때도 갑작스러운 이사를 한 우리가 미처 짐정리도 할 새 없이 일하는 동안, 답답했던 시어머님께서 임의로 짐을 치우신 것이다. 다시 찾을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한 곳에 모인 걸 보니 잃어버린 정체성이라도 찾은 듯 울컥한다.


 <내 방>도 좋지만 <글 쓰는 방>이 있었으면 하고 언젠가부터 바랐다. 휴일마다 스터디 카페나 조용한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때때로 난든벌을 갈아입지 않고, 세수도 양치도 하지 않은 채 혹은 좋아하는 차를 홀짝이며 집에서 쓰고 싶었다. 팬데믹은 막연했던 글쓰기의 실행을 앞당겼고 그렇게 시작한 쓰기는 나를 처음 보는 세상으로 데려갔다. 어떻게든 글을 시작하고 그것을 확장시켜 다듬는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할 수 없다보니, 모든 의식을 집중하다 보면 최초의 사고가 열리는 순간도 있었다.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를 나열하는 건 지극히 정적인 행위 같지만 그 속에는 오로라같은 희열이 일렁였다.


 마음에 드는 책상부터 구하고 싶어서 아는 빈티지 가게에 연락했다. 뛰어난 상상력의 빨간머리 앤이 쓰던 것처럼 낡은 듯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책상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런 건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실용적인 책상을 사야지. 바퀴가 있어 쉽게 이동할 수 있고 고정할 수도 있으며 높이와 기울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책상은 그렇게 낙점되었다.


 단단한 나무 의자도 야심차게 주문한 다음  휴일이 오자마자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졸음이 쏟아졌다. 책상 앞을 정리하고 나면 하염없이 눈꺼풀이 떨어지던 고3이라도 된 것처럼.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살은 달콤한 메이플 시럽을 녹여 붓는 듯 나른했다. 쉬는 날 글이 써지지 않으니 평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그 방에서 무조건 한 문장 이상을 쓰고 나오기를 해봤다. 두 달이 넘도록, 그렇게 쓴 문장들은 단 한 문단으로도 완성되지 못했다.


  '카페처럼 적당한 어수선함과 개방감이 있는 장소에서 쓰는 데 너무 익숙해졌나?'

 어느 날 거실 식탁에서 무심코 글을 쓰다 문장이 술술 나왔고, 그때부터 글쓰는 방이라 부르던 공간의 용도는 달라졌다.


 처음엔 음악감상실. 중고마켓을 통해 산 구식 파나소닉 오디오에 남편이 소장한 옛날 CD들을 넣고 요즘과 다른 음질을 만끽했다. 잠든 남편을 깨우지 않고 책을 읽거나 빈백에 앉아 뒹굴거리에도 좋았다.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빈백과 용도가 정의되지 않은 방은 한동안 환상의 호흡을 자랑했다.


작은 방의 변천사.

  

 겨울이 되자 집은 웃풍이 심해 써늘하기가 말할 수 없었다. 보일러의 극한 노동에도 외부에 고스란히 노출된 오래된 단독주택은 코가 시리게 추웠고, 그 방은 차가워서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마침내 이불처럼 커다란 빨래를 말리거나 큰 짐을 갖다 놓기 시작하면서, '모든 운동기구의 끝은 빨래걸이'라던 지인의 명언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어디에 머무를지 선택할 수 있는 건 공간 고유의 미덕이 아닐까. 이동하기를 택하면 그 의지를 어렵잖게 실현할 수 있는 공간의 특성 탓에 여행이 그렇게 신나는지도 모른다. 원하는 시점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시간에 비해 공간에는 의지를 비교적 쉽게 반영할 수 있다. 모양이나 용도를 바꾸고 자유롭게 재창조하는 것을 포함해서.


 손만 뻗으면 닿을 곳이지만 아직도 가닿지 못하는 그곳. 본연의 용도대로 쓰이지 못해 몸이 근질거릴, 책상을 품은 글방 그리고 내 안에서 열리길 기다리는 가슴 속의 글방. 부지런히 글감을 모으고 써대기 바쁜 나 자신과 만날 날이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장 공사를 준비하며 조금씩 둘러보던 초여름부터 지금까지 평택은 여전히 신비롭고 낯설다. 한동안 특정 지역에 '한 달 살기'가 유행했는데, 이사 온 지 여덟 달이 지나도 평택에 대해 아는 바가 미미한 걸 보면 한 달은 맛보기 정도의 기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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