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고향친구가 보낸 택배 상자

긍작가의 손꾸락 그림 일기

by 개꿀

점심 시간,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반가운 문자가 왔다.


띠링띠링!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직장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

그거슨, 바로 택배!


쏜살같이 수탁실에 달려갔더니

내가 주문한 물건이 아니라

친구가 보낸 선물이었다.


오이예! 보람이다!


발신인은 이름도 예쁜,

고향 친구 보람이가 보내온 선물.


열어봤더니 세상에나!

역시 보람이 다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보람이는 10대 때나 지금이나 센스가 가득.
보람이 다운 귀여운 아이템들

일본 여행 다녀오며 샀다는

귀여운 과자와 캔디,

평생 발라볼 일 없는 샤넬 립스틱과 향수,

그리고 축의금까지...


한 번 보고 말 친구가 아니기에

축의금은 중요치 않다 생각했는데

친구 마음은 또 안 그랬나보다.

예나 지금이나 친구의 넓은 씀씀이와

이해심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보람이와는 중학교 때 가까워졌다.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지만

나는 초등학교 때 전학을 왔고

반도 달라서 그냥 이름만 알고 있는 정도였다.


보람이는 예쁘고, 귀엽고, 당당해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반면, 나는 퉁퉁 부어 있고

친절하지 않고 어딘가 어둡고

그런 아이였을 거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데도

그 시절, 나는 되는 게 없다고 느꼈다.

그리고 몹시도 외로웠고 우울했으며

불만이 많은 아이었다.


중학교 1학년, 우린 어떻게 가까워졌더라?

볼거리가 유행했던 시절이었을까?

기억나는 건 우린 반이 달랐다는 것.

그럼에도 어떤 공통분모를 통해

가까워졌고 급속도로 친해졌다.


보람이네 집은 학교 근처였는데

집이 엄하지 않던 나는 보람이네 집에

자주, 아니 거의 매일 놀러갔다.


보람이네 집서 떡꼬치 같은 것을

만들어 먹기도 했고,

함께 가족들과 식사도 하곤 했다.

아마 나는 보람이네 집에서

가족의 풍경을 처음 배웠을 거다.


또, 보람이네 오빠 방에서

몰래 O양 비디오 같은 걸

훔쳐보다 걸려 된통 혼나기도 했다.


등학교도 같이 하고 오락실도 가고

함께 에어로빅도 하고

비오는 날엔 보람이네 아빠가

우리집까지 나를 데리러 오기도 했다.


그랬구나.
그 시절, 보람이 덕분에
나는 외롭지 않았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편지배틀!

보람이와 편지를 자주 주고 받았는데,

매일 보면서도 할말이 어찌나 많았는지

A4용지 열 장을 거뜬히 넘기기도 했다.

그것도 빽빽히 채워서.


보람이는 사쿠라펜 같은 예쁜 일본펜으로

알록달록 이쁘게 그림도 그려 넣곤 했다.

아직도 그 편지의 이미지가 머리에 훤하다.

(그 편지들은 어디로 갔을까?)



보람이는 엉뚱하고 개성 많은 아이였다.

자신을 외계에서 온 소녀라고,

진지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또 춘추복 자켓 주머니에

캥거루처럼 과자들을 듬뿍 넣고 다니며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귀여운 아이였다.


또, 굉장히 똑똑했는데

당시 유행이었던 펌프의 신이었으며

공부를 안해도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똑똑이였다.

또, 일본을 좋아해서 독학으로

일본어도 곧잘 했다.


그래!
그 시절 보람이는
굉장히 빛나는 아이였다.


누구나 함께하고 픈.

같이 있으면 기분 좋아지는.


결핍 탓에 누구도 믿지 않는다하며

친구와의 관계에 벽을 만들었던 나는

보람이의 순진무구함에 무장해제됐다.


열등감도, 또 무모한 욕심도 없이

10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처럼

보람이는 마음이 건강한 아이였다.

아플 땐 울고, 기쁠 땐 웃고

또 남을 배려하고 살피는.


상처 주기 싫어 상처 주던

그때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보람이가 곁에 있어서

먹구름 같던10대에

무지개 같은 일들이 일어났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가면서 점점 멀어져서

성인이 된 후로는 연락이 뜸했지만

언제든 연락이 닿으면 기분 좋고

또 편안해지는 그런 친구가

보람이였다.


아직도 타인과의 관계에

벽을 허물지 못하는 나에게

보람이는 얼마나 기적같고 귀한 친구인지.


새삼스레 보람이에게 너무 고맙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누군가 이렇게 물어보면

나는 절대 싫다고 고개를 흔든다.

어제보다 오늘이 더 좋으니까.


10대 시절 나는 자주 불행했고

자주 마음이 아팠으며

스스로를 벽 안으로 몰아부치곤 했다.

그러니까 그때의 나는 잿빛이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나지만

오늘은 생각이 조금 다르다.


보람이를 알던 10대 그 시절로 돌아가

조금은 친절하게, 그리고 마음 놓고

친구들과 놀고 싶다.


보람이 덕에

그 시절 나는 정말 행복했구나 싶다.


고마워 보람아
항상 기도할게
네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단다


<유달리 진지한 그림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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