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긍작가의 손꾸락 그림일기

by 개꿀

금요일에 생긴 일이다.


이날, 출근길에 나는 몹시 쌀쌀 맞았다.

그 이유는... 졸렬하다.

왜냐구?


적반하장형 버럭이니까


간밤, 신랑이 내게 상처 받았다.

대략 말하자면 내가 굉장히 쌀쌀 맞게 말하고

등을 돌려 자버렸기 때문이다.


신랑은 마음의 교감이 중요한 사람인데,

내가 미안하단 말도 안하고 자버렸으니

신랑은 밤새 잠도 잘 못잤을 거다.


실제로 이튿날 신랑 얼굴은 부어 있었고

신랑에게선 시크함이 묻어났다.

간밤의 일이 생각난 나는

신랑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신랑은 표현을 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간밤에 뭐가 서운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게 (하려)했다.


내 역할은 가만히 들어주면 되는 거였는데

습자지만큼이나 얄팍한 나는

오히려 성을 내고 말았다.


죄인이 된 것 같았고

비난 받는 것 같았기 때문.


회사에 갔는데 신랑에게 내내 미안했다.

무엇보다 내 행동에 내가 찔렸다.

퇴근 하면 신랑에게 사과해야지 다짐했다.


퇴근 길, 신랑과 차를 타고 귀가하며

차 안에서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그랬더니 신랑이 자기 마음 이야길 했다.


어젠 서운했어. 왜냐면 ...

그때 난 고개를 휙 돌리고 말았다.


아직도 화난 거야?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나는 방귀를 뿡뿡 껴놓고

냄새난다고 애먼사람에게

막 화내고 있었다!!!

(나도 내가 유치하단 거 안다.)


사람은 단순하고 매우 약해서,

화를 내다보면 화에 잠식 당하고 만다.


불뚝성을 내던 나는 창밖만 봐도 불끈불끈!


그러다 마침내,

앞에서 얼쩡대던 운전자에게 욕을 하고 말았다.

(물론 소심해서 차 안에서만)


갑자기 침묵.


그런데 마음 속에서 스멀스멀

웃음이 나는 게 아닌가.

내가 욕해놓고 내 욕이 너무 웃겨서.


혼자 웃음이 터졌다.

신랑 얼굴을 보니 웃음이 났다.

신랑도 날 보더니 웃었다.


웃지마! 흥!


나는 이날 미쳤던 게 분명하다.

신랑에게 이렇게 말하고 말았으니까!


그래, 유치하고 졸렬하고 미개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웃음을 누르고

다시 화로 무장한 채 침묵을 지켰으니까.


끝까지 버티고 싶었다.

쓸데 없는, 생산스럽지 못한 오기를

끝까지 고집하고 싶었다.



집 근처에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아

신랑은 주차장을 찾고 나 먼저 집으로 왔다.


집에 가면 이불 덮고 말도 안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갔다.

그런데 이부자리에 눕고 보니

'카카오런' 게임을 하고 싶어졌다.


게임 한판만 하고 이불 덮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게임을 하는데

한판이 두판이 되고, 두판이 세판이 되고...


신랑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난 게임만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불 덮고 누워야 하는데.


내가 이렇지 뭐, 용의주도하지도 못하고

얄팍하도 자존심만 세고.. 궁시렁



각시야, 이거 받아

누워 있는 내게 신랑이 뭔가를 내밀었다.

나는 최대한 시크한 얼굴로 휙 돌아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신랑이 꽃다발을 내민 거다.

세상에, 이걸 사서 들고 오다니.


이게 뭐야?


각시 생각나서 샀지


미안했다.
마음속 깊이 묻어둔 미안함이
오기와 자존심, 유치함을 뚫고 올라왔다.


고마워, 그리고 너무 미안해


나는 얼떨결에 꽃다발을 받아들고

신랑에게 다시 사과했다.


난 각시가 내 말을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어제 내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거든.
내가 바란건 그것 뿐이었어.


그랬구나.

신랑은 자기 마음이 어땠는지

말하려던 것 뿐이었는데

나는 왜 비난받는다 생각했을까.

이렇게도 나는 서툴다. 서툴고 서툴다.



나는 늘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만나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존경하는 신랑을 만났다.


물론 존경하는 사람을 대하는 것 치고

나는 장난기 심하고, 철 없는 태도로

신랑을 대하곤 한다.


마음을 전하는 게 서툴어

때론 내 마음의 감정도 눈치채지 못하고

어리석은 대응을 하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신랑은 툭유의

온화함과 솔직함으로 나를 반성케 한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는 말,

이건 앞서 산 자들의 지혜다.


물론 어떻게 지느냐에 달려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겐 져주는 게 맞다.
치열한 싸움은 밖에서 해도 되니까.
나는 신랑이 내게 져준다는 걸 안다.


신랑이 양보한만큼 배로 부끄러워지는 난

오늘도 신랑 덕분에 사랑을 배운다.


부족하고 부족한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신랑이 사준 꽃다발
이렇게 벽에 걸어 말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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