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작가의 만년필 그림일기
오늘 수영을 쨌다.
주말에 서울 다녀왔다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거다. 뭐 이런저런 합리화를 하며 수영을 째고 더 잤는데, 하필 수영 시작 시간에 눈이 번쩍 떠지는 거다.
분명 피곤했지만 몸은 "나 거뜬하거든?" 하는 상황이랄까? 그 순간,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은 더 오지 않더니 마침내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수영 하러 갈걸.
망할! 난 가끔 모지리 같다.
이럴 거면 멋지게 딱 가서 '음파음파'하고 나온 뒤, '오늘 좀 피곤하네? 그래두 수영 결석 안했다'라고 위안하며 하루를 보내면 좀 좋아.
그러고보니 커더란 미스터리가 있다.
바로 나는 왜 수영을 못하는가?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바다 지겹게 봤다. 바다에서 날마다 놀았다. 더는 말 않겠다.
뭐 여름 아니어도 늘 바다에서 살았을 거다. 조개 잡아서 시장에 팔아 크레파스를 산 적도 있다. 물은 코딱지만큼도 무섭지 않았단 뜻.
지난 화에 썼듯이 심지어 수영부에도 들었었다. 킥만 열라 차길래 힘들어서 관뒀지만(뭘하던 작심3일이었던 때). 체육시간엔 늘 수영시험을 봤고, 높은 점수는 아니어도 통과했다는 게 함정. --;
위의 세 가지 상황을 보더라도 의아한 일이다.
도대체 왜 수영을 못하는 거야?
추측하건데, 아마 내가 '개구리+개헤엄 보유자'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니까 수영을 야매로 한다는 건데, 언제 이런 걸 배웠는지는 모르겠다. 뭐 늘 바다에 살았으니까.
지지지난주, 친오빠네 집에 놀러갔을 때였다.
내가 너한테 수영 가르쳐준 거 기억나나?
오빠가 이런 말을 하는 거였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때는 바야흐로 네가 미취학 아동때였지.
네가 수영을 못하니까 오빠가 널 목마 태워서
깊은 곳에도 가고 그랬어.
그러던 어느 날, 널 강하게 키워야겠다 결심했지.
일동 긴장.
뒤이은 침 넘어가는 소리. 꿀꺽.
널 깊은 물에 두고
나는 근처 바위에서 널 지켜봤지.
허우적 거리는 널향해
게헤엄 시늉을 보여주며 이렇게 해!
했더니 네가 헤엄을 치며 나오더구나.
헉! 그런 일이 있었다니.
아니, 강하게 키우는 것도 좋지만 내가 위험에 빠졌으면 어쩌려고!! 내 물음에 오빤 이렇게 답했다.
비상상황에 대비해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었지.
그랬던 거였다.
내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개헤엄은 생존의 도구처럼 자리잡고 있던 거였다. 살기 위한 몸부림. 비록 멋있는 자유형은 아닐지라도.
그리고 한 가지 더 추측해본다.
어릴 적 우리 가족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었다.
늘상 지겹게 보아왔던 곳이고, 땅따먹기 하듯 심심할 때 찾는 놀이터였다. 여름철 해수욕은 전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고, 수영을 폼나게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든 물에 뜰 줄 아는 거였다.
요즘 짠 바다내음 대신 시큰한 염소 냄새를 맡으며 새삼, 나에게 제주 바다가 어떤 공간이었는지 다시 깨닫는다.
뭐 자유형이 아니면 어때!
개헤엄이라도 할 줄 알면 됐지.
P.s. 경고. 우리 오빠처럼 하면 안돼요. 위험한 상황에 놔둔다도 절대 강하게 크지 않습니다. 내가 운이 좋고 또 독한 구석이 있어서 그래요. 난 어릴때부터 승부욕이 강했어요. 어느날은 동네 아이랑 줄넘기 내기를 했는데 바지 고무줄이 늘어졌는지 바지가 계속 내려가는 겁니다. 그런데도 팬티가 보이건 말건 끝까지 뛰어서 이겼답니다. --;; (아무래도 내 승부욕의 모든 것은 어릴때 다 써서 바닥났다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