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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꿀 Jun 10. 2020

(24) 맘카페에 마스크를 드림했다

좋은 일 하고 욕 먹는 재주

둘째를 출산한 지 어느덧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정확히는 오늘로서 56일차)


글을 쓰기는 커녕 돈만 쓰는 날들이 이어졌고, 'B'라고 쓰인 아이콘만 봐도 브런치 생각이 나 부채감에 시달렸다(제가 오바가 심합니다 하하하). 그럼에도 소재는 늘 쟁여두고 있었으니 이것은 그 중 '안 쓰고는 못 베길 것 같은' 이야기 중 하나다.


조리원에서 돌아와 제일 열심히 한 것은 '집안 정리'였다. 나는 평상시에도 글쓰기 전에 집안 청소를 깨끗히 해야만 하는 성격이다. 그렇다고 "개꿀은 정말 깨끗한 분이로군요"라고 오해하지 길 바란다. 작업하기 전 청소는 하나의 '의식'에 불과하다. 마음을 차분히 만드는 의식.


그리고, 그 의식은 두 달째 이어오고 있으니.. (띠로리)



사실, 출산 전부터 대청소는 시작됐다. 시작은 꿀꿀이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였다. 먼저 꿀순이가 입었던 옷들 중 꿀꿀이가 입을만한 옷들을 추렸다. 레이스로 범벅이 된 옷만 아니라면 살아남았고 분홍색이든 뭐든 우선은 세탁기로 들어갔다.


옷 정리가 빨리 끝나서 아쉬웠을까. 나는 만삭의 배를 움켜쥐고 꿀순이, 아빠, 엄마 순서대로 옷을 정리했다. 대망의 옷 정리는 바로 엄마 순서에서 막혔으니 무슨 옷이 이렇게 많은지. "안 입는 옷은 버리자!" 마음 먹었으나 하나 하나 들춰볼 때마다 자꾸만 '희망고문'이 시작됐다.


"살 빼서 입을 거야! 이 유니크한 옷을 버릴 수 없지!"


내가 좋아하는 옷들은 좋게 말하면 '유니크' 나쁘게 말하면 '거적대기' 같은 옷들이어서 어디다 내다 팔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합리화하며 차곡차곡 옷장에 쟁여넣다보니 옷을 넣을 공간이 필요했고 서랍을 구입했다.


그렇게 대청소는 부피가 커졌고 둘째를 낳기 전 날까지 진행됐다. 그리고 지금껏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아아.




청소를 하며 가장 난감한 것은 '멀쩡한 물건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쓰기에 멀쩡한 물건들을 그냥 버리자니 죄책감이 들고, 그렇다고 쓰자니 이 집에서는 인연이 다한 물건이고, 리폼해서 쓰자니 똥손이고... 결국, 그렇게 찾은 것이 지역 맘카페와 당근마켓이다.(당근마켓 이야기는 다음에 쓰겠다.)


지역 맘카페는 결혼 전 부동산을 알아볼 생각으로 가입했다가 퇴짜 맞았다.(반드시 결혼을 한 기혼자야만 가입이 가능 했다. 결혼 예정인 자는 받아주지 않았다.)


결혼을 하자마자 맘카페에 당당히 가입했고 그 후에는 그저 '눈팅'만 했다.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엔 어쩐지 나가기 쑥스러웠고, 팔거나 '드림'할 물건도 없었으며, 이 지역 토박이가 아니었기에 교류할 정보도 없었다.


그러나 꿀순이를 임신하면서 맘카페를 들락날락 했다. 괜찮은 산부인과가 어디인지, 어떤 선생님이 수술을 잘 하는지 등의 정보부터 왠지 사기에는 아까운 아기 욕조, 바운서, 아기띠 등의 물건을 중고로 사거나 드림 받았다.


그렇지만 그다지 '성실 멤버'는 아니었는데 최근 그만 나도 모르게 성실 멤버가 되어 버렸다. 둘째 출산, 대청소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타고 물건을 팔고 나누는 즐거움에 빠져버렸달까!


나에게는 도무지 쓸모 없고 어정쩡한 물건들이 맘카페에서는 살아 남았다. 티슈 케이스, 체리색 책꽂이, 모서리가 까진 책상, 악세서리 케이스, 킬힐 등등. 한때 애정했던 물건들에게 가차 없이 이별을 고하는 대신, 새 주인을 찾아줄 수 있어 기뻤다.


맘카페에서는 물건을 무료로 나눠주는 것을 '나눔'이 아닌 '드림'이라고 표현했다. 그 말에 꼭 누군가의 '꿈(Dream)'이 담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도 '드림의 대열'에 합류했고 어느덧 '드릴 물건이 없을까?' 찾아 방안을 기웃대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나는 무엇이든 지나치게, 열성적으로 하는 게 탈이다. 그러다 쉽게 흥미를 잃는다.)




이틀 전 일이다. 부엌을 정리하던 나는 일의 수순(?)대로 틈새 가구를 사서 냉장고 옆에 넣었고 기존에 쓰던 어정쩡한 서랍장을 정리했다.


그러다 녀석을 발견하고 만 것이다. 바로 '아동용 면 마스크' 꾸러미. 꽤 두툼한 마스크는 얼추 세어보니 50여장 정도 됐다.


심 봤다!!!

이럴 땐 이렇게 외쳐야 옳다.

"심 봤다!!!!"


마스크, 그중 아동용 마스크는 특히나 구하기 힘든 코로나시대가 아니던가.


하지만 솔직히 나는 골치 아팠다. 보자마자 '이걸 또 어떻게 처리하지?'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 물건의 정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꿀순이를 낳았을 때 이모님이 건네준 봉지. 그 안에는 같은 모양의 마스크가 수십 장, 앞치마가 몇 개, 아동용 팬티와 양말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이모님은 중고 옷가게를 운영하고 계신데 가끔 멀쩡한 물건을 발견하면 우리에게 주곤 하셨다.


포장지에 곱게 싸인 마스크에는 아마도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한 어느 잡화점이 가게를 접으며 물건들을 이모 가게에 처분했다거나 하는. 마스크는 '새 것'이었으나 내 눈은 자꾸만 포장지에만 머무렀다. '정가 1500원'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흐름(분명 10년 전의 소비자 가격일 수밖에 없는) 그것을 증명하듯 꼬질꼬질 때가 탄 포장지 말이다....


다시 보니 귀엽군


나는 아이 넷 집안의 셋째딸. 어릴 때 숱하게 물건들을 물려 받았다. 꿀순이에게만큼은 새 마스크를 사주고 싶었다. 아니, 신상의 예쁜 마스크를 사주고 싶었다.


아아, 내가 이렇게 겉모습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나? 내 자신의 겉모습도 제대로 가꾸지 못하는 '게으른' 사람이 이렇게 물건의 겉모습에 집착하고 있었다니. 새삼 내 자신의 얄팍함을 깨달으며 마스크를 봉지째 다시 서랍에 넣어버렸다. 눈에 마스크가 보이지 않으니 나의 얄팍함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마스크와 만났다. 하지만 더는 난감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드림'을 하면 되었으므로. 맞다. 나의 얄팍함을 '나눔의 정신'으로 덮어버리고 싶었던 거다. 드림 행렬에 다시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들떴다.


나는 서둘러 맘카페에 글을 올렸다.


'아동용 100% 순면 마스크 드림합니다.'


그리고 글을 올린지 10분도 되지 않아 50장의 마스크가 동이 나고 말았다.




마스크 드림을 하기 전, 나름 작은 원칙을 세웠다. 그것은 마스크 2~3장 정도를 여러 명에게 나눠주겠다는 것이다. 맘카페에는 각 카테고리마다 매우 구체적이고 자세한 규정이 존재했는데 나는 그것을 아주 대략만 알고 있었다. 그게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


글을 올리고 숨 쉴 겨를도 없이 댓글이 달렸고, 채팅이 쏟아졌다. 문제는 대다수의 엄마들이 요구하는 마스크의 양이 1~2장 정도가 아닌 '대량'이라는 점이었다.


"저한테 다 주시면 안 돼요?"

당당하게 요구하는 91년생 엄마.


"죄송해요(쓰면서도 생각했다. 나는 왜 죄송해야 하는가! 이런 뼛속까지 박혀 버린 '을'의 인생.) 여러명에게 마스크를 드리는 게 목적이라서 다른 맘님들 수량 체크하고 드릴게요."


내 답변에 91년생 엄마는 당돌하게 꾸했다.


"원래 댓글 순이 원칙이에요. 제가 첫번째로 댓글 달았으니 제가 원하는대로 주시고 남는 걸 나눠주시는 게 맞아요. 그럼 저는 12개만 주세요."


이건 뭐지? 슬슬 기분이 나빴다. 그러나 이미 내 안의 '약한 자아'가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원칙'이라는 말에 반응한 것이다.


'아아! 이런 원칙이 있었구나. 규정을 어기면 나 이러다 벌 받을 수도 있겠네? 아아, 원칙대로 해야지.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아니, 개꿀 아줌마. 당신의 '원칙'은 어쩌시구요? 당신이 세운 원칙을 먼저 고수하셔야죠? (이건 내 안의 또다른 자아.)


그렇게 91년생 맘님의 말에 마스크를 나눠주다보니 딱 3명에게 주었을 뿐인데 동이 나고 말았고, 심지어 댓글을 단 모든 사람에게 나눠주겠단 다짐을 지킬 수도 없게 됐다. 일일이 댓글을 달며 '드림이 종료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댓글을 다는 내 자신이 어찌나 처량하던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수록 마스크에만 몰두했다.


꿀순이가 자기 것이라며 까버린 마스크 2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마스크를 모두 포장했다. 그 위에 메모지로 엄마들 성함을 적어 뒀다.


그때 남편이 안방에서 꿀꿀이를 안고 나왔다. 분명 아이들 다 재우고 '육아 관련 영상'을 보기로 했는데 왜 이렇게 안 들어오나 싶어 나와 본 것이다.


"지금 뭐해?" (너굴)


"마스크 나눔했어." (나)


"뭐? 이걸 왜? 꿀순이 쓰면 되지. 안 그래도 어린이집에서 마스크 위생에 신경쓰는데 여러 장 돌려서 쓰면 되잖아."(너굴)


남편이 이렇게 정색하고 말하는 건 참 오랜만이었다. 남편은 매의 눈으로 내가 포장한 마스크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10장이 넘는 마스크가 한 사람에게 배분된 것을 보고 더 기가 막힌 눈치였다.


남편의 눈빛에 좌절감이 밀려왔다. 항상 내가 하는 걸 지지했던 남편이었다. "잘한다! 잘한다! 잘했어! 잘했어!" 이런 격려만 받고 살다가 오랜만에 꾸중을 들으려니 왜 이렇게 인생이 허무한 건가. 내 약한 자아가 한 번 더 상처 받아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궁색한 변명만 늘어놓았다.


"꿀순이 것도 두세장 챙겼어. 다른 마스크도 있으니까 같이 빨아서 쓰면 되잖아."


"마스크도 낡는단 말이야. 계속 두고 두고 쓰면 좋잖아.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한꺼번에 많이 챙겼겠어."

너굴의 말에 다시 한 번 항복.


내 표정을 살피던 남편이 다시 말을 이었다.

"나누는 건 좋아. 아주 좋아. 그런데 왜 꿀순이도 쓸 수 있는 걸 나누느냔 말이야. 이렇게 시간 허비해가면서."


결국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알았어! 들어가! 들어 가라고!"


속상했다. 내가 꼭 나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딸 아이의 물건을 몰래 팔아치우는 나쁜 엄마. 아니다. 난 그런 엄마가 절대 아니다. 괜스레 억울했다.


'나는 꿀순이에게 더 예쁜 마스크를 사주고 싶단 말이야!'

이게... 이게 본심이었다. 무엇이든 사고 마는 나의 소비 패턴, 낭비... 그 습관이 이런 선택을 불러왔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또, 그 내면에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바로 나의 약한 자아가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여러 명에게 나누어주겠다고 마음 먹은 건 나의 원칙이었다. 그런데 91년생 엄마가 얘기한 '맘카페의 원칙'에 나는 스스로의 원칙을 휴짓조각 만들어버렸다.


다시 맘카페의 규칙을 살펴봤다. 거기엔 댓글 순으로 물건을 나눠줘야 하며, 사람을 골라  특정한 이에게 물건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만약 특정한 대상에게 물건을 주고 싶다면 제목에 분명히 명시를 하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원칙대로라면 '한 명당 2~3개씩만 드리고 싶어요' 라고 명시했어야 했다.


그렇지만 엄연히 말하면 내가 세운 원칙이 맘카페의 규칙에 위배되는 것도 아니었다. 맘카페에서는 물건을 독차지하려고 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하고 있었다. 마스크 50여장을 혼자만 가지려는 엄마의 태도 역시 맘카페의 공공성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실제로 91년생 엄마는 뭔가 찝찝했는지 댓글에 수량을 적는 게 아닌 나에게 채팅을 걸어와 '전부 다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던가.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문제가 확실해졌다. 내 약한 자아가 스스로 '호구'가 되길 원했다는 것이다.


뒤는게 터져 나오는 분노, 그리고 좌절감! 아놔, 난 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거지? 등등의 자기비하는 덤이었다.




나는 왜 좋은 일을 하고도 욕먹는 것일까?왜 이렇게 찝찝한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 그날밤 잠도 못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잠을 못 잔 여파는 이틀 내리 이어지고 있다.)


그러자 김동조 트레이더의 책 '모두 같은 달을 보지만 서로 다른 꿈을 꾼다'.가 떠올랐다. 올해 초, 매우 인상 깊게 읽은 책이다.


출처: 예스24


작가는 인생에 있어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어떻게 원칙을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승부를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원칙을 세웠다면 그 원칙을 고수할 것인지 변경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좋은 원칙은 사수하고 잘못된 원칙은 개선해야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또 승부를 해야 한다. 압도적인 승리와 패배는 시간 낭비다. 그러니 승리에 오만하거나 패배에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필생의 승부는 드물고 당신은 원칙을 위한 몇 개의 경기를 이제 막 끝냈을 뿐이다. (87쪽)


내가 대부분 선택이나 관계에 있어 패배자의 위치에 있었던 건 바로 이러한 원칙 때문이었다. 원칙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거나 세우고서도 허물어뜨렸기 때문에 남의 의견에 수없이 팔랑댔던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원칙이 있어야 좋은 선택이 가능하다"고.


마스크를 나눈다는 사소한 선택 그  이면엔 나의 육아 원칙, 삶에 대한 원칙, 나눔에 대한 원칙이 들어가야 옳다. 그러나 각기 충돌하기 좋은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조차 고수하지 못한 나. 문제는 원칙을 지키지 못한 내 자신에게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마스크를 드림 받기로 한 맘카페 엄마들에게 정중히 메시지를 돌렸다.


내가 세운 원칙은 여러명에게 마스크를 드리는 일이었고, 그걸 지키지 못해 나눔을 했는데도 마음이 좋지 않다. 한 명에게 너무 많은 마스크가 돌아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다시 배분하기로 결정했다. 이해해달라.


이런 내용이었고, 댓글 순서에 따라 7장~3장으로 마스크를 배분했다. 그리고 꿀순이 몫의 마스크도 몇 장 더 빼놓았다.


다행히 90년생 엄마들은(공교롭게 댓글 상위 맘들이 90년대 생) 쿨내 나게 받아들였고, 공격 받을까 두려웠던 나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더불어 밀레리얼 세대에 대한 편견도 버리게 됐다(이 얘기는 하려면 또 몇시간이 필요하니 언젠가 풀어놓을게요).


그래, 나눔에도 원칙이 필요하다!


모두들 이 점을 명심해서 아름다운 드림 하시라.



P.S

육아로 인해 글쓰기가 쉽지 않네요. 그림 그리고 글을 올리는 구조라서 더더욱. 글을 간단히 쓰자니 늘 tmi가 되고 맙니다.


그려놓은 소재들은 많은데 중요한 건 나의 마음이 "다른 걸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자꾸 그것들은 폴더에 팽개쳐두고 새 이야기를 씁니다. 내가 그렇죠 모.


ㅡ요새는 창작에 대한 압박이 병 수준이라 브런치에 글 쓸 에너지를 아껴서 동화에 쏟아야 할것 같습니다. 브런치엔 적어도 한달에 1~2편은 연재할게요!(혹시 누구든 보고 계신다면..흑흑)


ㅡ현실은 육아, 육아, 유우우욱아. 이 글 하나 쓰는데 하루가 꼬박 걸렸습니다. 아아아. 헬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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