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여러 요건 중 경제적 요건이 가장 뒤로 가야 하는 이유
모든 가치 있는 글은 아픔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나의 창작지론이다. 기쁨도 아픔을 극복하는데서, 성취도 결핍을 극복하는데서 기록할 가치가 생겨난다. 나는 왜 이미 어렵지 않게 성취한 독립에 대한 글을 연재하고자 했을까? 어느 날 친구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 일이 너무 힘들어. 결혼해서 남편이 존중해 준다면 전업주부로 살고 싶어.
남편이 존중해주지 않으면?
그럼 일 해야겠지. 아 근데 남자를 잘 만나면 될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이 문제였을까. 나는 이 대화를 이어가며 모종의 두려움을 느꼈다. 마치 이 학벌 좋고 똑똑하고 발전적인 친구 위로, 수천 년 간 거듭 반복된 “여자의 일생”이 또다시 그 버거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 보이는 듯이. 결혼은 행복해지려고 하는 건데 왜? 멀쩡한 남녀가 이 나이가 되면 애써 확보한 독립성을 내던질 때가 되었다며 스스로 자기 손발을 묶을 리가 없는데? 전업주부란 어떤 존재인가. 왜 나는 이 단어가 기쁘게 들리지 않는가. 이 의문들이 이제는 희미해진 내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부터 약간은 슬픈 색을 띠고 올라왔다.
나는 엄마가 전업주부여서 너무 좋았다. 나와 내 동생은 질문이 많고 불만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손이 아주 많이 갔다. 아홉 살 때 사람은 왜 사는가를 시작하여 매일매일 골치 아픈 질문을 쏟아냈는데, 엄마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할 경우 진심으로 엄마에게 실망하곤 했다. 아빠는 지적인 면에서 자기보다 아내가 월등함을 인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질문을 하면 “엄마한테 물어봐라.”하며 자기도 함께 아내의 대답을 기다렸다. 인터넷 검색창이 없던 시절, 엄마는 우리 집의 네이버 지식인이었다. 그런데 나와 동생은 유독 생각이 많아 질문이 많고, 심지어 체력도 시간도 넘쳤다. 실험하고 분노하고 질문하고 미움받는 것이 나의 초등학교 시절의 일과였다. 집에서 엄마가 기다려주고 얘기를 들어주고 안아주지 않았더라면 나의 길 모르는 에너지가 어디로 향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똑똑하기만 했던 게 아니다. 무슨 집안일이든 저러다 뼈가 빠지겠다 싶을 정도로 했다. 가녀린 몸으로 매일 손빨래를 끙끙 신음하면서 했고, 자녀가 전염병이나 장염 한 번 걸린 적이 없을 정도로 청결을 유지했다. 요리를 아주 잘해 소문이 자자할 정도였고 효녀는 아니었으나 효부였다. 우리 엄마가 학교에 다녀가면 선생님들의 나에 대한 평가가 올라갔다. 저런 엄마한테 자랐으면 저 애도 속까지 괜찮은 애일 거야. 이런 평가가 좋아서 나는 엄마가 학교에 자주 와 주길 바랐다. 나는 엄마와 매일 싸웠지만 사실 엄마가 자랑스러웠고 많이 존경했다. 전업주부로서 엄마가 부족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남편에 비해 넘쳐흘렀다.
엄마는 객관적인 조건으로나 외모, 성격, 지성 모두 자기보다 못한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한 사랑의 불나방이었다. 아빠가 자기 형제들은 갖지 못한 것들을 결혼을 통해 누리는 것을 보며 나는 아빠의 분에 넘치는 처복을 “로또”라고 칭했다. 현모양처에 효부에 지성인에 미인인 아내. 결혼은 우리 아빠처럼! 하지만 아빠가 엄마와 심하게 부부싸움을 한 후, 엄마의 카드를 정지시키고 계좌를 동결시킴으로써 경제력을 박탈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 사건은 엄마의 자존심을 훼손시키고 가정에 헌신해 온 엄마의 반평생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두 딸이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절대 남자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며 이를 갈게 했다. 나는 아빠에게 전화해서 “너 같은 새끼가 내 아빠인 게 끔찍하다. 내 피 다 뽑아가라, 개새끼야.”라고 말하며 절연을 선언했다.
아내는 잃어도 큰 딸은 잃을 수 없는 아빠가 나에게만 사죄를 했다. 아빠는 슬쩍 카드와 계좌를 되돌려놓았고 엄마가 언제나처럼 참음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나와 내 동생은 그 일로 결혼과 헌신이라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남자의 순한 성격과 넓은 이해심에 인생을 기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아빠가 엄마에게 확인시켜 준 것은 엄마의 경제적 비독립성뿐만이 아니었다. 가정의 양 축 중 한 축으로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서 가정을 운영해 왔다는 것을 부정당하기도 한 것이다. 동등한 가정의 주인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헌신하며 인생을 바칠 필요가 있었을 리 없다. 우리 두 딸이 그랬던 것처럼, 힘들고 험한 일이 닥치면 남편이 만들어 주는 그늘 아래로 숨으며 쉽게 살아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분명 가정을 이끄는 양 축 중 하나였다. 나만큼이나 열심히 일하고 학구적이고 에너지 많은 엄마가 집에서 방바닥을 닦고 빨래를 하며 얼마나 많은 생각과 욕구들을 세월에 흘려보냈을지 생각하면 뭔가가 되게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엄마가 아깝다.
그 후 지금까지, 엄마가 어떻게 살았어야 했는가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아빠가 엄마에게 월급을 줘야 했을까? 특별히 시부모에게 잘하는 달엔 상여금을 줘가며? 출산 사례금도 두 번? 그랬다면 고용관계가 발생하여 아빠의 갑질이 더 노골적이게 됐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돈이 되지 않는 엄마의 자잘하지만 중요한 일들이 경제 가치가 없다는 이유로 폄하되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내 친구의 말대로 남자를 잘 만났어야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빠도 신혼 때는 둘도 없이 다정했을 것이다. 남편이 20년 후에 어떻게 될지를 알고 결혼하는 아내도 있나? 나는 내가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 나만 잘하면 되겠지 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정말 자기만 잘하고, 자기만 최선을 다하고도 경제력이 없다는 이유로 내내 주눅 들 일이 생기던 사람의 눈물을 내내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엄마가 좀 부족해서 남편에게 기대어 삶으로 인해 큰 이득을 보는 사람이었다면 내가 전업주부라는 단어를 덜 슬프게 받아들였을까? 애석하게도 그럴 것 같지가 않다. 전업주부가 덜 존중받는 이유가 있다면 누가 더 잘나고 못나고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적 자립 여부 때문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가 저 기 빨리는 육아, 뼈 빠지는 살림을 해 내면서 돈까지 벌어야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한 인간의 독립과 존엄을 논할 때 경제적 자립 문제가 가장 뒤로 빠져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엄마가 지금 나의 나이와 같았을 때, 즉 내가 7살 때의 엄마를 기억한다. 엄마는 두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남편을 내조하고 극성스러운 시부모에게도 최선을 다하던 며느리였다. 나는 엄마도, 아내도, 며느리도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나는 결코 그녀만큼 잘 해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심지어 엄마도, 경제적 자립만 이룬 나를 그때의 엄마보다 더 좋게 평가한다. 동시에 경제적 자립 빼고 제대로 하는 게 없는 스스로에 대한 나의 자괴감과 위기감을 배부른 소리인 것처럼 생각한다. 경제적 자립이 그렇게 절대적인가? 우리는 우리의 현재 상태와 삶의 방향을 그 잣대로만 평가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인가?
모두 어느 정도는 엉망이다. 경제적 활동 빼고는 도대체 뭘 하고 사는 건지 모르겠는 나도 엉망이고, 경제적 자립이 안 된다는 이유로 자신의 독립성을 의심하는 전업주부도 슬프게 엉망이고, 언젠간 모두가 백수가 된다는 명제를 잊고 돈 버는 유세를 떠는 사람들도 엉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어, 라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말로 남을, 그리고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의 당신은 독립적인 사람입니까, 라는 질문에 살짝 어깨를 움츠리며 “경제적으로는… 우선 아니지.”라고 말하며 슬픈 눈을 하는 엄마를 보며 묘하게 화가 나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