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절반이 독립한다, 프리랜서 보고서

오늘도 프리랜서는 진정한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 중

by 암사자



낮잠을 실컷 자고 일어난 오후 4시 40분, 집을 나서서 어떤 교통 체증도 없이 걸어서 10분 거리의 학원에 도착한다. 음악을 틀어놓고 숲 향이 나는 룸 스프레이를 뿌리고 원장실의 간이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며 학생들을 기다린다. 짤랑-하는 문에 달아놓은 종소리와 함께 나의 업무가 시작된다. 그리고 4시간 남짓 일을 한다.


이것이 프리랜서인 나의 업무 패턴이다. 정기적으로 쉬는 날은 없지만 매일 4시간 정도만 일하고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인다. 내가 꼭 필요하지 않은 일만 있는 날에는 보조선생님께 일을 맡기고 출근을 하지 않기도 한다. 주말에는 오후 12시부터 4시까지 일하는데, 그러면 나의 자유시간이 오후로 옮겨간다. 오후엔 일하고 와서 피곤하기도 하고 대기 자체가 고요하지 않기 때문에 휴식의 질이 좋지 않다. 평일 5일 동안 아침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하고 커피를 마시며 갖는 휴식이 훨씬 나를 발전시킨다.


프리랜서가 이렇게 좋다. 시간은 금이라는데, 그 금을 내가 짠 시간표대로 쓸 수 있다. 우리 학원 학생들의 장래희망은 “원장 선생님처럼 사는 것”인데, 그 이유는 별 것 안 하는데 잘 사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적어도 남들 보기엔 여유롭게 살 수 있고 실제로도 원한다면 시간은 많이 낼 수 있다. 경제적 안정성만 포기하면 다 가질 수 있다. 안정된 월급을 내어주고 시간 자율성을 사는 것 같다. 이 거래를 할지 말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퇴사를 하면 독립을 하는 것일까? 나는 시간 자율성을 얻기 위해서도, 경제적 안정이 절실하지 않아서도 아닌 그저 부당한 대우에 분노해서 퇴사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문제 때문에 퇴사를 한다.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 혹은 내가 살기 위해서 경제적 불안정을 감수하고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퇴사를 한 직후, 갑자기 쏟아지는 시간은 주체하기 어렵고 불안만 가중시키는 애물단지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퇴사는 독립이 아니다.


야무지게 계획을 세워서 퇴사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처럼 그러지 못했던 사람들에겐 퇴사를 뒤늦게나마 나를 위한 독립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사건은 해석하는 자의 것. 나는 지난 2년 간, 부당한 요구에 분개하여 일주일 만에 사표를 던져서 발생한 퇴사를 나의 도약을 위한 독립으로 해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 결과 지금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여 첫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퇴사를 독립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독립한 후 프리랜서로서 나의 직업을 정해야 한다. 경제인으로서의 내 정체성을 새로 정하지 못한다면 그저 직업을 잃은 백수가 되어버린다. 지친 마음을 위해 일정 기간 휴식을 취하거나 새로운 직업으로의 전환을 위해 학생이 되거나 탈이 난 몸을 치료하는 시기를 갖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특별히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스텝이 필요했다. 운 좋게도 학부모님들이 퇴사 직후 계획해 놓은 3일의 서울 여행만 마치고 내 집에서라도 수업을 해주길 요구해 주셨다. 나는 바로 내 집에 공부방을 차렸다.

퇴사를 독립으로 만들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직장인이었던 나와는 다른, 프리랜서로서의 나의 새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나는 학생을 수입이 나오는 원천으로만 보는 것에 큰 분노를 느끼다가 퇴사했기 때문에, 프리랜서가 된 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집에 차린 공부방은 좁고 불편했지만 학원에서는 따라 할 수 없던 좋은 점이 있었다. 바로 주방과 침대가 있다는 것이었다. 부모님에게 맞고 가출을 하거나 자해를 하거나 새벽에 술을 마시다가 갈 곳이 없어진 여자 아이들이 울면서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부모님들께 내가 잠시 데리고 있겠다고 연락을 드린 후 스크램블 등의 부드러운 음식을 해 먹이고 내 침대에서 재웠다. 시험 기간에는 공부가 부족한 아이들을 라면을 끓여 먹이며 새벽 3시까지 공부시켰다. 정말 힘들었지만 아이들도 나도 행복했다. 학원을 개업한 지금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는 추억이 되었다. 코로나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지만 내가 진심을 다 했기 때문인지, 아직 학원은 크게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한 적이 없다.

퇴사를 독립으로 만드는 세 번째 단계는 남는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몇 시에 일어날지, 몇 시에 일을 시작하고 끝낼지, 아무도 제재하지 않는 하루를 어떻게 건강하게 보낼 것인지는 나이를 먹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오후 업무 시작 전까지 특별히 할 일이 없어서 자고 또 자서 오후 2시에 일어나기도 했다. 늦게 일어나는 방탕한 생활을 해도 된다는 것을 깨닫자 밤새 시트콤을 보며 술을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밤을 술로 보내고 난 다음 날은 숙취로 엉망이 되었다. 하지만 실컷 자며 컨디션을 되돌릴 시간이 충분하므로 또 그렇게 방탕하게 보내는 것에 주저함이 없어졌다.

그리고 나는 바쁠 때도 시간을 쪼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한가해지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눈 떠서 5시간 정도 책을 읽으면, 그것도 매일 읽으면,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아주 지겨워진다. 몇 달이 지나자 아무런 산출도 없는 내가 책을 이렇게나 많이 읽는다는 게 종이 낭비, 잉크 낭비처럼 느껴져서 독서 파업을 선언했다. 별 것도 아닌 결정에도 모두에게 카톡으로 선언문을 배포하는 자의식 과잉 인간인 나의 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시간을 때우는 것은 비난받는 반면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때우는 것은 고상한 것으로 평가받는 세태를 한탄한다. 이 한탄은 하루 종일 책을 읽는다는 이유로 괜히 좋은 평가를 받는 내가 해야 효과가 클 것이라 사료되어, 금일 나는 독서의 무용성을 폭로한다.”

할 일이 너무 많아져도 시간 관리는 중요하다. 일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필요성을 느껴서 일로 만들면 다 일이 되었다. 프리랜서 첫 해에 나를 따라서 학원을 두 번이나 옮겨준 고등학생 3명에게 너무 고마워서, 보답하기 위해 일을 만들었다. 고등학교 세 곳의 모든 부교재에 대한 변형 문제를 만들어 책으로 엮어 준 것이다. 그때 나는 밤 10시까지 수업을 하고, 아이들을 보내자마자 변형 문제집 제작 작업에 돌입했다. 거의 매일 작업은 아침 7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그때 자기 시작해서 깨어나면 그날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워라벨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시간을 일에 쏟아부었기 때문에 성과는 좋았지만 나는 일과 관련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이 패턴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가할 때는 시간을 내실 있게 보내기 위한 관리가 필요하고, 너무 바쁠 때는 번아웃이 오지 않도록 일 외의 것과의 시간 분배가 필요하다. 모두 프리랜서 혼자서 해내야 하는 일이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오늘도 프리랜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과 시도를 해보는 쪼렙 프리랜서이다. 직장 동료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제한되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적어 근시안이 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내가 아프기라도 하면 바로 경제적 위기에 봉착하게 되므로 어떻게 하면 프리랜서라는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함께 이룰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 답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내가 탁월한 실력을 가진 직업인이 되면 된다. 그것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정진할 것인지 알아보고 해내는 것도 나 혼자만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가끔 막막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관두고 다시 입사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다. 조금 더 내 효용성을 시험해보고 싶다. 어제는 6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영작문 교재를 만들었다. 교재 선택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기에, 내 손에 착 달라붙는 칼을 내 방식대로 주조한 것이다. 시중에 나와있는 책으로 수업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품이 든다. 상사가 있었다면 내가 만든 책을 보고, 헛짓하지 말고 원래 있던 책으로 하라고 혀를 찼을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왜 굳이 만드느냐고 물어서 “돈이 책을 다 쓰게 하네요.”라고 했지만, 사실 이건 겸손이었다. 나는 내 열정과 독립성이 책까지 쓰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 다음 스텝도 이렇게 내 독립심이 밀어붙인 나만의 무언가 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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