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으려 아프러 가는, 죽고 싶은데 살고 싶은 아이러니
온종일 이런저런 백신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온다.
부작용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자극적인 뉴스와 사망 사고까지.
그래도 오늘 기준 우리나라 국민 70%가 1차 접종을 완료했고, 백신을 맞지 않으면 나 하나가 아닌 여러 사람에게 병을 옮길 수 있는 위험군이 될 수 있으니 일단 맞기는 맞는다.
무서워서 '나 빼고 모든 사람이 다 맞으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 "헐! 나도!"를 외치는 바람에 그냥 나도 모든 사람의 범주에 속하기로 마음먹었다.
9월 15일 오전 9시. 2분 거리 병원에서 접종하고, 주말까지 약속도 잡지 않았다. 운동 레슨도 모두 미뤘다.
매주 로또 당첨자가 10명 정도는 나오는데, 나는 단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E는 그런 나에게 말했다.
"요즘 코로나가 하루에 2,000명씩 나오는데, 우리는 안 걸렸잖아."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코로나가 창궐하기 시작한 작년 초부터 1년 반이 넘은 지금까지 코로나에 걸리기는커녕 코에 면봉을 넣는 검사조차 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재택근무와 자차 이동이 가장 큰 역할을 했겠지만, 아무튼 나는 로또도 코로나도 걸리지 않았다.
'1번 확진자'처럼 숫자로 불리던 때가 있었는데, 그래서 몇 번 확진자의 동선을 전 국민이 보며 병에 걸린 개인을 비판하고 사생활을 들추던 때가 있었는데. 확진자 범주가 점점 생활 권역으로 좁혀져 들어가면서 오늘 내 옆집 사람이 양성 판정을 받았대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백신을 미리 맞은 친구들 후기를 들어보면 모두가 천차만별이다.
발열과 팔 근육통 정도만 생겼다가 금방 회복한 사람도 있고, 며칠 내내 고열과 오한, 붓기로 고생한 사람도 있다. 주변 여자 친구들은 생리 불순과 하혈 부작용을 대부분 겪었는데, 방금도 뉴스 검색을 해보니 백신과 연관성이 없다고 나온다. 주변 여자들 몇몇에만 물어봐도 꽤 많이 겪는 증상인데, 어째서 인과관계가 없다고 확신하는 뉴스가 나올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쪼록 생리통이 심해 기절까지 해 본 나에게 제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
나는 ⓐ 원인불명의 알레르기로 한 해에 한두 번은 꼭 응급실에 가야 하는 '지르테커'(내 마음대로 지어 봤다. 지르텍을 달고 사는 사람이란 의미로.)이며, ⓑ 신경안정제와 수면제를 1년여 먹고 있고, ⓒ 최근 뇌혈관 질환으로 약 2주 전 일주일간 약을 먹었다.
친구들은 혼자 사는 나를 걱정하며 어떤 약 먹고 있는지 꼭 제대로 말하라 했다. 사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어떤 약을 먹는지 잘 몰랐다.
우울증 관련 약은 병원에서 처방과 제조를 전부 해주고 있고, 약 봉투에는 '정신과'라는 말도 쓰여있지 않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병원 이름, 주소, 전화번호, 선생님 성함과 내 이름, 그리고 '1일 2회, 아침, 취침 전'만 까만 글씨로 적혀있다.
마침 오늘 병원에 가는 날이라 선생님께 여쭈었다.
"저 내일 백신 맞는데요, 지금 먹는 약이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을까요?"
"이건 관련 없어요. 혈관 약 같은 게 문제가 될 수 있겠죠. 맞으러 가시기 전에 타이레놀 드시면 덜 아프실 거예요."
수의사인 후배 H에게도 알레르기 때문에 걱정된다고 하자, "누나, 내가 의사 아니고 수의사긴 한데. 독감 백신 맞고 알레르기 올라온 적 없으면 괜찮을 거야."라고 말했다. 다행히 지금껏 내가 알레르기로 고생한 순간에 '백신을 맞고 난 후'라는 케이스는 없었다.
그런데 <ⓒ 최근 뇌혈관 질환으로 약 2주 전 일주일 간 약을 먹었다.> 항목이 불현듯 떠올라 약이 든 서랍을 뒤져 봉투를 찾아냈다.
- 보나링에이정 (디메니드리네이트): [멀미약] 졸음이 올 수 있으므로 운전, 기계조작 시 주의하세요.
- 싸리움캅셀 (염산플루나리진): [편두통약/어지럼증약] 알코올, 신경안정제, 수면제와 함께 드시지 마세요.
- 바넥신정 (은행엽건조엑스): [혈액순환제] 발진 주의
- 유턴정 (베타히스틴염신염): [현기증약] 발진 주의
(사실 방금 이 글을 작성하면서 주의사항을 꼼꼼히 보니... 이미 투약 주의사항을 어겼다. 알코올, 신경안정제, 수면제와 함께 먹었다^^;)
내일 접종 전 상담 때 챙겨 갈 심산으로 가방에 미리 넣어 두었다.
아프기 싫어서 아프러 간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코로나에 걸리기 싫어서 내 자유 의지로 백신을 맞으러 간다.
어차피 무얼 선택하든 확률은 내게 50:50이다.
코로나에 걸리거나, 걸리지 않거나. 혹은 백신을 맞고 죽거나 죽지 않거나.
내 의지 없이 코로나에 걸려 죽을지, 아니면 백신 부작용으로 죽을지에 대한 고민은 필요했다.
몸을 내던질 생각으로 옥상 난간 끝에 있는 사람 뒤에 소리 없이 다가가 톡 치면, 대부분 엄청나게 놀라면서 "뭐 하시는 거예요? 죽을 뻔했잖아요!" 하고 소리칠 테다. 그만큼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엄청난 의지와 결단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니 차라리 내 발로 내가 정한 날짜와 시간에 무섭지만, 백신을 맞으러 간다.
죽겠다거나 죽고 싶다는 뜻은 아닌데, 그냥 그편이 마음 편해서. 그래서 부작용도 이겨내고 내가 백신 접종 완료자에 포함된다면? 그럼 그대로 또 대충 살지 뭐.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살겠다고 주사를 맞으러 가는 아이러니.
내일은 어쩌면 팔이 아파 타자를 못 치고 글을 올리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저녁 즈음이 되면 노트북 앞에 앉지 않을까 하며 오늘은 일단 자련다.
고작 백신 주사 한 대 맞으면서 이런 소리를 다 한다. 나중에 읽으면 '그때 나 왜 저렇게 유난 떨었나 몰라.'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