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nero Sep 19. 2021

먼저 죽으려 해서 미안해

친한 친구가 죽을뻔했다

보여줄 수 없어서 숨었어



 가장 친한 여자 친구 중 하나인 G는 누가 봐도 예쁘고 곱다. 정석 미인이라 우리는 그녀에게 항상 '무협지 미녀'라고 부를 정도로 예쁘고, 자기 사람 살뜰히 챙기기도 잘한다. 

 집들이 선물로 스타일러를 턱 내밀 지를 않나, 명절마다 우리 엄마에게 연락하고 선물을 보내지를 않나. 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우리 엄마는 딸이 많아 좋다고 했다.


 그런 그녀와 최근 한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녀의 휴대전화에 나는 "내 여친♥"이라 저장되어 있고, 우리는 한번 통화를 시작하면 기본 한 시간은 떠들었다.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는 그녀는 소주를 마시는 내 앞에서 물 한 잔 따라놓고 나보다 더 취한 사람처럼 굴었고, 내게 좋은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행복해하고, 슬픈 일이 생기면 나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랬던 그녀와 연락이 안 되는 게 이상했지만, 요즘 많이 바쁜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다 알아버렸다.

 그녀는 왼쪽 손목을 열 바늘이나 꿰맸다.


 언제나 그녀가 힘들 때마다 내가 옆에 있겠노라고 해놓고, 왜 꼭 내가 바쁠 때나 경황이 없을 때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씩 포기하고 사라져 가는지 생각하느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먼저 가려고 해서 미안하다고, 1mm가 더 들어갔다면 영원히 못 볼 뻔했다고 또 담담하게 말하는 걸 보면서 손목에 남은 흉터보다 마음에 박힌 흉터를 몰라본 내가 미웠다. 나와 G는 생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먹거나 시도를 한 적이 몇 번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힘들어했을 때 나는 차 뒷유리에 "초보 운전"을 커다랗게 써 붙이고 난생처음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그녀를 집에서 빼 왔다. 


 내가 그렇게 빼 와서 살려준 목숨을 자긴 포기하려 했었다고, 미안하다고. 이제 그냥 같이 대충 살자고 했다. 아직 손목 흉터가 아물려면 수개월은 더 걸릴 거라 해서 팔찌를 사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같이 손목에 새길 타투 도안을 찾았다.



우리 딸들 때문에 내가 죽겠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G한테 전화 왔어. 추석이라고~ 그런데 G가.. 자살 시도를 했니?"

 

 "엄마, 우리 지금 격동의 30대 초반 보내는 중이야."

 "나는 우리 딸들 덕분에 격동의 50대 후반 보낸다. 이제 더 놀랄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마음 아프게 해. 지난 추석에는 N을 잃었는데... 엄마는 요즘 하루하루 눈물로 산다."


 나는 자살을 할 거면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주변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남길 테고, 그에 대한 책망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G의 '자살 실패' 뉴스가 세상에서 가장 다행인 소식이었다. 살아남아 줘서 정말 고마웠다.


 "이제 그런 마음 아픈 일 안 생기게 할게. 우리가 예뻐서 세상이 피곤하게 하네."

 "그러니까. 그래서 엄마도 이렇게 피곤한가 보다, 얘. 괜찮은 척하는 거 다 알아서 너희 때문에 엄마 마음이 너무 찢어진다. 제발 우리 생각도 좀 해 줘."


 그러더니 엄마가 조심스레 물었다.

 "너와 E는 헤어졌지만 엄마는 너도, E도 너무 사랑한다. 너무 마음 아프고 힘들어. E도 너무 안쓰러워서 너희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 E가 명절이니 한 번 얼굴 보러 와도 되냐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 엄마가 E를 사랑해도 괜찮지, 우리 딸?"

 "응, 그래도 한때 엄마 아들이었잖아."


 엄마의 59살이 너무 힘겹게 흘러간다. 미안해 죽겠다. 

 미안해 죽겠으니까 죽겠다는 말도 그만하고 그런 마음도 더 갖지 말아야지. 오늘도 마음 더 단단히 먹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내일, 백신 맞으러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