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층에 사는 언니에게 내가 가장 아끼는 책과 편지, 사진들을 건넸다.
언니는 미심쩍은 눈을 하고는 나에게 받기 싫다 했지만, 책이 정말 재미있어서 주는 거고 그러니까 내가 제일 아끼는 걸 언니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다시 돌려 달라고 했다.
지난주에는 약이 다 떨어졌는데 야근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 계속 병원에 가지 못했다.
잠을 하루에 한 시간 잘까 말까 하다가 늘 동틀 녘이 되어서야 무거운 몸을 끌고 테니스를 쳤다. 그래도 몸이 지치지 않아서 그냥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
가까스로 일주일 만에 간 병원에서는 약을 줄여줄 수도 없고, 당신은 나아진 게 없다며 또다시 입원을 권유했다. 됐다고 손사래 치고 나와서 또 타투 예약을 했다.
지난 한 달간 내 왼쪽 몸에만 타투가 7개 새겨졌다.
언니는 이제 그만 하라고, 나중에 나이 들면 이게 되게 멋없어 보이고 피부가 늙으면 안 예쁘지 않겠냐고, 정말 지우지 않을 자신 있냐 해서 어차피 나는 이 타투가 늙기 전에 죽을 거라 괜찮다고 말했다.
몸에 생년월일 문신을 새기는 게 마치 제조일자를 적어 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긴급 연락처를 새기면 어떨까 생각했다.
기어이 결심을 하고 나니 엄마 얼굴은 봐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집을 나온 뒤, 아니 살면서 처음으로 엄마에게 전화해서 나는 이제 그만 살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은 이유를 들자면 수천, 수만 개를 들 수 있는데 그중에 가장 큰 이유는 내가 30년을 넘게 살아 보니 좋은 게 하나도 없다 했다. 이런 말 하는 게 엄마에겐 너무 미안하지만, 나는 스무 살 그때 죽었어도 지금 후회하지 않았을 거라 했다.
엄마는 울면서 내가 없으면 엄마는 1분 1초도 살 수 없다 했다. 택시 타고 당장 오겠다는 걸 손사래 치며 말렸다. 엄마가 온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다. 그러면서 다시 일산으로 들어오라고, 회사 그만두고 엄마랑 살자 했는데 그것도 너무 싫다 했다.
며칠 전에는 친한 친구 N의 기일이었고, 이제 이번 주엔 외할머니 기일이 온다.
나는 가을, 가을이 너무 짧아서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이라 할 수 있는 이 시기가 가장 힘들다. 내 인생에 영향을 준 시기가 다 이즈음에 머물러 있어서.
다른 이는 내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아주 밝고 명랑하다 했지만, 나는 항상 '그런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부단히 애쓰고 집에 오면 혼자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엉엉 울었다.
전화번호를 바꿀까 생각도 했다.
언니에게는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장 오늘내일이 아니라 그냥 언젠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냥 '그 애는 그런 애였어요. 그럴 법한 친구 맞아요.'라고 말해달라 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듣고 언니는 "제발!" 하고 붙잡았다. 나는 되려 언니에게 "나 오늘 죽겠다는 거 아닌데?" 하며 달랬다.
글 쓸 플랫폼이 있어 다행이다. 또 언젠가의 오늘 같은 감상이 들면 '그냥 그때 관둘 걸, ' 할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 내가 썼던 유서처럼.
오늘은 친한 친구 결혼식에 가게 되어 다행이다. 보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잔뜩 모일 테니까. 인사할 수 있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