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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Jun 30. 2021

외할머니 장례식 소동 (3) 미안하다, 잘 가그래이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가슴에 묻었다

전부 다 제일 비싼 걸로 해 주이소


 할아버지는 내내 할머니 사진을 들여다 보고 구석에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눈을 뜨고 계실 때에는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이런 성화, 저런 성화를 부리기도 했다.


 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더 예쁜 사진이 많은데 왜 하필 저 사진이냐고, 다른 사진을 가져오라고. 할머니가 평소 아끼고 좋아하던 한복도 가져와라.


 관, 할머니를 모실 도자기 그리고 리무진까지.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모든 걸 가장 비싼 걸로 해 달라고 하셨다.


 염을 할 때 보통 얼굴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저승 가는 길에 불 밝혀 줄 사자가 얼굴을 못 알아보면 제 길 가기 어렵다는 어른들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는 우리 할머니 화장 곱게 시켜달라고 했다. 아픈 얼굴로 보내기 싫다 했다. 덕분에 우리는 할머니 마지막 모습을 가장 예쁜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앞에서 할아버지는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 손을 잡고 있던 내게는 내내 사시나무 같은 떨림이 느껴졌다.



아침마다 만든 할아버지의 계란 프라이


 할머니는 암 투병을 하셨다. 아프면 아프다 내색 한 번 안 하셨던 탓에 어디가 그렇게 아픈지 너무 늦게 알기도 했다. 몇 번의 오진도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담도암. 할머니는 담도암을 앓다 가셨다.


 할머니가 입원해 계신 내내 부산에 있는 이모와 삼촌, 그리고 할아버지가 할머니 곁을 지켰다. 맏딸인 우리 엄마는 우리가 서울에 살고 있는 걸 마음 아파했고, 미안해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 주려고 매일 아침 계란 프라이를 만들어다 가져왔다 했다.

Sunny side up으로 만든 반숙 계란 프라이. 우습게도 우리 할머니는 반숙 계란을 싫어하셨다던데. 수십 년 함께 살았어도 할머니 취향도 제대로 모르던 남편이었던 우리 할아버지는 자기만의 방식대로 할머니를 끝까지 사랑하고 지켰다.


할머니 댁에 가면 곧잘 단골 밀면집에서 살얼음이 띄워진 밀면을 배달시켜 먹었었다. 병원에 계시던 할머니가 그 밀면 국물이 너무 잡숫고 싶으셔서 할아버지에게 넌지시 말씀하셨다.

할아버지는 직접 밀면 육수를 한가득 만들어서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육수를 한 모금 마신 할머니는... 그 후로 다시는 밀면 육수를 찾지 않았다고, 그때 할머니가 찌푸리던 표정이 너무 웃겼다고 막내 이모가 이야기해 줬다.


 장례식이 다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할아버지는 할머니 사진 앞에 맛있는 음식이며 술이며 다 가져다 놓고 같이 먹고 마셨다. 49제에서 할머니의 고운 한복과 사진을 태워 보내고 얼마 후,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할머니와 함께 했던 집을 떠나 혼자 이사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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