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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Jul 08. 2021

장례식장에 퍼지는 찬송가

종교, 그리고 나의 트라우마를 깨우는 트리거

종교는 없고요, 세례명은 안젤라예요


 사실 나는 특별히 믿는 종교가 없다.


 종교 자체에 대한 환멸이나 불신, 그런 것보다는 정말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대상에 실체를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글쎄, 라는 마음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학문적 의미로의 종교에는 굉장히 관심이 많은 편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실체가 없는 대상’의 어떤 점이 사람을 그렇게 맹신할 수 있도록 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했다. 그래서 사이비 관련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다.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사이비 박사’다.


 천주교였던 부모님 덕분에 나는 유아세례를 받아 안젤라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축사가 담긴 묵주 팔찌를 아주 좋아했다. 내 손목에 있는 것 자체로도 힘이 되는 것 같았다. 성경은 이야기 책 같아서 재미있게 읽었다. 영어 공부를 할 때에도 어린이용 영문 성경을 읽었는데, 순전히 그 이야기들이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박혁거세가 알에서 나온 것 같은 신비로운 이야기네.’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중학교 때에는 뉴질랜드에서 1년 이상을 절에 다녔다.

부모님 품을 떠나 혼자 있었기 때문에 위안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무엇보다… 한식 절밥을 줬다.

지금 생각하면 불순하기 그지없는 마음이라 부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할 것 같은데, 어린 중생이었던 만큼 이해해주시지 않았을까 싶다. 사찰 음식이 맛있다는 것 외에도 주말에 절에 가서 불경을 외고 듣는 시간이 나에게는 내게 눈치를 주던 홈스테이 가족들을 잠시 떠나 갖는 자유시간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에게 절에 있는 시간은 그야말로 ‘구원받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사찰에 갈 일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시주를 하거나 염주를 하나 산다.


 고등학교 때에도 교회를 반년 정도 다녔다.

솔직히 말하자면 교회에 다닌 의도도 불순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시골에 있는 한 기숙사 학교로, 주말에도 외출 시간이 통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교회를 다니면 자유롭게 학교 밖을 나설 수 있었다. 일요일이 되면 오전 자습을 하지 않아도 되고, 교회 봉고차가 아이들을 싣고 가서 초코파이도 주고 전화도 쓰게 해 줬다. (적고 보니 군인 이야기 같다 ㅎㅎ)

그러던 어느 날, 시험 기간에 오전 자습을 빼지 말고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날은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를 데리러 오셨던 목사님께서는 시험 기간일수록 교회에 나가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하셨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목사님이 설교를 하는 결혼식, 신부님께서 성체를 나누어 주시는 결혼식 등 기독교/천주교와 관련된 결혼식은 여러 번 가 보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천주교 식으로 진행되는 장례는 친한 친구 N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처음이었다.

분향과 절을 하는 대신 마음을 다해 묵념하고 기도하고 찬송가를 부르는 장례식.


 나는 그의 장례식장에 친구 S, D와 같이 N의 발인까지 모두 함께 한 탓에 이 ‘천주교 장례’ 속에 내내 머물러 있었다.

분향소 안에서 들리는 기도, 눈물 섞인 찬송가, 고인을 안녕을 비는 말들, 그리고 아멘.


 그 작은 친구가 관에 실린 채 들려 나가는 그 길을 따라 장례식장 복도 가득 찬송가가 메워 버렸다.

눈물이 터져 나올수록 노랫소리도 커 졌다. 이 소리는 장례식장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도 N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 속에 살고 있고, 그의 일 말고도 여러 일들이 겹치면서 우울증과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치료 중이다.

그래도 2년이 지난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을 거라 생각했다.


 바로 오늘 장례식장에서 찬송가를 듣기 전까지 말이다.


 복도에 퍼지는 찬송가. 내 눈에서 주체할 수 없이 터지는 눈물, 그리고 가빠지는 숨.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가 주저앉아서 한참을 엉엉 운 뒤에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주차장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우며 생각했다.


 성당에 나가지 않아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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