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과 학생 중 누가 더 학원에 가기 싫을까?
오늘 진짜 학원 째고 싶다!
2015년 나는 한 영어 학원에 회화 전담 강사로 일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인 아이들부터 입시를 앞둔 학생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각기 다른 레벨의 수업을 맡아했는데 여러 재미있는 사건들도 많았고, 골치 아팠던 일들도 많았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선생님과 학생 중 누가 더 학교나 학원에 가기 싫을까?
어른이 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더군다나 나는 공무원인 교사도 아니고, 일개 월급쟁이 학원 강사다. 아이들도 나에게 의무 교육이 아닌, 학원에 돈을 내고 부가적인 사교육을 들으러 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인의 의지보다는 부모님의 의지에 끌려 학원에 왔을 것이지만, 나는 나 스스로 선택으로 왔다.
자, 그럼 학생일 때의 나와 학원 강사로서의 나를 비교해 보자.
학생일 때 영어 학원에 가는 나는,
보통은 부모님의 의지에 휘말려 억지로 나감
어느 학원을 선택할지도 보통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권유에 따름
학원 빼고 땡땡이 치자는 친구들의 유혹 존재함
학원에 나가지 않으면 부모님에게 혼이 남
부모님 허락만 받으면 아프거나 놀러 갈 때 학원을 빠져도 됨
지각하면 선생님께 조금 혼이 남
숙제를 안 하면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꾸중을 들음
돈을 씀
강사일 때 영어 학원에 가는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나감
어느 학원을 선택할지는 온전히 나의 자유의지였음
학원 빼고 땡땡이 치자는 친구들은 손절해야 함
학원에 나가지 않으면 부장님께 혼이 남
아프거나 놀러 가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음. 학생들은 나오니 출근해야 함
지각하면 부장님께 매우 혼이 남
강의를 안 하면 일자리를 잃음
돈을 범
뭐, 어느 쪽이 되었든 내키지 않는 날 학원에 가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선생님, 계속 남아 계시면 안 될까요?
영어 강사로 만 1년을 근무하고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사실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
재미가 없었다. 분기마다 클래스가 바뀌긴 했지만 여하튼 내 마음대로 교재를 고르고 수업 진도를 나가는 과외와는 달리 학원에서는 정해진 프로세스와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주 하나로 나눠 주며 먹고사는 일이 쉬운 편이긴 했지만, 어린 학생들과의 수업에서 내가 얻는 발전이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도화선이 된 건 나의 알레르기였다.
나는 분기에 한 번 정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알레르기가 심하게 올라온다. 그 중 1년에 한두 번은 지르텍으로 감당이 불가할 만큼 올라와 눈 흰자위가 붓고 기도에도 알레르기가 올라 숨을 잘 쉬지 못한다. 그날도 강의 중에 옆구리부터 붉게 올라오더니 마침내 얼굴을 뒤덮었고 아이들이 선생님 정말 괜찮은 것 맞냐고 걱정했다.
한 학생이 수업 중 뛰어나가 교무부장님께 가서 “Claire 선생님이 많이 아픈 것 같아요!” 소리쳤고 그제야 나는 수업 도중에 병원에 갈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아프다던지 몸이 안 좋아서 쉬고 싶다고 마음대로 쉴 수 없겠구나.
정말 뭣도 모르는 내가 이런 희생을 감당하고 덤빌 일이 아니다. 누워서 수액을 맞으며 세상 모든 선생님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졌다.
원장 선생님께는 내가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할 것 같아서 그만두겠다고 말씀드렸다.
신규 선생님이 적응할 때까지만 나와 달라고 해서 그러겠노라 이야기하고, 새로 온 선생님이 수업하시는 동안 나는 교실 구석에 앉아 선생님께 드릴 피드백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학원에 오래 다니던 아이들은 주임 선생님이 교실 끝에 앉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눈치챈 듯했다.
“쌤, 그만두시는 거예요? 왜요? 저희가 말 안 들어서요? 계속 저희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응, 너네 때문에 내가 힘들어서 도망가는 게 맞으니까 이번에 새로 오신 선생님 말씀은 제발 좀 잘 들어라, 하고 웃었다.
마지막 날, 반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화이트보드 가득 써 놓은 메시지와 케이크 때문에 미련이 없을 줄 알았던 내 학원 강사 생활 마지막 날 결국 눈물이 터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