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 상사 vs 꼰대 상사
폭언을 일삼는 상사
대학생 때 프리랜서로 전시회, 박람회, 패션쇼 등을 주관하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해외 바이어와 외신 기자들 의전과 통역을 맡아 일한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상사가 잊지 못할 악몽을 선사해 줬다.
젊은 나이에 창업한 남자였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둘, 그 상사가 서른 살이었다.
그땐 그렇게 나이가 많고 어른처럼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어리고 생각 없는 놈이었구나 싶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장소가 어디든 앞에 누가 있든 소리를 빽 지르며 욕을 했다.
여자 실장님이 계셨는데, 그 실장님이 자기보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이 년, 저 년 하면서 욕을 해 댔다.
박람회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나와 실장님은 외국인 바이어들을 데리고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박람회장에서 주차장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은 두 개가 있었는데, 우리는 정문을 통해 나가고 있었는데, 자기 혼자 담배를 태운다고 후문에 있었던 모양이다.
무전기를 통해 소리를 마구 질러댔다.
“왜 안 나와! 빨리 주차장 나와서 버스 태워야 할 거 아니야!”
“저희 나가고 있어요. 정문으로요.”
그러자 후문으로 안 나오고 정문으로 나갔다고 또 쌍욕을 퍼붓는다.
“씨 X! 내가 후문에서 담배 피우고 있는 거 몰라? 후문으로 나와야 할 거 아냐! 멍청한 새 X 들아!”
진짜 미친놈 아닌가 싶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귀빈들을 모시고 가는 내내 이어폰으로 쌍욕이 마구 꽂힌다.
이내 함께 있던 실장님은 눈물을 보였고, 스물두 살의 나는 나보다 열 살은 많은 실장님에게 이딴 놈 때문에 울지 마시라고, 저도 한마디 할 거라 했다.
내 나이가 스물둘이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뇌가 청순한 것 마냥 패기 넘치게 들이받을 수 있었다.
그 상사가 박람회 수주를 따내고 기분이 좋아서 커피를 쏘고 사무실 옥상에 올라가 같이 담배를 피울 때였다. 이때가 기회다 싶어 말했다.
“대표님, 저 소원이 있는데요. 제발 욕 안 하시면 안 될까요? 지금부터 욕하시면 한 번에 500원씩 받을게요. 이 커피잔에 모아서 저랑 실장님 고기 사 먹게요.”
그가 기분이 좋았던 터라 흔쾌히 알았다고 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게 말은 잘한다고 해서 대가리에 피 마르면 죽는다고 맞받아쳤다.
그 자식은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욕을 했고, 나는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 대가리가 꽃밭에 있는 애처럼 ‘저.. 죄송한데 지금까지 천오백 원이요.’ 했다.
바쁜 일정들이 모두 끝났고 개강을 맞이하면서 나는 학교로 돌아갔고, 실장님과만 가끔 연락을 주고받았다.
실장님은 나를 친여동생처럼 정말 예뻐해 주셨고, 사회생활에 대한 조언도 아낌없이 해 주셨다. 무엇이든 하면 나중에 다 도움이 될 거라고 무얼 하든 응원해 주셔서 지금의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중 실장님이 드디어 그 대표와 갈라섰고, 실장님이 회사로 이어가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나는 그 정신병자에게서 벗어난 실장님을 진심으로 축하했고, 그 길로 사무실에 가서 실장님께 고기를 얻어먹었다.
아마 내가 그때 계속 남아서 욕 한마디 당 500원씩 받는 걸 멈추지 않았다면 투뿔 한우로 거하게 회식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꼰대 상사
폭언 상사 다음으로 만난 두 번째 최악의 상사는 그야말로 꼰대 중의 꼰대였다.
개인적으로 ‘꼰대’라는 말이 저급하게 느껴져서 싫어하는데, 그를 표현할 말이 이것밖에 없다.
매주 본인이 읽으라고 추천하는 책을 한 챕터씩 읽고 월요일마다 리뷰를 시켰다. 잡식 독서인인 나조차도 읽고 싶어지는 책들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게 너무 고역이라 팀원들과 열 페이지씩 나눠서 월요일 출근 전에 대충 읽고 한마디씩 했다. 한 번은 우리가 업무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없어 못했다고 말씀드렸다. 그 상사는 화가 나서 팀원들의 인사를 사흘 동안 받아주지 않았다.
해외 워크숍을 갔을 때에도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다른 부서 사람들은 자유시간에 카마로를 빌린다느니 머스탱을 빌린다느니 하며 잘 맞는 동료와 짝을 지어 해변 투어를 다닐 거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 팀원들의 얼굴은 그리 밝지 못했다. 이미 출발하기 전부터 그 상사가 인당 $100씩 걷었고, 자유시간에 ‘팀원 모두가 다 같이 다닐 일정’을 짜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일주일 된 후배에게도 이 수금은 예외가 없었다. 심지어 이 후배에게 총무 노릇도 시켰다.
우리는 자유시간에도 그 상사를 포함한 세 명의 상사들을 모셔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니 자유시간이 오는 게 전혀 달갑지 않았다.
그때 한 선배가 총대를 메고 자유시간에 온전한 자유시간을 갖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상사는 기분이 상해서 너희 마음대로 하라며 호텔 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고, 중간 관리자 두 명이 우리를 테라스로 집합시켰다.
“단체 활동하기 싫으신 분 있으면 손드세요.”
스물두 살의 패기 넘치던 그때와 달리 나는 스물일곱의 정직원이다.
나는 용기가 없어 차마 손을 들지 못했는데, 나와 내 사수를 제외한 여덟 명이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거기에 편승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자유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정말 좋아했던 - 호텔에서 나의 룸메이트였던 - 주임님과 내 사수, 그리고 다른 친한 선배까지 넷이 피아트를 빌려서 해변을 따라 드라이브를 하고 마음껏 바다를 즐겼다.
너무 즐겁고 설레던 중에 꼰대 삼 형제가 걸어가는 걸 보고 우리는 뭘 잘못한 것도 없는데 놀라서 경찰차를 본 수배자처럼 시트 밑에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 밤에 분명 삐쳐있을 삼 형제를 달래 주려고 술과 안주들을 사 들고 상사 방에 갔다.
방에 들어서니 테이블 한가운데 앉은 그 상사는 인사도 받아주지 않고 우리를 노려봤다.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서 기분을 맞춰 주느라 진땀을 뺐다.
자기들끼리 마시려던 양주를 우리가 오니 한 잔씩 나누어 주었고, 우리는 내일 마지막 날이니 같이 저녁을 먹자고 말하고 다시 우리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입사한 지 일주일 만에 총무를 맡은 막내의 방을 누군가 두드렸다. 꼰대 삼 형제 중 막내였던 팀장이다.
어처구니없게도 그가 찾아온 이유는… 전날 마신 양주가 $24이니 그 돈을 공금에서 달라고.
24달러. 한국 돈으로 3만 원도 안 한다. 3만 원도 안 하는 싸구려 양주값을 부득불 팀원들이 모은 돈에서 까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더니 저녁은 짬뽕을 먹자고 했다. 최고 상사가 드시고 싶은 게 짬뽕이라, 짬뽕집 좀 알아보란다.
해외 워크숍 일정은 3박 4일이었다. 34박이 아니다. 내일 이 시간이면 서울에 있을 텐데, 짬뽕이 웬 말?
거기에 덧붙여 자기 땐 해외 워크숍 간다 하면 상사를 위해서 밥솥과 김치를 챙겨다녔단다.
이번에는 짜증이 치밀어서 내가 총대를 메고 “여기까지 와서 무슨 짬뽕이에요. 현지 레스토랑 가요.” 했다.
나는 그날 종일 삼 형제의 따가운 시선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짬뽕집에 가는 것보단 나았다.
어차피 우리 공금으로 밥 먹는 건데 뭐 어때?
그 상사들과는 결국 팀이 폭파되면서 흩어졌다.
특히 그 꼰대 1호는 아예 다른 부서로 전배를 가서 가끔 그 부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눈빛으로 “힘내세요”를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