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 안 나게 화풀이 하기
졔삶다, 잠태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여러 순간에서 열 받고 화가 나는 순간들이 있었다. 사실 나도 너무 화가 치밀면 사무실 자리에서 주먹으로 키보드를 쾅 내리치거나 책상에 머리를 박은 적도 있다… 그러면 옆자리에 있던 동료가 “뭐야, 또 누구야?” 한다.
사실 이건 건설적인 화풀이 방법이 아니다. 회사는 작은 사회라고 하지 않던가. 몇 계절을 거듭하면서 나는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나름 소소하게 복수하는 방법들을 찾아내거나, 동료와 선배의 꿀팁을 전수받았다.
영업할 때는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회사를 대신해서 고객사에 빌어야 하는 경우들이 왕왕 발생했다.
초반에는 정말 죄송하다고 고개를 떨구기도 했고, 괜히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내 잘못이 아닌데 하는 억울함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한 번은 어떤 사장님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 두 시간 동안 폭언과 욕설을 내뱉었다.
업무 하면서 이동이 잦은 영업부 특성상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달고 살았는데, 그 탓에 그 욕설을 고스란히 피할 길 없이 귀에다 다 꽂아야 했다. 그날 선릉역 골목에서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훔치면서 그 이어폰을 내다 버렸다.
내 정신건강을 위해 나름의 소소한 복수를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를 바꿔 말한다
첫 번째로 대충 말을 바꿔서 말했다. 기계처럼 죄송하다고 말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그다음 ‘죄송합니다’를 뭐라고 말할지 고민했다.
이런 ‘죄송합니다’는 뇌보다는 허파를 거쳐 나온다.
졔삶다
제성함다
지섬다
죄솜다
죄삼다
디송함미돠
데성함다
마치 어릴 때 엄마나 선생님께 혼날 때 썼던 수법처럼 말이다. 선생님을 안 보고 바닥의 장판 무늬를 탐구한다든지, 교실 천장의 갈매기 무늬를 세어 본다던지 하면 “안 쳐다본다”라고 혼나고, 그렇다고 눈을 보고 있으면 “어딜 똑바로 쳐다보느냐”라고 혼났다. 그래서 그 무렵 나는 엄마와 선생님 얼굴의 점을 셌다.
대신 반복해서 너무 짧게 줄여서 말하면 적군이 눈치챌 수 있다. 사이사이 똑바로 “정말 죄송합니다”도 껴 준다.
메일에서 안부 인사를 뺀다
이건 내 선배 J의 꿀팁이었다.
업무를 하다가 다른 팀에서 나에게 아주 무례한 태도로 메일을 보낸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답변은 하되, 뭔가 내가 기분이 상했다는 티는 내고 싶었는데 사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재주가 없는 편이다. 그때, 선배 J가 내가 보내려던 메일을 한 번 쓱 훑어보더니 말했다.
“여기 처음에 ‘안녕하세요’랑 ‘감사합니다’ 빼요. 볼드체로 강조해 주지도 말고 그냥 검정 텍스트로만 보내요.”
그러고보니 나에게 무례했던 사람이 안녕한지 어떤지 내가 알 바 아니고, 내가 감사할 일도 아닌 것 같아서 그 두 문장을 뺐다. 그 두 줄이 빠졌을 뿐인데 괜히 속이 다 시원했다.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 운동을 한다
진짜 화났을 때만 쓰는 최후의 방법이다. 나도 이런 유치한 방법은 별로 쓰고 싶지 않지만, 그만큼 통쾌하기에는 직빵인 방법이기도 하다.
주머니 속에서 가운뎃손가락을… 여기까지 한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질문을 하고 안 듣는다
이 방법은 싫어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밥을 먹게 되거나 할 때 쓰던 방법이다. 최근에는 싫어하는 사람이 없어서 쓴 적이 없지만, 예전 직장에서 정말 사이가 좋지 않았던 팀장님한테 그랬다. 내가 이랬다고 말하면 팀원들이 진짜 사회생활 고단수라고 손뼉을 쳤던 방법이다.
일단 함께 밥을 먹거나 차를 마셔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럼 먼저 그 사람에 대해 질문을 한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적군이 신이 나서 줄줄 이야기할 만한 관심사나 최근 상황 등은 미리 파악해두면 좋다.
예를 들자면, “요즘 결혼 준비 어떻게 되어 가세요? 신혼여행 어디 가세요?” 아니면, “요즘 재미있는 유튜브 뭐 있어요?” 같은 것들.
그러면 상대는 신이 나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길 할 것이다. 물론 나는 안 듣는다. 귀는 닫고 밥만 먹는다. 티 안 나게 중간마다 “아~” 같은 리액션만 넣는다. 그러고 나면 점심시간이 끝난다. 다음에 또 같이 있을 상황이 생기면 또 물어본다. 대답이 짧게 끝났던 질문은 다시 안 써먹는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업무 시간엔 그러면 안 된다. 업무 지시나 공유를 놓친다든지 하는 책 잡힐 만한 짓은 적에게 절대로 걸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3,000만 원 있으세요?
성희롱 발언을 듣거나 목격하게 되면 현실적으로는 그 자리에서 모두 당황해서 얼어붙고, 바로 “사과하세요” 소리가 나오지 않게 된다. 나를 향한 것이든 내 옆자리 사람을 향한 것이든, 그런 말을 듣게 되면 “말씀 잘못하신 것 같은데요”하고 불쾌함의 의사를 밝히는 건 이론이나 지침만큼 쉽지 않다.
그래서 나는 되묻는다. “혹시 3,000만 원 있으세요?” 그러면 상대방이 되묻는다. “3,000만 원이요? 왜요?”
“성희롱 합의금 많이 준비하실 수 있나 해서요~ 농담이 지나쳐요!” 하고 웃으면 백이면 백 그 자리에서 사과한다. (애초에 하지를 마라, 인간아…)
침을 뱉거나 험담을 하는 것 같은 타인에게 위해가 될 만한 짓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이건 복수가 아니라 나에게 돌아올 독침을 쏘는 방법이다. 작고 소소한 복수 방법은 더 연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