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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 이직 1차 시도

좋은 회사를 찾아서

by Enero
딱 맞는 직무가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직장 생활 만 5년이 넘어가자 헤드헌터나 다른 회사의 채용팀에서 메일이 꽤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업계에서 나름 괜찮은 회사로 유명한 편이고, 이 업계에서 만 5년이면 적은 경력은 아니라서 그런지 생각지도 못한 큰 회사부터 소규모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최근에는 일이 너무 바빠서 어디서 연락이 와도 JD 한 번 들여다볼 틈이 없었고, 진행하고 있던 프로젝트에 대한 쓸데없는 책임감 때문에 ‘이것만 끝내고 진짜 그만두고 이직할 거야’ 생각을 했다.

그러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이기도 했고, 헤드헌터가 수려한 언변으로 나를 띄워 주며 집 근처 카페까지 찾아와서 설명해 주는 것을 듣다 보니, 그대로 홀려서는 레쥬메를 새롭게 작성해 버렸다.


헤드헌터가 나에게 잘 맞을 것 같은 회사와 직무를 추천해준다고 해서, 혹은 그 회사의 채용팀에서 나에게 연락을 해 왔다고 해서 무조건 내가 이직에 성공할 것이고 그 회사에 다니게 될 것이 아닌 걸 알고 있다. 하지만 5~6년 전 내가 먼저 이 회사, 저 회사의 문을 두드리고 다녔던 취업 준비생 시절을 떠올리면서 괜히 마음이 들떴다.

어찌 되었든 내 경력을 알아봐 준 것이고, 그쪽에서 요구하는 조건에 내가 들어맞는 인재라는 것이 1차적으로 확인이 된 거로 생각하니 든든한 기분이었다. 좋으나 싫으나 업계에서 유명한 회사에 다닌다는 게, 그게 나의 네임 밸류가 되어 가치를 높여준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헤드헌터에게 목요일 오전에 레쥬메를 발송했는데, 오후에 바로 연락이 왔다. 그쪽 회사에서 최대한 빨리 면접을 보고자 한다고 했다.

나는 현재 회사에서 잠시 떠나 휴식을 가지려고 부산에 레지던스를 잡아서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그다음 주 월요일에 시간이 되냐고 물었다. 문제없다고 말하고 월요일에 KTX를 타고 인생 첫 환승 이직을 위한 면접에 갔다. 무려 왕복 10만 원짜리 면접이었다.


올라가는 길에도 회사 소개부터 서비스 구조까지 쭉 훑고, 주변에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 본 유저와 이용하지 않는 유저들을 찾아 인터뷰도 했다. 나름 만반의 준비를 다 했고, 면접도 꼬박 1시간을 다 채워서 봤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는 말에 나는 지금까지 원 없이 다 이야기한 것 같다고 했고, 면접관도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웃었다.

느낌이 좋았다. 첫 번째 이직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헤드헌터와 주변 지인들도 나의 면접 이야기를 듣고는 2차 준비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결론은 환승 이직 실패다.


현재 회사에서 나름의 공로와 능력을 크게 인정해 준 덕분인지(?) 내가 현재 받고 있는 연봉이 연차보다 너무 높다는 것이다.

사실 2주 정도 회사를 떠나 쉬어보니 딱히 회사에 대한 불만도 없어진 것 같은데 굳이 내 연봉을 깎아서까지 이직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좋은 회사란 어떤 회사일까요?


좋은 회사란 어떤 회사일지, 이 질문을 실제로 받아 본 경험도 있고, 혼자서 고민해 보기도 했고, 주변의 동료와 선배들과도 이야기를 자주 나눈다.

나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르면 - 사측에서의 좋은 회사란 단연 매출이 좋은 회사, 혹은 고객에게 좋은 경험을 안겨줄 수 있는 회사일 것이며, 고객에게 좋은 회사란 사회 공헌도가 높고 가격이 적정하고 (혹은 무료로) 편리한 서비스나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하고, 고객 응대가 활발하고 친절한 회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인 나에게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


직장인들이 대개 회사를 선택할 때 연봉, 네임밸류, 복지, 성장 가능성, 지속 가능성, 개인의 역량 발전 가능성, 워라밸 등 개인마다 다양한 ‘최우선 기준’을 갖고 있을 것이다.

일단 나는 현재 재직 중인 회사의 연봉이나 처우에 크게 불만이 없고, 복지는 꽤 훌륭한 편이고, 성장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도 있으리라 판단하고, 이에 따라 개인의 역량도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문제는 이 성장의 가속화 과정에서 70년대 새마을운동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인적 리소스 갈아넣기와 감당하기 어려운 업무량이 짧은 시간 안에 주어짐에 따라 워라밸을 포기해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장 가속화에 내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나는 책까지 발간될 정도로 연구대상이 된 그 유명한 ‘90년대생’이자 ‘MZ세대’이다.


나는 사실 직장은 돈벌이 수단일 뿐이고, 그러니 돈만 잘 주면 일이야 내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혹자는 돈을 덜 받더라도 더 좋은 환경과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직장은 그냥 밥벌이 수단일 뿐, 어딜 가나 비슷하니 돈이라도 많이 받는 게 최고라고 할 것이다.

나도 지금은 이 두 가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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