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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지나친 책임감이 빚은 번아웃 증후군

by Enero
열심히 하는 건 중요하지 않아. 잘하고 싶어.




지나친 업무량에 번아웃과 우울증, 공황장애가 겹쳐 퇴사할 생각보다 죽는 게 쉬울 거로 생각했다.

나는 성격상 뭘 하나를 해도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지나친 책임감이 있고, 다른 사람들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다.


입으로는 “제가 잘하진 못하더라도 민폐는 되지 말아야죠.”라고 하면서도 나에게 1의 일이 주어지면 100만큼을 쏟아붓고, 다른 사람들에게 “잘했다”거나 “고맙다”라는 말을 듣고 인정받기 위해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작은 프로젝트 하나가 떨어져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에 시키지도 않은 일을 더 찾아서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삶은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새벽 2시에 퇴근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망가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수개월을 달리다 보니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 혼자 ‘나 없으면 우리 팀원들 힘들어서 어떡해’라는 맡기지도 않은 책임감에 시달려야 했다.


휴직 전 참여했던 회사의 대형 프로젝트도 그랬다.

일을 잘 처리하는 것도 그렇지만 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여름 전기 파리채를 마구 흔들어 모기를 잡듯 키보드를 두들겼고, 주어진 일 하나가 빨리 끝나면 쉴 수 있는 게 아니라 그다음 모기를 잡으러 출동해야 했다.

내가 믿고 존경하는 팀장님과 파트장님의 백업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분들이 나에게 이만큼의 업무(어쩌면 내 연봉과 역량보다 지나친)를 주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실망하게 하기도 싫고 그분들의 일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이 지금 힘든 내 마음보다 우선이었다.


나에게 업무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하는 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나’라는 인간을 잃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 돌아간다



나는 거절을 잘 못 한다.

다른 사람들이 내가 잘 모르는 일이나 내가 담당하지 않는 업무에 대해 물어도 어떻게든 알아내서 친절하게 알려주는 게 내 의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아침에 모니터를 켜자마자 하는 일이 해야 할 업무를 줄 세워 우선순위를 체크해야 할 정도로 쌓여도, 다른 사람의 의뢰나 부탁이 들어오면 또 그걸 그 사이에 끼워 적었다.


그래서 얼마 전 내 사정을 잘 알고 나를 찾아온 같은 팀원 S가 나더러 내 상황과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본인 기분에 따라 메신저 말투가 달라지잖아요. 그런데 항상 똑같이 친절하고, 가끔 농담조로 욕을 하긴 해도 정말 가볍게 하는 말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줄 몰랐어요.”


동료 S는 내가 휴직을 하는 바람에 내가 하던 일들의 최소 반 이상 덤터기 썼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이렇게 책임감 없이 도망친 것에 대해 사과했지만, 그녀는 초과근무가 늘긴 했지만 내가 미안해할 정도는 아니라며 웃었다.

퇴근과 동시에 일과 관련된 것들은 노트북과 함께 덮는다는 그녀가 너무 부러웠다.

나는 그걸 하지 못해서 노트북을 덮고 누워도 일 생각이 내 머릿속을 온통 뒤덮어서 밤마다 눈앞에 엑셀 시트 위 숫자가 떠다니고 내 실수로 일을 그르치는 꿈을 꾸곤 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야 하는 날짜가 다가올수록 생각하지 않으래야 자꾸만 업무 생각이 났다.

나를 붙잡아 준 내 롤모델은 퇴사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팀장님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중요하게 할 이야기가 있다며, 우리 팀이 분리되었고 그래서 나는 그 팀장님과 앞으로는 한 팀이 아니며, 다른 팀장님 밑으로 전배가 될 거라 했다. 곧 팀장으로 발령날 그분도 정말 훌륭하고 좋은 분이며, 내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저는 팀장님 생각해서 회사로 돌아가려 한 건데, 팀장님이 없음 무슨 소용이에요.”


앞으로 우리가 함께 일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니 절대 염려치 말고 쉬고 싶은 만큼 쉬다가 와서 자기랑 술이나 먹잔다.


내가 없어도 누군가는 내 일을 할 수 있고, 회사는 잘 돌아간다.

그냥 일의 히스토리를 더 잘 알고 빨리할 수 있는 사람이 빠진 것뿐이며, 누구든지 나의 일을 대체할 수 있다.

회사가 체스 말을 옮기듯 조직개편을 하고 직원을 이동시킬 때 나의 의중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회사가 잘 굴러가고 매출을 잘 낼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는 무얼 위해 이런 지나친 책임감을 갖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내 연봉만큼만 일하고, 회사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만 회사를 생각하면 될 일이었는데.


다시 돌아가서 나는 내가 입으로 뱉은 말처럼만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제가 잘하진 못하더라도 민폐는 되지 말아야죠.”



퇴사를 못 해서 죽는 건 좀 멍청한 것 같아



사실 이 논제에 대해서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퇴사하느니 죽는 게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퇴사하면서 남은 사람들이 내 일을 떠맡게 되는 데 죄책감을 갖게 될 것 같고, 또 퇴사 후에 내가 어떻게 벌어 먹고살 수 있을까 고민도 되기 때문이다.

이게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죽고 싶다면서 어떻게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니.


하지만 휴식기를 갖는 동안 조금 생각이 나아지긴 했다.

내가 없어도 나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고, 그 회사가 망하지도 않았다. 사실 회사가 망하든지 말든지 내 알 바 아니다.

나는 일개 월급쟁이고, 이 회사는 내 회사가 아니다.


하루 18시간을 일한다고 해서 회사 매출의 18%가 나한테 떨어지는 게 아니다.

차라리 하루 18시간을 날 위해 쏟고 18,000원을 받아서 그날의 끼니와 커피 값만 대충 해결하며 살아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퇴사를 못 하겠어서 죽겠다는 건 조금 멍청한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옥상에 앉아서 한숨을 쉬던 그때엔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가족을 생각해’, ‘그냥 퇴사하면 그만이잖아’ 같은 위로의 말들은 들리지 않았다.

그때의 나에겐 여기서 도망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지가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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