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규정을 바꿨다
인사팀입니다. 혹시 통화 언제쯤 괜찮으세요?
부산에서 휴식기를 가진 뒤 서울에 돌아오고 첫 월요일 오전이었다.
인사팀 담당자가 문자를 보내 통화 가능한 시간이 언제인지를 묻기에 지금 당장도 가능하다 했다.
"꼭 알려 드리고 싶은 소식이 있어서 전화했습니다. 그간 마음고생 너무 많으셨어요.
우울증에 대한 1차 병원 진단서로 병가 휴가를 한시적으로 올해만 승인해 드리기로 결정되었습니다.
6월 22일부터 8월 31일까지 무급 휴직 신청이 들어가 있었는데요, 이 부분 모두 소급 적용해서 8월 급여일에 입금될 예정이에요!
많이 마음 졸이실 것 같아서 공지사항 등록 전에 미리 전화해 드립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메꿀 수 있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연신 전화 주신 담당자분께 감사를 표하고 초콜릿 한 박스를 선물로 보냈다. 이보다 달콤한 뉴스를 나에게 따뜻한 목소리로 전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오늘 중으로 회사 사내 공지사항으로 해당 내용이 올라갈 예정이에요.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니 회사 걱정은 놓으시고 마음 편히 푹 쉬고 9월에 뵈어요."
덕분에 나도 병가휴직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
많은 사람이 축하와 안도하는 메시지와 함께 공지사항을 캡처해서 보내주었다.
인사지원실과 수차례 통화를 하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상반기 평가에도 내 의견을 피력하고, 잊을만하면 우리 팀장님과 인사팀에 연락을 해서 어떻게 안 되겠느냐고 물은 게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 캡처를 보낸 이들 중엔 나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도 정신과 진단서를 냈다가 휴직을 받는 건 불가하니 개인 연차를 소진하라는 연락을 받았거든요.
덕분에 저도 인사팀 연락을 받고 병가 휴직으로 전환할 수 있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올해만 한시적으로 정신과 1차 병원 진단서가 승인된다는 점이 조금 껄끄럽긴 했지만 어쨌든 성과가 되었고 나는 회사에 작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팀장님은 나에게 전화해서는 이거야말로 "Enero 특별법"이라며 축하해주고, 이제 정말로 마음 편히 쉬라며 82인치 TV라도 한 대 사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휴직 시 회사 장비를 반납하라고 해서 맥북 샀어요." 했다.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한 회사 동료와 브런치를 통해 닿은 인연들이 내게 무수한 응원을 쏟아 준 덕분에 나는 조금 더 마음 편히 휴식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무급 백수에서 "50% 급여 받는 백수"가 되었으니, 연금복권에 당첨되어 회사를 그만두면 이런 심정일까 싶다. (물론 그 돈은 내 병원비와 약값으로 빠져나가고 있지만 말이다.)
자꾸 세상이 나더러 살라고, 퇴사나 휴직을 말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어제 오랜만에 병원에 갔다가 나의 우울감은 더 깊어져서 증약을 했는데, 우울증 환자가 무언가를 즐겁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겠지.
퇴사하려고 했던 회사에 괜히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 정년을 채워야 하나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