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싱 사실 고백하기

거짓말과 숨기는 것, 말하지 못한 것

by Enero

나는 결혼을 했다. 정확히는 ‘한 적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20대 중반에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고, 그 여자와는 만 1년을 살았다.

이혼 사유라고 할 것도 없다. 심심하지만 뻔한 이유. ‘성격 차이’로 우리는 만 2년의 연애와 1년의 결혼 생활, 도합 3년간의 사랑에 마침표를 찍고 마침내 ‘님’에서 ‘남’이 되어 각자의 행복을 빌며 법원 앞에서 갈라섰다.


소송을 할 만한 것도 없었다. 결혼 생활이 워낙 짧았기 때문에 재산 분할이다 뭐다 할 만한 것도 없고, 아이가 없었으므로 양육권 분쟁으로 씨름을 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합의 이혼으로 도장만 찍고 끝났다. 그래도 결혼보다는 이혼하는 과정이 더 머리 아프고 힘겹다.


누구의 귀책도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란 것을 인정했고, 그래서 그냥 몇 가지 물건들과 모았던 돈을 나눴다.

공동명의로 산 아파트가 문제였는데, 피차 나쁘게 헤어진 건 아니었으므로 부동산에 매물로 올려놓고 차액을 나누기로 합의했다.


아파트가 팔리기 전까진 좋은 관계까진 아니어도 그냥 한때 같이 정을 나눴던 사이로써 가끔 연락하고, 밥을 먹기도 했다. 후에 그 집이 처분된 이후 나는 새로 갖고 싶던 차를 사고 혼자 살 오피스텔에 전세로 들어갔다. 그녀는 얼마 후 좋은 남자를 만나 연애한다는 소식만 들었다.

슬프거나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녀의 이번 사랑은 우리의 것처럼 ‘실패’로 끝나지 않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그녀는 좋은 여자였다.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기특한 며느리였다.

다만, 결혼 전 서로 반대되는 모습에 강하게 끌려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며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다짐이 이루어지긴 어려울 것 같았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맞지 않았다기보다는 그냥 그녀가 나라는 남편과 살기에는 서로의 삶이 덜 행복했기 때문에 우리는 헤어졌다.


균열의 시작은 사소한 부딪힘으로 시작되었다.

그냥 아주 작게는 서로의 취미가 맞지 않았고, 감정과 감성이 오가는 단어의 깊이가 다르다는 걸 눈치챈 이후부터는 균열에 지각 변동이 일기 시작했다.

나는 싸움을 피하고자 내가 모든 것을 이해하는 척, 고개만 끄덕이고 한 귀로 흘리거나 내 감정도 그녀와 같은 척을 했다.


이해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동조라도 해달라고하기에 나는 정말 말 그대로 그녀가 원하는 대로 동조만 했다. 그러다 보니 그녀도 언젠가부터 무슨 말을 해도 내가 마음이 아닌 귓등으로만 듣고 있다는 걸 눈치챘고, 우리는 더 깊은 대화를 하지 않고 지냈다.


그렇게 균열은 협곡이 되었고 - 함께 헤쳐나가기엔 우리에겐 적절한 장비도 체력도 없다는 걸 깨닫고 각자의 길로 되돌아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자유의 몸으로 돌아온 걸 환영한다!”


미혼인 친구들은 애써 내 기분을 풀어주려 술이나 먹자고 전화가 왔고, 기혼인 친구들은 마음에도 없는 부럽다는 소릴 해댔다.

다행히 나는 엄청나게 아프거나 슬프진 않았다. 단지 허전함에 구멍 뚫린 기분과 어쩐지 나는 실패한 패배자 같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렇게 몇 달이 흐르고 혼자 지내는 생활이 편하고 익숙해질 무렵부터는 새로운 여자도 눈에 들어왔다.


나는 한 번 결혼에 실패했으니, 다시 결혼해야지 하는 마음 같은 건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주선해주는 미팅에 나가거나 어쩌다 낯선 이들과 술자리가 생겨도 굳이 ‘이혼남’ 타이틀을 먼저 나서서 밝히지는 않았다.

싱글인 척 꼬셔서 잘해봐야지 하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돌싱 사실을 바로 오픈했더니 그 뒤에 구구절절 왜 했냐는 등의 질문 공세에 시달려야 했고, 뒤에서는 “저 남자 하자 있는 거 아니야?”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장에 이혼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날이 갈수록 나 스스로 너무 지쳤다.

일단 뭐, 어떻게 보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숨기려고 숨긴 것도 아니다.

그냥 말을 안 했을 뿐이고, 말할 타이밍도 특별히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했다.

물론 최악은 나의 이혼 사실을 상대가 제삼자에게서 듣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이혼 사실을 숨기고 주제도 모르고 싱글 여성을 꼬신 추잡한 이혼남이 될 거니까.


일이 커지고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는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게 너무 피곤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내 결혼과 이혼 사실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더 편했다.

구구절절한 치부를 다 드러내지 않아도 나에게 더 이유나 기분을 묻지 않는 사람을 만나야 할 것 같다.

다 알고 있으면서 절대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사람. 물론, 나의 과정을 옆에서 다 지켜봤고 들었기 때문에 굳이 묻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사람.

구태여 거짓말을 하거나 나를 숨기지 않아도 다 아는 사람.


하지만 지금 내가 누구를 사랑하기엔 상대가 한편으로는 가엾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무리 이혼이 요즘 세상에 흔한 일이고, 내게 아이가 없고, 나이가 아주 젊다고 해도 초혼인 상대가 만약 재혼해야 하는 나와 미래를 꿈꾼다면 헤쳐나가야 할 것들은 비단 우리 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전 부인이 나와 헤어지고 다시 연애하며 사랑한다는 사실도 대견하고 멋지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나와 함께 보낸 동거에 가까운 결혼 생활이 그녀에게 그렇게까지 환멸이 아니었겠구나, 그래서 더 잘 맞는 누군가와 사랑해도 되겠구나 마음먹은 것 같아 내심 뿌듯하고 부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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