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소개팅 앱을 깔고 나서
몇 년 전까지 도저히 짝을 찾기 어렵거나 자신의 조건에 꼭 맞는 상대를 찾고 싶은 사람은 흔히들 ‘결정사’라 불리는 결혼 정보 회사를 주로 찾았다면, 최근에는 가벼운 만남부터 진지한 연애나 결혼까지 생각하고 온라인 데이팅 앱에 가입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실 내게 자연스레 새로운 여자를 만날 기회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렇다 할 친한 여자 사람 친구도 없고, 몇 번 연애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차니 “자니?”라고 물어볼 만한 전 여자 친구들도 모두 결혼을 했다. 어쩌다 발견한 괜찮아 보이는 여자들은 이미 다 짝이 있다.
그래도 전에는 나에게 먼저 대시를 해 오는 여자도 좀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이따금 길을 가다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거나 클럽에 가면 같이 한잔하자고 하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나의 이 치솟는 인기가 천년만년 갈 줄 알고 만났던 여자 친구들에게도 딱히 충성을 다하지는 않았다.
데이팅 앱을 쓰지 않는 건 내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어쩐지 온라인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진짜 ‘없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과연 그 온라인 소개팅에 본인의 사진과 프로필을 올리고 자신을 낚아주길 기다리는 ‘괜찮은 사람이 정말로 있을까?’ 하는 노파심이 들었다.
그러다 친구 말 한마디에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당장 앱을 설치했다.
어차피 세계는 너무 좁단다.
지인을 통해 건너 건너 소개팅을 하는 거나 온라인으로 만나는 거나 피차 모르는 사람 한번 만나보고 밥 한 끼 먹으면서 대화 서너 시간 하는 건데 뭐 어떻냐는 것이다.
너도 꽤 괜찮은 놈인데 여자 만날 기회가 없는 거고, 그런 괜찮은 여자들도 같은 마음으로 등록하지 않았겠냐며.
네모난 앱 하나가 스마트폰 바탕화면 위에 얹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인증을 하고 내 사진을 골라야 한다.
사진첩에 들어가 이리저리 사진을 뒤져본다.
일단 내 장점부터 스스로 생각해봐야 한다. ‘넘기기’ 당하지 않고 ‘좋아요’ 버튼 한번 받으려면 첫 사진이 중요하겠지.
나는 주변에서 키가 크고 외모도 준수한 편이란 이야길 몇 번 들어봤으니 아무래도 키와 비율이 드러나는 전신 사진을 첫 사진으로 등록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차 핸들 사진을 올려놓는 건 내 차가 람보르기니도 아닌데 괜한 허세를 떠는 가벼운 놈 같고, 그렇다고 한껏 멋 부린 사진은 괜히 좀 자존심 상한다.
자연스럽게 잘 나온 사진은 결국 전 여자 친구가 카페에서 찍어준 사진이다.
카메라를 보는 내 눈에 애정이 담겨 있고, 편하고 사랑스러운 여자와 함께였기 때문에 내 표정도 자연스럽다.
그래, 두 번째 사진은 이걸로 하자. 약간의 가책은 조금 느껴졌지만, 여하튼 이건 내 사진이다.
이번엔 자기 소개를 쓰란다. 신입사원 공채 이후 내가 자기소개 따위를 써 본 지 너무 오래되었다. 게다가 100글자 제한이라니. 짧고 강렬하게 나를 나타낼 만한 단어를 조합하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
<서른셋. 분당에 사는 직장인입니다. 취미로 등산을 합니다.>
더는 쥐어짜 내봐야 ‘350D 탑니다’ 같은 덜 떨어진 소리만 나올 것 같아서 그쯤하고 등록 완료 버튼을 눌렀다.
공인인증서도 필요 없으니 가입 과정이 아주 순탄할 줄 알았는데, 이것도 뭐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기다려라… 복잡해서 중간에 포기할까 싶었다.
그래도 슬리퍼가 되었든 운동화가 되었든 내 짝 하나 찾으려면 이 정도는 감내해야 한다.
침대에 누워서 이리저리 쏟아지는 사진들을 옆으로 스와이프 하면서 구경했다.
첫째로 이 온라인 세계에 내가 본 적 없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데 놀라고, 둘째로 예쁘고 멋진 사람이 많아서 놀랐다.
만원 지하철 틈새에 끼면 수많은 사람이 존재함은 알 수 있는 수준이지만, 이 앱은 그 만원 지하철 속 사람들의 얼굴과 취향을 SF영화 한 장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정보를 쏘아 올려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스물아홉의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성분께 조심스레 ‘좋아요’를 날렸다. 첫번째 ‘하트’를 날리니 내 하트에도 답가 같은 심장이 날아올까 설렜다.
멋진 몸매를 자랑하는 서른 살 여성분께도, 서른 다섯의 옆모습이 청순한 긴 생머리 여성분께도 나의 하트가 날아갔다. 진짜 실물이 이렇게 고울까 싶은 사람에게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하트를 보내기도 했다.
‘띠링, 매칭 성공입니다! 이제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
나: 안녕하세요!
A: 안녕하세요
나: 반가워요. 이거 가입하고 처음 대화해 봐요. 신기하네요.
A: 그러게요. 저도 오늘 처음 가입했어요. 어떤 일 하세요?
나: 저는 판교에서 일하는 개발자예요. A님은요?
이후 A에게 답이 없다.
‘판교’라는 지리가 문제였는지 ‘개발자’라는 직업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매칭 성공 후 공개된 내 두 번째 사진이 별로였는지. 아냐, 정말 바빠서 지금 대답할 틈이 없는지도 모르지.
그 후로 두세 번의 ‘매칭 성공’ 알림이 왔지만, 대화는 뜨뜻미지근하게 흘러가거나, 나나 상대방 중 어느 한쪽이 서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저절로 그 대화는 다른 대화방에 밀려 저 아래로 내려간다.
나름 재미있었다. 친구들과 강남역 지오다노 앞에 서서 모르는 여성과 술 한번 마셔보려 기웃대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게 더 끝내주게 좋은 점은 – 내가 그 골목에서 이 여자, 저 여자, 한 100명쯤에 말을 걸었다면 나는 그 골목 미친놈으로 소문이 날 것이다. 하지만 이 온라인 세상 속에서는 내가 몇 명의 지나가는 여성에게 말을 걸며 얼마나 머물러 있었는지 상대는 알 수가 없다니!
첫 멘트는 그냥 ‘오늘 가입했고 너랑 처음 대화하는 거고, 너한테만 하트를 날렸다.’ 같은 속이 빤히 보이는 거로 해도 상대방은 당연히 믿지 않겠지만 대화의 물꼬는 틀 수 있다.
그러다 한 번 대화도 잘 이어지고 외모도 꼭 내 스타일인 이성과 매칭이 되었다.
그 뒤로 울리는 매칭 알림이 더는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 우리 이 어플로 대화하는 거 불편하지 않아요? 카톡으로 대화하면 어때요?
X: 네, 좋아요. 제 카톡 아이디는 ‘OOOO’ 예요. 우리 카톡으로 이야기 더 해요.
그리고 며칠 뒤 우리는 실제로 만났다.
나는 분당에 살고, 그분은 일산에 산다 했다.
분당 토박이인 내 기준에서 일산은 월북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거리다.
살면서 일산은 딱 한 번, 과 동기가 너무 취해 어쩔 수 없이 데려다준 날. 그때뿐이다.
그날 나는 택시를 타고 신촌에서 일산까지 가서 그 친구를 내려준 뒤, 분당 갈 택시비를 생각하니 앞이 깜깜해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고 지하철을 타고 돌아갔었다. 그 피곤한 몸으로 3호선 지하철을 타고 돌아가는 길이 마치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그랬던 내가 그녀에게 일산에 가겠다고 말하고 나서 강변북로를 타야 하나, 외곽순환을 타는 게 빠를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그녀가 다행히 일산까지 오실 필요는 없다고 했다.
아무리 경기도민의 ‘일상 거리’가 1시간 30분쯤은 거뜬하다 해도 분당에서 일산은 너무 먼 길 아니냐며 깔깔 웃었다.
그래서 우리는 합정역 앞에서 만나는 걸로 타협했다.
토요일 오후 다섯 시.
오늘 합정역에서 만날 여자가 내가 상상한 그 모습이 맞다면 미리 봐 둔 와인바에 가고, 아니라면 이자카야에 가서 소주나 마시며 한때 메시지 좀 나눴던 친구로 묻어야지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날 마신 이탈리아 바르베라 와인은 나와 그녀를 첫 만남에 취하게 하기 충분했다.
우리는 그후 1년 간 연애했다.
취향을 나누고 취미를 함께하며 내 짚신의 다른 한 짝을 찾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국 그 짝을 갈라놓은 건 온전히 내 실수다.
스마트폰에서 그 네모난 어플을 삭제하는 걸 잊었고… 테이블에 올려놓은 내 휴대전화에 뜬 알림을 그녀가 봐 버렸다.
‘띠링, 매칭 성공입니다! 이제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