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전화가 얼마나 간절했게요
요즘 세대들은 군대 갈 때 휴대전화도 쓸 수 있다고 하던데. 꼰대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입대할 때만 해도 그런 건 상상 속의 일이었다.
훈련소에서는 전화를 하는 것도 어려웠고 자대 배치 이후에는 정해진 시간에 내 차례를 기다렸다가 전화 한 통을 걸고, 속세에 살고 있는 상대방의 “여보세요” 소리가 간절하다.
편지 한 통에 가슴이 설렜고, 21년 평생 읽은 책 보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글을 썼다.
훈련소에 있을 때엔 밤에 점호시간에 조교들이 인터넷 편지나 손편지가 온 전우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내 이름이 언제 불릴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렸다.
자대 배치받은 후로는 행정반에서 나를 부르는 날이면 신나게 빠른 걸음으로 가서 우표가 붙은 편지봉투를 받아 들자마자 살며시 봉투를 뜯었다.
나는 모델 제의를 받을 정도의 키와 외모는 됐다.
그래서 솔직히 입대 전에는 여자들의 마음 같은 건 안중에 없었다.
잘 만나던 썸녀와도 한 번 잠자리를 가지면 정복감인지 아니면 더 이상 궁금한 게 없어져서인지 그냥 바로 질려버려서 연락을 뜸하게 하다 욕을 먹고 끝냈다.
어차피 이 여자가 아니어도 나와 데이트 한 번, 모텔 한 번 가고 싶어 하는 여자들은 많았다.
시끄러운 클럽에 간 것도 흘러나오는 노래가 좋아서라기 보다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를 보는 시선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덕도 있다.
나를 흘깃 쳐다보던 여자들은 나에게 괜히 라이터를 빌리거나 일부러 내 앞에 바짝 붙는 걸 느낄 수 있었고, 나는 엄청 잘 나가는 놈이 된 것 같아서 콧대가 하늘을 치솟았다.
속히 ‘나와바리’라는 나의 무대가 강남이었고, 집도 강남과 가까웠기 때문에 나는 강남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면접을 보기 위해 사장님을 만났는데, 뭐라 말도 하기 전에 사장님은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를 물었고, 나는 바로 그 주엔 친구들과 나이트클럽에 가기로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 주 월요일부터요.”라고 말했다.
카페에서 같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친구들은 다 같은 20대 초반 또래들이라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내가 거의 막내였고, 누나들과 형들이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오래전부터 알았던 사이처럼 깔깔거렸고 휴무 날에도 일부러 그 카페에 가서 우리끼리 수다 떠는 걸 아주 좋아했다.
나는 앞서 말했듯 그 시절 망나니 같은 삶을 살며 이 여자, 저 여자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누나들은 나보고 정신 차리라 하면서도 군대 가기 전까지 재밌게 놀고, 이런 재미있는 썰들도 많이 풀어 달라 했다. 그래서 클럽에 다녀온 다음 날이면 나는 자랑스럽게 어떤 여자를 만나서 어떻게 꼬셨는지 같은 뭣도 아닌 이야기를 큰 소리로 떠들어댔다.
하지만 나도 결국 신의 아들은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대한민국 군인으로 국가의 부름에 끌려갔다.
훈련소에서 운 좋게 수류탄이 제대로 터져서 포상으로 3분의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한달음에 전화 앞으로 가서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1초… 5초… 10초…
배고파 죽겠는데 전자레인지 앞에 앉아서 핫바가 데워지는 걸 보려고 초침을 쳐다볼 때보다 마음이 더 급하고 초조했다.
20초쯤 지났을 무렵에는 이 소중한 시간을 이대로 버릴 수 없어 결국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보다 먼저 여자 친구를 찾던 불효자는 어디 갔는지 아버지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때 여자 친구에게 남자 친구로서는 약간 서운한 마음이었지만, 군인이 되어버린 나는 “최현 훈련병은 김연서에게 매우 실망했다”를 속으로 크게 외쳤다.
자대 배치 후에는 수첩에 적어온 전화번호들을 보면서 누구한테 전화를 걸면 바깥세상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을지, 아니, 누구한테 전화를 걸어야 내 전화를 반갑게 받아줄지 골라야 했다. 전화가 가능한 시간은 정해져 있고,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적다.
그러다가 같이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진희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번호 앞자리가 033이라 스팸 전화인 줄 알고 안 받으면 어쩌지, 심지어 나는 누나에게 선불카드도 아닌 콜렉트콜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가 전화를 받으면 나에게는 고작 몇 초간의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내가 빠르게 관등성명을 해야만 상대방이 내 존재를 알아챌 수 있으며, 통화료가 수신인에게 부담되는 이 전화를 받을지 말지 여부도 상대에게 달렸다.
“여보세요?”
“누나! 나 현이! 제발 전화 좀 받아줘!”
잠시 기다리는 시간이 지난 후 누나가 깔깔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야! 무슨 제발 전화 좀 받아줘야! 그냥 이름만 말해도 받았을 걸. 왜 이제야 전화했어! 요즘 어때? 많이 힘들지?”
이 누나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밝고 예뻤나?
최근에 걸었던 전화 중 가장 기분이 좋다. 군인을 귀찮아하는 내색이 하나도 없고, 콜렉트콜 전화비가 아까운 기색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어 누나! 나 잘 지내고 있어. 너무 오랜만이지? 누나는 별일 없어?”
“응, 나야 별일 없지. 휴가 언제 나와? 요즘 시대가 바뀌어서 지하철 개찰구 가서 주민등록증 주면 교통카드 기능 삽입해 준다 얘.”
누나는 속세와 단절된 나를 놀리는 장난을 자주 쳤는데, 어떤 것들은 진짠지 아닌지 긴가민가 해서 침상에 누워 정말 세상이 그 새 그렇게 바뀌었는지 상상을 해 보기도 했고, 그냥 누나의 너무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가 자꾸 귀에서 맴도는 것 같아서 옆에서 코 고는 선임의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 후로도 나는 몇 번의 전화 기회가 주어지면 꼭 진희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진심으로 나를 응원해줬다.
그래서 휴가를 나갈 때면 꼭 누나에게 미리 말을 했고, 누나는 정말 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나를 위해 커피 마실 시간이라도 내어줬다.
내가 얼마나 각을 열심히 잡고 구두를 닦았는지 누나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아무튼 나는 없는 머리도 한껏 만지고 최대한 멋있어 보이려고 노력했다.
말년에는 연평도 사건이 터졌다. 다 같이 뉴스를 보면서 완전 군장으로 출동 대기 상태로 생활관에서 모두가 각을 잡고 대기해야 했다.
그땐 정말 전쟁이 날 것 같아서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작전 투입에 대비해 유서를 썼는데, 다행히 작전은 취소되어 투입은 되지 않고 몇 시간 서 있다가 다시 돌아왔다.
결국 전역하는 날까지 나는 휴가가 다 잘리고 군복을 입고 무장한 채로 잠을 자야 했다.
내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누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괜찮냐고 내 안부를 자꾸 물어서 겁먹지 않은 척하려고 “누나. 걱정 마. 내가 누나네 동네는 지켜줄게.”하고 허세를 부렸다.
군대 갔다 오면 인맥 정리가 한 번 된다는 형들의 말은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여러 사람들이 말 그대로 자연스레 ‘정리’가 되었고 누나 한 명은 수많은 인연들 중 단연 가장 높게 떠올랐다.
소멸해가는 별들과 떨어지는 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던 별들 중 진희 누나는 단연 북극성처럼 밝게 타올랐다.
전역을 하자마자 나는 수류탄을 터뜨린 포상으로 받은 전화 찬스를 부모님이 아닌 여자 친구에게 쓰려했던 불효자답게 가장 먼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내 전역 소식을 나만큼이나 기뻐했다.
그다음 날 바로 나는 꽃을 한 아름 사들고, 엄마 차를 몰래 끌고 가 누나 집 앞으로 가서 내 마음을 고백했다.
그렇게 누나는 고무신 한 번 신지 않고도 꽃신을 신고 나와 연애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