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때문에 퇴사하지 못하는 자를 위한 L의 조직학개론

공과 사를 왜 구분하나요?

by Enero
사람이 왜 이렇게 물러 터졌어요?


퇴사 후 이직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와 잘 맞는 소주 메이트인 선배 L은 퇴사 전 나와 같은 팀에서 일했던 선배이자 대학교 선배다. 저녁 7시, "진짜 빡치네."라는 메시지를 보내더니 전화를 해서 난데없이 "아니, 사람이 왜 이렇게 물러 터졌어?"하고 호통을 친다.


퇴사하기 무서워서 죽으려고 한다는 나의 글을 퇴근길에 읽었고, 읽다 보니 너무 열이 받아서 소주를 만취할 때까지 마셔야겠다고 난리였다. 제목만 봐도 화딱지가 나서 읽지 않으려다가 무료해서 몇 편 읽다 보니 욕이 절로 나와서 전화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이 선배 L은 그야말로 "천운의 사나이"이자 "조직학개론"에 능통해서 '회사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딱 이렇게 되겠구먼'하는 눈치가 빨랐다. 덕분에 우리 회사와 팀이 이렇게 힘들게 사람들을 굴리기 시작하기 직전 퇴사했다.


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던 5월 어느 날, 선배 L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이직할 생각 있어요? 도망쳐, 지금이 기회야!"


"생각이야 있죠. 근데 제가 나가면 저희 팀장님이랑 팀원들 힘들어서 어떡해요. 저 이번 프로젝트 릴리즈 전까지는 못 나가요. 선배님은 저희 팀장님이랑도 친하시잖아요. 저까지 나간다고 하면 팀장님이 선배님 죽이려 들 걸요?"


"회사는 회사고, 본인은 본인이지. 본인이 회사 옮기겠다는데 무슨 남 걱정까지 그렇게 해 줘요? 일단 알겠어요."


나는 그때 선배의 이직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 그 자리는 내가 존경하던 롤모델인 선배 J가 가게 되었다. 나와 우리 팀원 누구도 선배 J를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내가 존경하던 사람도 남보다는 나의 커리어와 정신적, 신체적 건강을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쿨하게 떠났는데, 뒷걸음치던 나만 발목을 붙잡혀서 그대로 서있다가 벼랑 끝으로 몰렸다.



비뚤어진 세상을 바르게 돌리려고 하니 힘들 수밖에


나더러 회사에서 정신병 진단서로 유급 병가휴직을 내준 게 뭐가 고맙냐고 했다.

너는 당연히 회사에서 받아야 할 것을 받은 것이고, 오히려 소급해준다던 지난달 월급에 이자까지 쳐서 받아내라고 했다. 정신과 진료비와 약값이 얼마나 비싼데, 그것도 같이 청구해버리고 초과근무 일지랑 함께 노동부에 신고해버리라고 했다.

도대체 내가 잃을 게 뭐가 있냐고, 그 난리를 쳐도 어차피 손해보고 이미지에 타격 입는 건 회사인데, 그리고 그 회사가 그렇게 망한다고 내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비뚤어진 세상을 왜 자꾸 바르게 돌리려고 해요. 그러니까 힘들지. 환경이 비뚤어져 있으면 그냥 같이 누워서 비뚤어져 보는 걸로 타협을 하던가.

아님 본인은 비뚤어져있고 세상이 바르다 해도 그냥 기준을 본인한테 두면 되잖아요. 본인 기준이 가장 바른 기준이라고요."


목표 의식에 대한 지나친 열망과 회사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 넘치는 부채감을 안고 있는 나에게 그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목표가 없으면 불안하다는 글을 봤어요. 목표가 쉬는 게 되면 안 돼요? 오늘의 KPI는 2시간 낮잠 자기, 내일의 KPI는 1시간 멍 때리기, 이렇게 쉬는 걸 목표로 삼아보면 되잖아요."


중간중간 "우울증 환자한테 할 소리는 아닌데"를 넣어가며 열변을 토하는 걸 보니 이 사람, 나를 적잖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구나, 싶어서 눈물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저는 공과 사 구분 안 해요.



선배 L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겉바속촉'이다.


키가 크고 하얗고 마른 사람으로, 친해지고 난 후에야 그 선배에게 '종이 인형'같다고 놀려댈 수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차갑고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보였다. 외근직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내근직 사무 업무로 전환한 나는 엑셀과 SQL 같은 숫자와 함수 더미에서 허덕이고 있었는데, 워낙 이 방면의 전문가인 걸 알고 있어서 곧잘 선배 L에게 질문하곤 했다.


80년대생 선배 L의 답변은 인터넷 강의에서 문제의 해석부터 답안까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환경에 익숙한 90년대생인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 그는 절대로 '답안지'를 주지 않았고, 다만 '문제 해결의 길잡이' 같은 해설만 해줬다. 찾아내지 못하면 힌트만 더 얹어줄 뿐, 절대 대신 처리해주거나 답을 알려주지 않았고, 어쩌다 내가 답을 찾아내면 아주 건조한 말투로 "잘했네. 담배 피우러 갑시다." 했다.


한 번은 시트가 방대하고 숫자와 함수로 점철되어 도대체 이 "#ERROR" 문구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1시간 넘게 뒤져도 찾아지지 않아서 마지막 수단인 선배 L을 찾아갔다.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선배가 "아우, 그냥 하나씩 잘 찾아봐요!" 했는데 갑자기 서러워져서 입사한 지 3년 만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보드에 머리를 박고 눈물을 흘렸다.

말만 저렇게 해놓고 내심 미안했는지 스윽 옆으로 와서는 "봅시다" 하더니 매의 눈으로 찾아내서 "봤죠?" 하며 웃길래 나도 빨간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좋게 도와주시면 안 되냐고요!"



그 선배는 나에게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말이 왜 있겠어."라고 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말을 던졌다.

"저는 공과 사 구별 안 해요."

'공과 사'를 구분하라더니 이번에는 또 자기는 안 한다 하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 잠자코 듣고 있었다.


"우리는 다 회사에서 만난 사람들이에요. 공적으로 만난 거지 30년 지기 친구가 아니라고요.

저는 공적으로 일을 잘하는 사람이 좋아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사적으로 알게 되었을 때 좋으면 인연을 이어 가고요.

일을 못하는 사람과는 가까이할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석에서 착하든 재미있든 그건 내 알 바 아니고요."


그는 나에게 했듯 후배들에게 명확한 답안지보다는 해설지를 던져주는 식으로 업무를 맡겼는데, 왜 본인이 틀렸는지를 궁금해하지 않거나 무작정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 그리고 예의가 없는 사람에게는 말도 섞지 않고 차갑게 구는 사람이었다.

그나마 눈물이라도 흘려가며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내 모습이 다행히 그 선배 마음에 들었던 건지, 알면 알수록 내게 가르쳐 주는 것도 많아졌었다.

이 말을 듣고 보니 왜 선배가 이렇게 말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번에 팀장님과 팀원한테 미안해서 퇴사 못하겠다고 했죠? 그 사람들이 당신이 퇴사하면 원망하고 연락을 다 끊어버릴까요?

만약 그렇게 한다면 네가 사람을 잘 못 본거지. 이렇게 끊어질 인연인데 이렇게까지 고민했다는 증거가 되는 거고. 퇴사를 뒤로 할 만큼 서로를 생각하는 사이라면 이직을 하거나 퇴사를 해도 계속 이어져요.

그러니 그런 멍청한 고민은 하지 말라고, 이 인간아!"


소규모 스타트업부터 대기업까지 통달한 본인만의 조직학개론은 틀린 적이 없다며, <L의 조직학개론>을 믿어 보란다.


통화하는 내내 명언을 쏟아내길래 내가 말했다.

"메모하고 있고요, 좋은 글감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L의 조직학개론>에 따르면, 저는 작가로 성공할 상인 가요?"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끊어요."



끝까지 시크한 선배는 오늘도 '정답'을 찾는 건 내 몫으로 넘기고 힌트만 잔뜩 남기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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